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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3)

[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31>

정승열2017.07.28 15:05:12

▲사이판 지도.

섬의 절반가량이 밀림인 사이판에서 문명세계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정글투어(Jungle Tour)를 했다. 사실 정글 투어는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면서도  해보았지만, 그들은 원시인들이 아니라 이미 문명에 절반쯤 물든 사람들이었다.

사이판 동북쪽 밀림으로 들어가는 길은 우리의 가파른 시골 산길보다 더 열악한 비포장 길이었는데, 매일 한 차례씩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내리는 비 스콜(Squall)이 내려서 더욱 질퍽한 흙탕길이었다. 무더운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서 축 늘어진 풀잎과 나뭇가지들로 자칫 노출된 팔과 다리를 다칠 염려도 있었으나, 콘크리트 숲에서만 살아왔던 자식들에게는 자연의 손길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정승열 한국공무원문학협회 회장

사이판에서 가장 높은 산은 타포차오산(Tapochao Mt.)인데, 겨우 해발 473m이다. 타포차오산은 원주민어로 ‘Ta’는 신(神)을 뜻하고 ‘Pochao’란 축복의 땅이라고 하니, 그 의미는 짐작할 만했다. 산 정상에 오르니 섬 전체는 물론 멀리 마나가하 섬 등 부근의 많은 섬과 항상 정박한 채 태평양의 사방을 감시하고 있다는 미 7함대의 군함 3척도 보였다.

정상에는 최근 예수 그리스도 입상이 있는데,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서 가톨릭이 전파된 사이판에 조금은 낯선 모습이어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조그만 성모 마리아 상이 있는데, 이것은 태평양전쟁 당시 원주민들이 이곳에 숨어서 지내는 동안 바위틈에서 매일 마실 수 있을 만큼의 생수가 흘러나와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마리아 상을 세웠다고 한다.  

스페인 점령 때부터 가톨릭을 믿게 된 원주민들은 살아남게 된 것을 성모 마리아의 은혜로 여기고, 지금도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는 아픈 사람들에게는 약수로, 또 아들을 기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수로 이용될 정도라고 했다.

▲하늘에서 본 사이판.

타포차이산에서 짙푸른 태평양과 시원한 바람을 맛보기도 전에 또다시 내리는 스콜을 맞으며 다음 코스인 저주의 해변(Turboprop beach)으로 이동했다. 동쪽 끝 계곡에 있는 저주의 해변은 원주민어로 ‘Ropopo’가 ‘저주의 땅’이라 한다고 하니, 곧 ‘신이 저주한 땅’인 셈이다. 얼마나 살기에 힘들면 신이 버린 저주의 땅이라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해안의 단애가 열쇠 통처럼 움푹 팬 지형에다 갈라진 양쪽의 높은 절벽의 모습은 각각 특색이 있었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노래방에서 잘 나오는 바다 배경이 되는 장소라고도 하는데, 협곡의 오른쪽 절벽은 마치 서양인처럼 오뚝한 콧날을 한 옆 얼굴 모습이고, 왼쪽의 바위는 동양인의 옆얼굴과 비슷한데, 서양인을 닮은 단애를 ‘바다노인(Oldman by the Sea)’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내겐 이런 협곡의 기묘한 모습보다는 왼쪽 절벽위에 일본인이 만들었다는 골프장과 하얀 휴게실 건물이 이채롭게 보일 뿐이었다.

▲만세절벽.

다음에는 정글투어의 핵심인 원주민 농장구경을 하러 갔다. 농장은 야자나무나 파인애플 나무를 베어내서 만든 햇빛가리개 지붕과 통나무 탁자를 마주보고 앉도록 만든 나무의자가 전부였는데, 짐작으로는 어느 한 사람의 농장이 아니라 아마도 인근 원주민들이 공동으로 판매하는 곳 같아 보였다. 우리는 통나무 걸상에 걸터앉은 채 만세절벽에서 노점상에게 사먹은 것과 같은 1개에 2달러씩 하는 야자를 사서 빨대 2개를 꽂고 가족 넷이 둘씩 머리를 맞대고 마셨다. 밀림속의 원주민들도 이렇게 달러를 벌어서 생활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원시인은 아닌데, 흥미 있는 것은 야자열매 껍질을 이용하는 방법들이었다.

국내에도 많이 수입되고 있는 코코넛(야자)은 마치 우리의 박덩이와 비슷한 모양인데, 껍질에서부터 알맹이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신이 내려준 과일” 이라고 한다. 길이가 6~9m나 되는 야자 잎은 원주민들의 지붕으로 쓰이고, 줄기는 다발로 묶어서 튼튼하고 질긴 빗자루로 사용하며, 야자나무는 우아함과 견고성을 살려 전통가옥 및 가구, 보트를 만들기도 한다.

▲새섬.

뿌리는 마약 성분이 있어서 옛날부터 진정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참 자라는 코코넛 나무의 맨 꼭대기에는 '야자나무의 심장(Heart of Palm)'이 있어서 이 부분을 잘라내면 나무가 죽어버린다고 한다. 야자나무 심장부분은 그 맛이 일품이며 통상 샐러드에 넣어 먹는데, 샐러드 이름이 '백만장자 샐러드(the millionaire's salad)'라고 한다.

코코넛 열매를 감싸고 있는 섬유 층을 코이어(Coir)라고 하는데, 코이어는 카펫이나 매트리스, 로프, 차량시트 등의 원료가 되며, 시판하는 모기향의 원료라고 했다. 또, 덜 익은 코코넛 즙은 수인성 질병이 많은 열대지방에서 원주민들의 중요한 천연음료수로 이용되고, 잘 익은 코코넛 열매 속에 있는 하얀 살(copra)에서는 무색투명한 기름을 추출하는데, 이것이 ‘기적의 기름’이라고 불리는 ‘버진 코코넛 오일(Virgin Coconut Oil)’이다.

▲타포차이산 그리스도상

중성 지방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버진 코코넛 오일은 피부에 기생하는 곰팡이, 바이러스 등 각종 세균을 죽이는 멸균효과와 습진, 비듬제거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야자 속을 말려서 만든 “크루드 코코넛 오일(Crude Coconut Oil)”은 건강식품, 스킨 마사지 오일, 비누, 바이오 디젤유로 사용된다.

▲성모마리아상.

야자 껍질(Coconut Shell)은 지구상의 식물 열매 중 가장 단단하다고 하는데, 일반 칼로는 잘라지지 않아서 날카로운 특별한 칼로 잘라야 할 정도다. 야자 껍데기는 반나체로 사는 원주민 여자들이 밀림에서 노출된 젖가슴을 다치지 않도록 야자열매를 절반으로 자른 뒤 끈으로 연결해서 젖가슴 가리개(브래지어)로 사용하고, 또 바가지․ 수저 기타 여러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런 생활용품을 토속기념물로 팔기도 했다.

또, 숯을 만들기도 하는데, 야자나무 숯은 가스 및 색소 등을  걸러낼 때에 사용되는 상수도 정화에서 활성탄(活性炭), 상토용 비료(Cocopeat), 동물사료, 토지개량제, 축사(畜舍) 흡습제로 사용되는 등 야자열매는 어느 부분 하나 버릴 것이 없는 귀중한 것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원주민 댄스.

다음에는 투계(鬪鷄) 구경을 했다. 투계는 마치 우리의 화투나 마작 같은 도박으로서 사이판에서 가장 오래된 인기 있는 경기라고 하는데, 약 2-3평정도 될까 싶은 네모진 통나무 울타리 안에 닭 두 마리가 싸우는 모습은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상대방 닭을 공격하여 치명적인 상처를 입도록 닭의 두 다리에 날카로운 칼을 깍지로 매단 것이 인상적이었다. 단조로운 밀림생활에 권태를 느낀 원주민들은 투계를 좋아하며, 투계에 빠진 사람들 중에는 재산이나 신세를 망치는 경우도 많다고도 했지만, 사실 투계는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도 즐기는 놀이이기도 하다.

▲코코넛.

정글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2차 대전 후 섬의 지형을 수색하던 미 해병대가 처음 발견했다고 하는 “여옥 동굴(女玉洞窟)”이었다. 당시 밀림 속의 천연동굴 속으로 약300m정도 들어간 굴 안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수많은 유골을 조사한 결과 한국여인들만 사용하는 비녀와 노리개가 다수 출토되어서 이곳이 한국에서 끌려온 위안부여성들이 갇혔다가 일본군의 패망으로 모두 굶어죽은 것으로 추정했다고 했다.

그러나 정글투어를 안내하는 교포 가이드가 랜턴 하나로 컴컴한 동굴 속을 안내한다는 것은 교민들 대부분이 관광관련 업소에 종사하며 살고 있는 사이판에서 조그만 안내문을 세우거나 동굴로 들어가는 가파른 비탈길에 조명등 같은 간단한 시설 하나 만들지 않은 채 관광객의 주머니만 훑어내려고 하는 자세가 얄밉게 생각되었다.

▲저주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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