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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후계자의 ‘백호대살’, 놀라운 반전

[미노스의 동화마을] <1> 운명과 숙명

미노스2017.07.31 10:46:46

▲<디트뉴스>는 격주로 동화작가 미노스의 동화마을을 연재합니다. 아이에게 읽어주는 동화부터 어른을 위한 동화,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동화까지. 미노스가 펼쳐 보이는 환상의 세계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예약을 했음에도 대기실에서 족히 1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미모는 양미간에서 출발한다.

시원하고 맑은 눈, 짙으면서 분명한 두 눈썹.
조각 같은 콧날에 흰 이마.
준수하게 생긴 젊은이가 말없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름이 단정하게 흐르는 고급 복지와 허리 벨트는 이 신사가 돈도 꽤 있고, 매우 교양 있는 풍모의 소유자임을 한 눈에 느끼게 해준다.

이곳은,
예약 없이는 만나 볼 수도 없는 최고수의 추명학 명인이 있는,
‘관운정’…
이른바, 백발백중 도사의 집이다.
은밀하고 중요한 비밀이 오가는 곳인 만큼, 대기실은 격자형으로 설계되어 손님의 신원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따끈한 중국차를 마시면서, 젊은이는 거의 미동도 하지 않고 순서를 기다렸다.
이윽고 안에서 들어오라는 시그널이 왔다.
세 사람 이상이 들어서 앉기에는 좁은 듯한, 차탁을 가운데 놓고, 장식도 인테리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은 듯한, 그러나 정갈한, 아는 사람이 보면 잘 계획된, 조명과 함께 인도산 향의 신비감과 신뢰감이 동시에 우러나도록 구성된 방이었다.

도사는 방석 위에 앉아, 들어오는 젊은이를 유심히 살폈다.

‘차디찬 외모, 절제된 발걸음, 여유 있는 표정, 외로움, 고뇌…’

범상치 않은 상이다.
거부의 아들.. 그런 관상이다...

긴장이 되는 듯 도사의 얼굴 근육이 살짝 움직였다.
젊은이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고개를 숙여 목례를 했다.
그리고 양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두툼한 흰 봉투를 꺼냈다.

“300만원입니다. 죄송하지만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분, 모두 취소하시고 오늘 저에게만 집중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부탁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청하는 자세에서 거만 끼는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
맑고 청아한 소리. 수성(水聲)이다. 물이 흐르는 소리이다.
쇳소리(金聲)를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깊은 음성이었다.
생각보다 침착한 사람이다. 어딘지 거부하기가 어려운 카리스마도 엿보인다.
도사는 웃지 않았다.
그것이 내공이기 때문이다.
소리 없이 시중인을 불러 손님들 예약을 취소하라는 지시를 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까딱하며 예의바르게 다시 인사하는 젊은이를 도사는 실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아니 뜯어보았다.

‘일본인 피가 흐르나?’
사무라이 냄새도 난다.

그 다음부터는 루틴 한 프로세스다.

‘생년월일과 주소. 그리고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핵심을 말해 달라는 주문이다.
도사는 붓과 먹으로 사주를 풀어가면서 관상을 살폈다.
사실 사주보다는 관상이 손님의 궁금증을 해소하기에는 적절할 때가 많다. 관상은 최근의 운세 반응이 여실히 나오는 창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주가 닫힌 큰 창고라면, 관상은 열린 사랑방이다.

‘천을귀인(天乙貴人). 아주 좋은 운이다. 헌데 살(殺)이 있다.
도화살, 역마살, 역살이 보인다.’

해석하기 어려운 사주였다.
도화살(桃花殺), 역마살(驛馬殺)은 옛날에는 좋게 보지 않았던 살이었다. 특히 여성에게 보이면 망조(亡兆)라 했다.
지금은 다르다. 도화살, 역마살 없이 인기직업이나 비즈니스는 성공하기 어렵다.
이 자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도 많고, 해외출장도 많이 다니는 재벌의 자제라고 볼 만한 사주였다.

그런데 백호대살(白虎大殺)도 엿보인다.
무엇인가? 배신과 잔인성이 있는 성품이다.
잘 되면 재벌그룹의 회장이나 큰 정치인에게 보이는 살이다.
안 풀리면 조폭대장쯤 되는 놈이다.
다시 살폈다.
헌데, 부모를 잘 만났다.

좋은 사주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습니까? 궁금하신?”

도사가 묻자, 젊은이는 조용히 입을 떼었다.

“이 나라의 운명이 어떻습니까?”

“……?”

“이 나라, 국운이 어떻습니까?
도사님은 개인이 아니라 한 나라의 운도 점치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백성들에게 이토록 중요한 운은 없지요.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는 이 젊은이가 3백만원을 내놓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천기를 누설해 달라는 것이렷다!

“스케일이 작으시군요. 그 정도라면 3천만원은 내놓으시던가..”
젊은이도 웃지 않았다.

“들어보고, 드릴만하면 드려야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되었다.

“무엇이 궁금하시오? 전쟁? 대통령? 경제?”

“대통령입니다. 누가 되겠습니까?”

도사가 가만히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대통령이 되고 안 되고는 그 개인의 팔자겠지만,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는 국가의 운이요, 한 나라의 국운이란 말이오. 그러니 그걸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오. 우리 같은 점쟁이도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개인 운으로는요? 후보자 한사람, 한사람 짚어볼 수 있지 않아요?”

“사장님. 아니 회장님... 곧 되실 지도 모르니까..,
운이 좋아야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수도 있지요.
반대일 경우도 많습니다. 악운이라는 거지요. 평온한 삶을 살 사람이 왕이 되어 역사의 역적이 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지 않소? 좋은 운이겠소?”

“……”

“대원군은 아버지 묘소를 천하명당이라고 알고 썼소이다. 왕 터로 보았소. 맞았소이다. 자신도 왕이나 진배없었고, 아들도 왕이 되었으니... 고종 말이요. 하지만…”

도사는 벨을 눌러 시중인을 불렀다.
중국차를 한잔 더 마시자는 것이었다.

“고종은 평화롭게 살 팔자가 왕이 되고부터는 참담하기 이를 데 없이 되었지요. 부인 민비 명성황후? 국모라 했지만, 왜놈 깡패에게 살해당하고 나라는 패망하고 신하들은 배신하고 백성은 종이 되고, 자기는 죽도록 고생하다 독살 당하지 않았소?
운이 좋아 왕이 된 것이 아니고 나빠 왕이 된 것이요.”

그러나 준수하게 생긴 젊은 회장은 단정했고, 단호했다.
다시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튼 누군가 대통령이 되긴 될 것 아닙니까? 누구냐고요...
말씀해 주십시오.”

도사는 젊은이를 응시하였다.
모른다 하면 박차고 나갈 것 같고, 말해 주자니 그럴 일은 아니었다.

“회장님이 왜 이 문제를 묻는 건지 말해주시오. 그럼 회장님 사주와 연관하여 풀어보겠소. 돈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오. 그리고 나는 대통령 후보자들 생년월일도 몰라요.”

도사가 결연하게 말했다.
그러자 젊은이가 품속에서 쪽지 한 장을 천천히 꺼냈다.

▲삽화=서동주.


“여기 있습니다.”

젊은이가 보여주는 쪽지에는 대통령 후보자들 생년월일이 또박또박 음력으로 적혀 있었다.
작심하고 온 젊은이였다. 역시...

도사는,

“그런데 왜 알고 싶으신 거요? 최근 부도난 계열회사와 무슨 관계라도 있습니까?”

젊은 회장이 움찔했다.
“그런 것도 사주에 나옵니까? 음...
좋습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하면서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에 따라 우리 그룹의 사활이 걸려 있습니다.
한국에서 작은 사업으로 장사하던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떠나 무역업을 일으켜 이제는 전 세계 누구라도 알만한 그룹이 된 것은 그 분의 사주팔자였겠지만, 당시 대통령이 뒷받침을 해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우리는 그걸 너무도 잘 압니다.

어떤 이념과 정책을 가진 대통령이 되느냐는 향후 우리 그룹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룹경영의 방향을 거기에 맞추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새로운 사업 아이템은 세계 시장판도 상 곧 론칭을 해야 하는데 1년 후까지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결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도사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렇군. 이 녀석의 고뇌란 것이...
회장자리 승계야. 자기 아이템이 사느냐 죽느냐에 따라 후계자가 결정도 되겠지…’

도사의 숙고는 길었다.
대통령 후보자들의 사주를 이미 머릿속에 다 그려 놓았다.
누군지는 나왔다. 그런데 이 녀석과의 관계는?
서로 합(合)인가? 충(衝)인가?

차 한 잔을 더 마셨다.

충이다. 상극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말할 것인가.
당신은 회장이 되지 않는다고 할 것인가?
차 한 잔 더...
이윽고 도사가 말문을 열었다.

“당신과는 맞지 않을 분이 될 수도 있겠소.”

순간 젊은이의 양미간이 처연한 골을 이루었다.

“누굽니까? 이 중에서?”

“그걸 말할 수는 없소. 우리에게도 천기는 천기니까...
천벌이 있소이다.”

이번에는 젊은이가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말해주시오. 누군지. 3천만 원이요. 부탁합니다.”

“……”

도사는 고개를 보이지 않을 듯 저었다. 거부의 표현이었다.
젊은이가 다시 말했다.

“한마디만... 이 사람입니까?”

젊은이가 도사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도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사람입니까?”

쪽지에 쓰여 있는 후보자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깜박이지도 않고 도사의 눈을 응시하였다.
도사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순서의 후보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젊은이의 눈동자는 필사적이었다.
답을 하지 않는 도사를 날카롭게 직시하다가 젊은이가 눈을 내리 감았다.
달관한 스님처럼 조용히 말했다.

“좋습니다. 알겠군요. 도사님의 눈빛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군요.”

그리고는 눈을 번쩍 떴다.
도사는 흠칫했다.
살기!...
젊은이의 눈에 살기가 벼락같이 스쳐갔다. 틀림없었다.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 자가...이 자가...’

젊은이의 사주를 다시 한 번 머릿속에서 리뷰를 했다.
아, 그것이었다. 그 알 수 없는 살기...
살인자의 사주였다. 한 사람을 죽이는 사주였다.
그는 대통령 후보에 대해 살의를 품고 있는 것이었다.
그 재벌 그룹의 파워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제3국의 청부 살인자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대선 후보자들은 경호에 취약하다...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지만, 애써 자제하였다.
내공의 힘이 필요했다.  젊은이는 도사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다시 차 한 잔.
따라주는 차를 한잔 마시고 나서 젊은이는 이렇게 물었다.

“도사님.
사주는 얼마나 맞습니까? 도사님은 100% 맞춥니까?”

도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가늘게 떨리는 것 같았다.

“아니오. 솔직히.. 100%란 없지요.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도사님 본인 사주는 어떠신가요? 평생 맞으시던가요? 이제까지?”

이 자는 나를 테스트하고 있다.
두뇌회전이 필요했다.
그는 내 눈을 보고 누가 대통령이 될지 눈치 채고 있다.
사주가 맞는다는 확신을 그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무서운 일을 저지를 것이다. 반드시...
도사가 말했다.

“제 것이야 거의 맞았지요. 밤낮 연구하고 보니까. 사주도 해석이 각양각색이니까요... 하지만 남의 사주는 안 맞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어쩔 수 없지요.”

도사는 자리를 정리하고자 했다. 이 대화는 곧 끝내야 한다.
젊은이는 점잖게,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말투로 말했다.

“도사님. 저는 도사님 점궤가 제발 맞기를 기원합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이 답답하고 우매한 중생을 생각하면 도사님은 하늘이 내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미래를 알 수 있다면 백성들이 그렇게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부디 진실을 말해주십시ㅗ.
도사님. 직업은 천직입니까? 하늘이 정하는 것이니 직업도 자기 뜻대로 선택하지 못합니까? 운명은 도저히 바꿀 수 없습니까?”

도사에게 평생 쏟아져 왔던 질문이었다. 답은 쉬웠다.
조심스러운 찬스였다.
“분수를 알아야지요. 하늘은 사람에게 분수를 주었지요. 분수란 그릇을 말합니다. 분수를 넘으면 천벌이 내립니다. 도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죽습니다. 사주란 분수를 보는 겁니다. 그게 운명이지요.
저는 사주보는 팔자예요. 제 팔자는 사주를 볼 때 편안하게 명대로 삽니다. 그래서 다른 일을 넘보는 일은 절대 안 해요.
절대 안합니다. 절대로…”

도사는 이 말이 젊은이에게 강력한 메시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쨌든 이 손님은 이제 보내야 한다. 아니면 자꾸 빨려 들어간다...

“감사합니다.”

젊은이는 처음 올 때와 마찬가지로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오른쪽 포켓에서 수표책을 꺼냈다.

“3천만 원입니다.”

수표에 능숙하게 사인을 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저 농담을...”

젊은이는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고 방을 나가 버렸다.

젊은 손님이 가고 나서 도사는 직원들을 불러 오늘 더 이상 손님을 받지 말라고 단단히 말했다.
쉬고 싶었다. 몸이 아파왔다. 오한이 있는 듯 오싹 추우며 떨려왔다.
 
직원들이 문단속을 하고 모두 인사를 하고는 퇴근하였다.
조금 안정이 되는 듯 했다.
다시 차 한 잔을 마셨다.
차탁 뒤에 있는 방석에 몸을 뉘었다.
눈을 감았다.
시간이 흘렀다. 어스름 해가 넘어갔다.

그때였다.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젊은이였다.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는 도사를 젊은이는 재빨리 단단한 양 무릎으로 제압했다.
그리고 도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사님.
운명은 어찌할 수 없나 봅니다. 당신은 내가 대선 후보자를 암살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밀을 안 유일한 사람. 당신을 살려둘 수가 없습니다.
살인자... 그것은 내 운명이겠지요.
그런데 당신 본인 사주를 보면 명대로 편히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건 틀리는군요.
그렇게 틀리는 사주로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업보를 저질렀소.
오늘 죽어주시오. 당신이 오늘 내 손에 죽는 것은 그러한 업보에 대한 당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하시오.
내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죽어 주셔야 되겠소.
국운도 국민이 바꿀 수 있어야지요...”

양 무릎과 두 팔로 목을 조여 오는 젊은이의 힘에 저항할 수는 없었다.
숨이 막히면서도, 도사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뿔싸. 네 놈이 네 놈이...
내가 네 놈을 알았는데, 정작 나를 몰랐다니...
내 운명이 이건 아닌데, 아닌데...
네 사주는 한 사람 밖에는 못 죽인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것도?’

깊은 회의와 좌절감이 더욱 목을 조여 왔다.

고개를 툭! 떨구며 도사는 죽었다.
젊은이는 수표책을 말없이 포켓에 넣고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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