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 봉선

기원전 219년. 시황제가 농서와 북지를 다녀온 이듬해였다.

늦은 밤, 달빛은 고요한데 잠이 오질 않았다. 자리에서 뒤척이다 침전 문을 활짝 열고 밖을 넘어다보았다.

달빛아래 저만치 첩첩으로 쌓인 구중궁궐이 희미하게 보였다. 나무들과 높은 담 그리고 지붕으로 이루어진 풍경이 달빛과 어우러져 너무나 아름다웠다. 멀리 개 짖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시황제는 한참동안 그 풍경에 취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숨 가쁘게 살아온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6국을 멸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곧이어 하나 둘씩 주변국을 접수하던 날들이 어제만 같았다. 전국이 피로 물들고 또 그 자리를 빌려 새로운 싹이 돋아나 산천을 푸르게 하는 것이 세상이치였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얼마나 죽었는가?’

혼자 되 뇌었다.

그러던 순간. 주변이 적적하여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침전 한가운데 황촛불만 어둠을 밝히며 타고 있었다.

물론 내관이 문밖에 서서 자신의 잠자리를 살피고는 있었지만 그 또한 남이었다.

시황제는 그제야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적만 감돌았다.

일순간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구중궁궐의 높은 담과 지붕도 그 답답함을 재촉하는 산물들이었다. 나무도 그렇고 매일같이 대하는 사람들도 그러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2년은 통일제국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살아온 나날들이었다. 오로지 일에만 매달려 살았다. 매일같이 산처럼 쌓이는 결재 서류를 읽고 검토하고 재가하는 일로 살았다.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황제는 자문하며 침전을 오갔다.

‘아니다. 그래도 짐이 전쟁을 종식시킴으로써 많은 백성들이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질 않는가. 이보다 더 큰 성과가 어디에 있겠는가. 5백 수십 년간 죽고 죽이는 아수라장에서 그들을 건져낸 것은 내 생에 가장 큰 보람일 것이로다. 하늘이 준 복덕이로다.’

스스로 자위했다.

‘그런데 통일제국이 제대로 안정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또 수령들은 제대로 일을 하고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정국 안정에 대한 신하들의 보고가 연일 잇따르고 있지만 정말 안정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느 구석에서 또 어떤 자가 무슨 수작을 부릴지 누가 알겠는가.

게다가 군현제를 처음 실시했으므로 고을 수령들이 자신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욱 불길한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용의 초리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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