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시황제 폐하의 분부를 어기겠나이까? 분부받자와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나이다.”

낭중령 조고는 머리를 조아리고 침전에서 물러났다.

그날 밤 시황제는 야반도주를 하듯 함양궁을 빠져나와 양산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은 함양궁과 별로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었지만 산으로 겹겹이 쌓여있어 인간 냄새를 맡기 어려운 그런 곳이었다. 경치는 빼어나고 수풀은 우거져 궁이 있는지조차 밖에서는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시황제는 그날 밤 숲에 둘러싸인 양산궁에서 하루 밤을 보내자 기분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공기자체가 함양궁과 달랐다. 함양궁은 함양성에서 백성들이 음식 만드는 냄새며 인분냄새, 하수구 냄새 등 온갖 잡스런 냄새가 혼탁하게 고여 있다면 그곳은 신선한 소나무 향기와 수풀들이 뿜어내는 청초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시황제는 자신이 왜 일찍 이곳으로 오지 않았을까 라고 후회할 만큼 좋은 기운이 넘쳐났다.

그는 노생과 삶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선인이 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담소를 나누며 소일했다. 정말 자신이 신선이 된 기분마저 들었다. 매일 이른 아침 양산궁이 담을 친 산마루에 올라 함양성을 내려다보며 하잘 것 없이 살아가는 백성들을 엿보며 자신은 분명 하늘이 내린 선인이라고 자부했다.

한편 시황제가 사라진 함양궁은 야단이었다. 연일 조당에 대신들이 모여 대책을 숙의하느라 부산했다.

“도대체 시황제 폐하께옵서 어디로 가셨단 말인고?”

승상 이사가 한탄스런 듯 말했다.

“대신들 중에 시황제 폐하의 행차를 아시는 분은 안계시오니까?”

승상이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승상께서 모르시는 일을 우리가 어찌 알겠나이까? 답답한 일이옵나이다.”

대신들이 입을 모았다.

“낭중령께서도 시황제 폐하의 행차를 모르신단 말이오?”

조고가 눈을 아래로 깔고 대답했다.

“제가 안다면 왜 이러고 있겠나이까? 시황제 폐하께옵서 간밤에 어딘가로 행차를 하신 모양인데 그곳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시황제 폐하께옵서 이 낭중령 마저 떼놓고 가셨으니 어찌 보면 이 몸이 가장 답답해야 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소이까?”

조고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무는 어떻게 처리한단 말이오. 답답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승상 이사가 긴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야 승상께옵서 시황제를 대신하여 정무를 돌보시다보면 언젠가는 돌아오시지 않겠소이까. 지금으로서는 그 길밖에 또 무슨 도리가 있겠소이까?”

낭중령 조고가 말하자 대신들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승상께옵서 시황제 폐하의 정무를 대신하시고 폐하께옵서 돌아오시면 그때 소상히 고하시면 될 터이오니 그렇게 하심이 마땅한 줄 아옵니다.”

이번에는 대신들이 그렇게 하자고 주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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