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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뉴스 창간 16주년 특별기고> 친구

[이광희 중편소설] Ⅳ. 우리는 친구-2

이광희2017.07.17 09:13:32

▲이광희 作.

이들이 두어 개의 언덕을 넘고 또 다른 작은 모래언덕을 막 넘었을 때였다. 멀리서 트럭 한대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오 원장이 윗옷을 벗어 마구 흔들었다. 고래고함을 질렀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뒤따르던 박 교수와 김 사장도 재빨리 자신들의 옷을 흔들었다.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들을 볼 수 있을 거리였다. 하지만 트럭은 이들의 행동을 보지 못한 듯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오 원장이 다시 목청껏 고함을 질렀다. 박 교수와 김 사장도 함께 고함을 질렀다.
“살려주세요.”
“구해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이광희 作.

이들은 언덕의 꼭대기를 향해 뛰어 오르며 옷을 마구 흔들었다.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서둘렀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 언제 트럭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절박함에서 팔이 떨어지도록 휘둘렀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궂은 땀이 흘러내렸다. 모래먼지가 뒤범벅이 되었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향해 풀쩍 뛰어 올랐다. 신이 나서가 아니었다. 어떤 행동이라도 트럭 운전자에게 보이고 싶었다. 목이 갈라졌다. 힘이 빠져나갔다. 윗옷을 힘차게 하늘로 던져 올렸다. 그렇게라도 해서 운전자의 시선을 잡아야 했다.
그제야 멀리에서 천천히 사막을 달리던 트럭이 멈칫거렸다. 이들이 간절하게 흔들던 옷을 본 모양이었다.

손톱 만하게 보이던 트럭이 천천히 멈추었다. 운전자는 한참동안 이들이 있는 쪽을 보았다. 그는 사막에 낙오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분명했다. 곧이어 경적을 길게 울렸다. 모기소리 같은 희미한 경적이 바람결에 들려왔다.
계속해서 옷을 흔들자 손톱만한 트럭이 방향을 바꾸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트럭은 언덕에 가려지기도하고 그러다 언덕을 넘어오기도 했다.
연신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렸다. 하이 빔을 쏘아 올렸다. 비상등은 켜고 먼지를 일구며 달려오고 있었다. 모래사막을 달리는 딱정벌레의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보일 듯 말듯했던 먼지구름이, 트럭이 가까이 오면서 제법 두텁게 피어올랐다.
“살았다. 이제 살았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했다.

먼지구름은 사막을 가로질러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더욱 빠른 속도록 달려오고 있었다. 구불거리며 도화지위에 그림을 그려내듯 사막에 깊은 바퀴자국을 남겼다.
손톱 만하던 트럭은 얼마지 않아 주먹 만해졌고 이어 모래언덕을 돌아서면서 그들이 신고 있던 구두만큼 커졌다.

유리창이 보이고 보닛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하늘색 트럭이었다. 검은색 바퀴가 쉼 없이 모래먼지를 밀어냈다. 짐실이에는 아무것도 실려 있지 않았다.
트럭은 한참을 지난 뒤에야 그들이 올라서있던 모래 언덕 아래로 다가왔다. 생산년도가 1970년대쯤으로 보이는 낡은 트럭이었다. 디자인도 복고풍이지만 파란색 도색역시 하늘색으로 바라 있었다. 지붕과 바퀴 물받이부분은 검붉은 녹으로 뒤덮여 있었다. 배기구에서도 검은 연기가 풀석풀석 피어났다.

▲이광희 作.

 그들은 숨을 죽이고 차량에서 운전자가 내려서기를 기다렸다.
잠시 삐걱 소리와 함께 트럭 문이 열리더니 얄궂게 보이는 백인사내가 차에서 내렸다.  

그는 한눈에 보아도 사막의 나그네였다. 짙은 잉크 빛 선글라스에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귀걸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찢어진 청바지에는 난잡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팔에도 알아볼 수 없는 검푸른 문신이 복잡하게 새겨져 있었다. 인상도 몹시 험악해 보였다. 자상함이나 친절함과는 애초에 거리가 있어 보였다. 콧수염을 기른 모습과 얄팍해 보이는 턱이 강한 인삼을 심어주었다. 갱단을 소재로 한 서부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강도가 아닐까도 생각했다. 자신들을 구해주기 위해 온 사막의 천사가 아니라 사막의 강도거나 혹은 가이드가 경고했던 그 갱단의 일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그 사내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았다.
모두 그의 눈치를 살폈다. 사내들은 수인사를 나누고 의도적으로 호감을 흘렸다.

박 교수가 조금은 졸은 모습으로 먼저 내려가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아울러 사막에 빠져있는 지프차를 꺼내달라고 요청했다. 정중한 표현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소리가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를 표시했다. 그러면서 연신 그의 눈치를 봤다. 흉기라도 내미는 날이면 죽음이란 긴장감이 박 교수의 등 뒤에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숱하게 이런 일을 경험한 사람 같았다. 첫눈에 이들이 왜 사막에 고립되었는지도 훤히 들여다보는 눈치였다. 박 교수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도 않고 모두 트럭에 오르라고 손짓했다.
척하면 알겠다는 시늉을 했다.

박 교수가 운전석 바로 옆에 앉아 안내를 맡았다. 오원장과 김 사장은 화물칸에 올랐다. 사내는 말없이 차를 몰아 지프차가 빠져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겉보기만큼이나 성격이 거칠었다. 트럭을 모는 품세가 조근조근한 사내는 아니었다. 화물칸에 탄 오 원장과 김 사장은 연신 허공에 몸이 뛰어오르는 것을 경험했다. 중심을 잡지 못해 온몸을 뒤흔들었다. 그나마 짐실이의 양옆을 손이 아프도록 잡고 있었으므로 떨어지지 않았다.

현장에 도착한 사내는 모래에 빠진 지프차를 둘러보았다. 밑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앞에서 방향을 보기도 했다. 잠시 갸우뚱거리다 자세를 더욱 낮춰 지프차의 밑을 자세히 살폈다. 눈치로 보아 심상치 않아보였다. 하지만 전혀 안될 일은 아니란 판단을 하고 있는 눈치였다. 박 교수 일행은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너무 깊이 묻혀 차를 빼내지 못한다면 어쩔까. 혹은 너무 많은 돈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그냥 두고 가버리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사내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단순했다.

트럭에 실려 있던 와이어를 지프차의 앞부분에 돋아난 견인 고리에 건 다음 자신의 낡은 트럭에 올랐다. 이어 박 교수에게 지프차에 올라 시동을 걸라고 손짓했다. 앞에서 자신은 당기고 박 교수는 차를 몰라는 신호였다.
박 교수가 오 원장과 김 사장을 번갈아 본 다음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이어 기어를 넣고 사내의 신호에 따라 움직였다.

사내는 천천히 트럭을 뒤로 몰아 모래 늪에서 지프차를 끌어냈다.
처음에는 지프차가 끌려 나오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었지만 트럭이 검은 연기를 내뿜자 곧이어 못이기는 척 바퀴를 굴리며 기어 나왔다. 트럭의 체면을 봐서 나와야겠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사내는 사막에 빠진 차량을 한두 번 구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너무도 능숙하고 숙달된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두말이 필요치 않았다. 겉보기에도 그는 프로였다.

사내는 지프차가 빠져나온 다음 와이어를 걷어 트럭에 실었다. 손에는 와이어에 묻어있던 기름때와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보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옷에 툭툭 손을 털고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고개를 돌리며 마른침을 ‘퇵’ 뱉었다. 짙은 선글라스 너머로 사내의 예리한 눈빛이 빛났다.  
차에서 내린 박 교수가 연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몸을 굽실거렸다.
이제 남은 것은 수고비를 얼마나 지급할 것 인가였다.

생각 같아서는 천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았다. 그가 오지 않아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다. 몇날 며칠을 사막에서 보내야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산다는 보장도 없었다. 가이드의 말처럼 맹수의 습격을 받기라도 하는 날이면 끔찍한 사태를 맞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이런 마당에 그들을 구해준 은인이니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았다.

지프차가 빠져나오지 않은 상태로 흥정을 했다면 모든 것을 내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차가 수렁에서 나온 이상 생각이 조금 달라진 것도 사실이었다. 있는 모든 것을 내놓기보다 넉넉하게 수고비를 지불할 생각이었다. 박교수가 난감만 표정으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때 오원장이 앞으로 나서며 짧은 영어로 말했다.
“얼마를 드리면 되겠습니까?”

하지만 그의 반응은 의외였다. 도리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내보였다. 기름때가 잔뜩 묻은 손바닥이 고스란히 내려다 보였다.
김 사장이 돈이 적어서 그런 모양이라며 뒷주머니에서 두둑하게 지폐를 끄집어냈다. 그러자 사내는 한발 물러서며 손사래를 쳤다. 이어 양손을 다시 내보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어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과 그들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친구.”
“..........”
“우리는 친구. 어려움을 당했을 때 도와주는 것이 친구.”
“..........”

“이 다음에 길을 가다 어려운 친구를 만나면 그를 도와주세요. 그러면 내 빚을 갚는 거요. 오케이?”
“..........”
그는 서둘러 낡은 트럭에 올랐다. 짙은 선글라스 너머로 눈인사를 했다. 이어 창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낡은 트럭을 타고 모래먼지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신기루처럼.... <끝>

▲이광희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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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디트뉴스24 사장·소설가

이광희 소설가는 지난 1997년 구인환 선생과 윤병로 선생의 추천으로 천료되었으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붉은새> 상·하, <청동물고기> 1·2·3권, <소산등>, <문화재가 보여요>, <충청혼맥> 등이 있다. 현재는 본보에 연재소설 <진시황과 여>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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