[A부터 Z까지] 정치·행정·경제·언론 얽히고설킨 ‘난맥상’

유성복합터미널 조감도.


대전 유성복합터미널 사업무산에 대한 책임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대전시와 도시공사는 롯데컨소시엄의 ‘무성의한 태도’가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속속 밝혀진 사실들을 종합하면 대전시의 ‘무능함’과 도시공사의 ‘도덕적 해이’가 함께 빚어낸 총체적 난맥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도시공사,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일단 첫 단추를 꿰는 데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염홍철 전 대전시장 재임 말기인 지난 2013년 11월 초, 대전도시공사는 유성복합터미널 조성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컨소시엄을 선정했다. 

현대증권이 자본투자에 나서면서 시행지분의 97%를 갖고, 롯데건설과 계룡건설이 각각 2.1%와 0.9% 지분을 나눠 갖기로 했다. 시공지분은 롯데가 70%, 계룡이 30%를 맡았다. 

그러나 현대컨소시엄은 협약체결을 완료해야하는 그해 12월 27일까지 협약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도시공사는 현대 측의 사업의지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후순위 대상자인 지산디앤씨컨소시엄과 협약체결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도시공사가 돌연 입장을 바꿔 현대 측에 7일간의 말미를 더 주고 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후순위 대상자인 지산디앤씨가 이를 빌미로 장기간 소송전에 나선 이유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 도시공사가 지역 대표건설사인 ‘계룡건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공모지침을 어겼다는 의혹이 크게 불거졌다. 

유성복합터미널 사업 공모지침 내용 중 일부.

당시 공모지침에는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자가 스스로의 귀책사유로 사업협약을 체결하지 않을 경우 도시공사의 용역사업에 2년 동안 참여할 수 없다’는 규정이 담겨 있었다. 만약 현대컨소시엄이 도시공사와 협약을 체결하지 않을 경우, 지역대표 건설사인 계룡건설이 2년 동안 도시공사 사업을 맡을 수 없다는 의미. 

대전지역 공공발주공사 상당부분을 도맡고 있는 계룡건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도시공사가 공모지침을 어겼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유다. 실제로 대전시는 의혹제기 이후 곧바로 감사에 착수해 도시공사의 공모지침 위반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홍인의 당시 도시공사 사장 등 2명은 징계처분을 받았다. 

감사결과와 별개로 소송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후순위 협상자인 지산디앤씨 측은 곧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1심 법원은 지산디앤씨의 손을, 2심 법원은 도시공사의 손을 들어주며 진실공방이 벌어졌지만, 지난해 4월 최종심인 대법원이 원고인 지산디앤씨 상고를 기각하면서 도시공사가 최종 승자가 됐다. 대전시와 도시공사는 “드디어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홍보자료를 이때부터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전시와 대전도시공사, 머리는 숙였지만...

대전도시공사는 지난 15일 유성복합터미널 사업자인 롯데컨소시엄측에 최종적으로 협약해지를 통보했다. ‘사업무산’을 공식선언한 셈이다. 이후 정치권의 공세와 책임추궁, 언론의 비판보도가 잇따랐다. 일부 시민들은 재산권 침해를 받았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급기야 대전시와 도시공사는 19일 시민들에게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이는 사과 기자회견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모든 원인을 사업자에게 전가할 뿐,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백명흠 도시공사 사업이사는 “자본투자사인 KB증권이 컨소시엄을 이탈하고, 건설주관사인 롯데건설이 설계도면을 제출하지 않는 등 사업추진 의지가 없다는 것이 협약해지의 주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8회의 독촉과 사업해지 최고(마지막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업자가 아무런 응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시공사는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는 해명인 셈.  

유성복합터미널 예정부지인 구암역 인근에 규탄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대전시도 마찬가지다. 양승찬 대전시 교통건설국장은 “사업추진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지난 5월 중순 도시공사를 통해 처음 전달받았다”고 해명했다. 지난 3월 자본투자사인 KB증권이 컨소시엄에 탈퇴를 통보한 뒤 2개월 동안, 이 같은 사실을 몰랐다는 이야기다.  

양 국장은 “도시공사의 보고책임이 있을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차 책임은 사업자에 있고, 2차적으로 도시공사의 책임도 있다는 의미다. 

몰랐다면 ‘무능’ 알았다면 ‘부도덕’

그러나 이 같은 대전시 해명에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았는데 이를 감추려한다면 부도덕한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자 보다는 후자 쪽에 가까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2014년 1월 협약체결 당시 컨소시엄 시행지분의 97%를 확보한 현대증권은 2016년 3월부터 회사 매각절차에 들어갔다. KB금융이 지분인수에 들어가 2개월 뒤인 5월말 금융위원회의 계열 편입을 승인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KB의 현대증권 인수에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정도로 ‘현대증권 매각’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지역 경제계 한 인사는 “유성복합터미널 자본투자사인 현대증권이 KB에 매각된다면, 대전시와 도시공사는 KB쪽에 사업추진 의사가 있는지부터 확인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KB의 컨소시엄 이탈은 이미 지난해 3월부터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지적했다.  

비록 지분율은 미미하지만, 지역 대표건설사인 계룡건설이 컨소시엄에 포함돼 있는데 과연 대전시와 도시공사가 까마득히 ‘컨소시엄의 붕괴’를 모르고 있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첫 단추를 잘못 꿰어 소송전이 벌어진 배경에 ‘계룡건설 편의 봐주기 의혹’이 제기됐던 만큼, 이번 ‘협약해지’ 또한 그 연장선에 있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팽배하다. 

익명의 대전시 관계자는 계룡건설을 “핵심”이라고 지칭했다. 그는 “KB증권이 컨소시엄에서 이탈한 뒤 롯데컨소시엄측이 새로운 자본투자사를 물색했다고 하는데, 정말 자본투자사를 물색한 것인지, 아니면 물색하지도 않고 없다고 발뺌하는 것인지는 확인해 봐야 할 일”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계룡건설 관계자는 “보통 이런 컨소시엄 사업은 주관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며 “이 사업 주관사는 롯데건설로, 계룡의 지분률이 매우 미미한데다 사업추진에 문제가 있다는 것 역시 최근에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19일 오후 대전시청 기자실에서 열린 해명 기자회견 모습.

지역 정치권의 한 인사는 “신세계의 대전진출과 유성터미널 부지의 땅값 상승 등으로 사업성이 급격히 악화된 상황에서 컨소시엄측이 오히려 계약해지를 간절히 바라지 않았겠느냐”며 “대기업이 이행보증금 50억 원을 날리지 않기 위해 두고두고 족쇄가 될 사업을 추진할 리 만무하다”고 분석했다. 

“대전시가 이행보증금 몰취를 넘어 강력한 법적대응에 나서지 않는다면 오히려 대기업 편의를 봐주기 위해 ‘협약해지’를 해줬다는 식으로 공격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주관사의 적반하장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롯데건설측은 대전시의 이행보증금 50억원 몰취 계획에 대해 반환소송으로 맞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사 한 임원은 “도시공사가 후순위 협상자와 소송을 하느라 사업이 지연됐기 때문에 그 책임을 일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약해지와 관련해 향후 소송전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워치독’ 의회와 언론, 제 역할 했나? 

대전시의 무능력에 도시공사의 도덕적 해이는 물론, 시의회 견제기능과 지역 언론의 ‘워치독(감시견)’ 역할이 실종되는 등 총체적 난맥상이 연출됐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시민 숙원 사업에 대해 대전의 행정, 정치, 경제, 언론이 얽히고설켜 경고음을 울리지 못했다는 지적. 

대전시의회 한 의원은 “유성복합터미널 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와 열망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사업비 3000억은 오히려 매우 적은 금액”이라며 “의원들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자기반성에서 출발해 의회 차원의 진상규명 노력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경력 10년이 넘는 지역 언론 한 중견기자는 “대전시와 도시공사가 쏟아내는 보도자료에 의존해 ‘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기사만 쏟아내 온 것이 지역언론의 현실”이라며 “상황이 이렇게 된 데 지역언론이 전혀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씁쓸한 감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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