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 건은 군사들이 내준 마차를 타고 함양궁으로 들어가 진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는 진왕이 5백리의 식읍과 자손 대대로 먹고 살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므로 그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안색이 편안해보였다.

진왕이 조당에 들어 그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던 제왕 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대가 제왕인가?”

“그러하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만들어 나라를 그들 스스로 진에 바치도록 하였는가?”

진왕이 꾸짖듯이 말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제왕은 영문도 모르고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곳은 제나라 조당이 아니라 진나라 대전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신하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진나라 대신들만 군상처럼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제야 자신이 망국의 군왕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제왕은 갑자기 위축되기 시작했다.

“어찌 말이 없느냐. 과인이 묻고 있질 않느냐?”

진왕이 황탁을 손으로 내리치며 고래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제왕은 오줌을 지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진왕께옵서 과인에게 5백리의 식읍을 주고 자손 대대로 넉넉하게 먹고 살도록 해주시겠다고 약조하여 과인이 나라를 들어 바쳤나이다. 무슨 백성들이 스스로 나라를 바쳤다 하시옵니까?”

그러자 진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더욱 큰 소리로 고함을 버럭 질렀다.

“백성의 어버이라고 하는 자가 자신만 살기 위해 만백성을 내팽개쳤단 말이냐. 그러고도 네가 살기를 바랐더냐? 어찌 너 같은 미물에게 과인이 5백리 식읍을 주고 또 자손대대로 잘살도록 해줄 수 있단 말이냐. 네가 만백성을 위해 스스로 나라를 들어 바쳤다면 과인이 그리할 생각이었으되 혼자 살겠다고 나라를 들어 바쳤다면 그것은 제나라 만백성을 욕 먹이는 것이기에 그리 할 수 없노라.”

그제야 제왕은 조당의 바닥을 치며 대성통곡하였다. 진나라의 간계에 빠져 결국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나라를 들어 바친 꼴이 되어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는 어깨를 떨며 한참을 울었다.

“시끄럽도다. 어린 아이도 아닌 것이 대국의 대전에 와서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네가 어찌 제왕이라 할 수 있겠느냐. 여봐라. 저자를 당장 국외로 추방하여 다시는 진의 제국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여라.”

진왕은 단호하게 내쳤다.

결국 유약하고 무능한 제왕은 진제국 밖으로 내몰려 산속을 헤매다 굶어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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