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던 차에 진나라가 공격해오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수도 임치가 포위된 채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웠다.

“항차 이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만취한 제왕이 울면서 물었다.

후승은 즉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연신 술잔을 들이키며 무언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각한 것을 알아챈 나인들은 고개를 떨구고 훌쩍거리며 술을 따랐다. 속이 내비치는 옷을 입고 애교를 떨어야 할 일이었지만 내려앉은 분위기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제왕은 한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어깨가 흔들리도록 슬피 울었다. 나인들은 함께 울며 고운 천으로 제왕의 눈시울을 닦아 주었다.

그제야 후승이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신의 생각으로는 다른 방도가 없사옵나이다. 진왕이 5백리의 식읍을 준다고 하니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려 되옵니다.”

후승은 복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이제 그길 밖에 다른 길은 없단 말이오?”

“다른 방도가 또 무엇이 있겠나이까? 대왕마마.”

제왕은 더욱 슬피 울었다. 술자리가 아니라 그것은 울음바다였다. 누백 년 동안 쌓아온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있었다. 그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하는 제왕의 가슴은 찢어지고 있었다.

“대왕마마, 이마저 버린다면 죽음 밖에 또 무엇이 있겠나이까? 5백리 식읍을 받아 다음을 기약함이 마땅할 것이옵나이다.”

후승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제왕이 후승과 함께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비빈과 궁녀들 그리고 문무백관들이 조정 앞에 진을 치고 엎드려 울부짖으며 호소했다.

“대왕마마,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나이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마시옵소서. 이 나라가 어떻게 지켜온 나라이오니까. 백기를 들어 스스로 무릎을 꿇는다면 무슨 면목으로 앞서가신 선왕들을 뵙겠나이까. 절대 항복은 아니 되옵나이다. 지금이라도 성문을 열고 저들과 결사항전을 펼쳐야 할 것이옵니다.”

신하들은 목청을 높이며 제왕의 결전을 독려했다.

하지만 이미 운세는 기운 뒤였다. 신하들도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성문을 열기도 전에 진나라 병사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임치가 무너질 판이었다.

날이 샐 때까지 술잔을 들이킨 제왕은 후승의 말대로 성문에 백기를 내걸고 말았다.

이때가 진왕 영정이 즉위한지 26년, 그의 나이 39세가 되던 해인 기원전 22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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