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인생과 처세] <320>

기다림의 대명사 하면 강태공을 들 수 있겠다.
강태공의 평생은 한 마디로 기다림의 한평생 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160년을 살았다는 강태공의 삶을 두고 궁팔십 달팔십(窮八十 達八十) 즉‘80년을 초야에 묻혀 궁핍하게 살면서 때를 기다렸고 80년은 세상에 뜻을 이루며 살았다.’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강태공은 지금부터 약 3천 년 전 고대 중국의 주왕조 초기 사람이다.
본명은 강상(姜尙)이고 별칭으로‘여상(呂尙) 또는 강태공(姜太公), 태공망(太公望)’으로 불리었다.
강태공은 주 왕조를 건국한 문왕, 무왕의 군사(軍師)로서 주왕조 건국의 일등공신이었고 후에 제(齊)나라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강태공의 기다림의 삶을 살펴보면,

▴ 궁핍함속에서도 책읽기에 열중하였다.
하왕조 때 지배계층이었던 강태공의 선조는 은왕조 때에 와서 몰락하여 평민으로 전락하였고 강태공에 이르러서는 천민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러한 강태공은 밥장사, 도살 업에 종사할 정도로 빈천하게 살았다.
강태공은 그러한 궁핍함 속에서도 책읽기에만 열중하여 결혼하여서도 가정생계는 부인인 마씨가 도맡아하였다.

어느 날 부인 마씨가 책만 읽고 있는 강태공에게 비가 오면 마당에 널어놓은 보리를 거두어 놓으라고 당부를 하고 들로 일을 하러 나갔다.
얼마 후 비가 많이 와서 부인이 일하다 말고 집에 와보니 마당에 널어놓은 보리가 모두 빗물에 떠내려가고 없더라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여기서 표맥(漂麥) 즉‘빗물에 떠내려간 보리’라 하여 글을 읽는데 몰두하여 다른 일을 모두 잊어버린다는 뜻의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 낚시를 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 당시 정치 상황은 은왕조 마지막 왕인 폭군‘주(紂)왕의 학정으로 민심이 서백창(文王)에게 옮겨가고 있었다.
이러 할 때 강태공은 위수(渭水)에서 낚시를 하면서 세상사에 대한 뜻을 펼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말해 폭군 주(紂)를 무너뜨리고 서백창(文王)을 도와 천하사(天下事)를 도모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린 것이다.

▴ 드디어 때를 만나 天下事에 대한 뜻을 펼쳤다.
하루는 서백창(文王)이 사냥을 나가려 귀갑점을 쳐보니 사냥에서 얻는 것은‘호랑이도 아니고 곰도 아닌 인재다.’라는 점괘를 얻었다.
그날 서백창이 위수상류로 사냥을 나갔는데 그 강가에서 곧은 낚시를 하고 있는 백발의 노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서백창은 그 노인에게 다가가 천하를 경륜하는 방법 등에 대해 문답을 하여 보고서는‘당신이야말로 우리 태공께서 기다리시던 분이요.’라는 뜻의‘태공망(太公望)!’하고 부르면서 경의를 표하였다.
이 말의 뜻은‘서백창’의 ‘조상 태공(太公)때부터 머지않아 큰 성인이 나타나 우리 주(周)족을 크게 부흥시킬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는데 당신이 바로 그분이요.’라는 뜻이다.

그러니까‘서백창’이 강상(姜尙)을 보고‘태공망!’하고 부른데서‘태공망’또는‘강태공’이라고도 불리게 된 것이다.
그 후 강태공은 군대를 통솔하는 총 사령관에 해당하는 군사(軍師)가 되어 서백창(文王)과 그의 아들 무왕(武王)을 도와 주(周)왕조 건국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공으로 제나라 땅 백리의 영토를 받고 제후로 봉해져 제(齊)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 강태공은 서백창을, 서백창은 강태공을 기다렸다.
강태공은 당시의 정세를 정확히 분석하여 현왕조의 무너짐과 새 왕조의 탄생을 예견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그 역사의 현장을 주도하는 주인공이 되리라는 목표와 확신으로 그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오랜 시간을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즉 서백창(文王)을 기다린 것이다.

서백창(文王)도 새 왕조 창건의 대업을 위해 인재를 기다렸다.
즉 강태공을 기다린 것이다.
그러니까 강태공과 서백창의 기다림과 만남은 역사의 기다림과 선택이 아니었을까 주역에서는 이견대인(利見大人) 즉‘성공을 하려면 대인 즉 후견인을 만나야 이롭다.’했다.

 강태공은 大人인 서백창(文王)을 만났기에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었고 서백창(文王)은 大人인 강태공을 만났기에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음이다.
그러므로 영웅호걸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뜻을 이룰 수 없음이다.
이 대목을 조선중기의 여류시인(정인인의 모친)은 이렇게 표현하였다.
‘만약 서백(문왕)이 수렵오지 않았다면 강태공은 평생 낚시나 하면서 오고가는 기러기와 벗했으리’(若非西伯獵 長伴往來鴻)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강태공의 부인 마 씨는 강태공이 출세를 하기 전 가난한 살림을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가 재가를 해버렸다.
제후 가된 강태공이 어느 날 수레를 타고 민정시찰을 나갔다가 우연히 옛날 자기를 버리고 재가한 마 씨가 들에서 보리를 훑고 있는 모습을 보고 수레를 멈추고 마 씨를 불렀다.
마씨는 옛날을 후회하며 다시 자기 자신을 받아주기를 간청했다.

이에 강태공은 한 번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듯이 한번 끊어진 인연은 다시 맺을 수 없다며 마씨의 청을 물리치고 떠났다.
그래서 나온 말이 엎질러 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뜻의 복수난수(覆水難收)이다.
이 후 마씨 부인은 가난하게 살다가 어느 고개 마루턱에서 죽었다.
그 후 강태공은 그래도 옛날부부의 연을 맺고 살았을 때 지은 신세를 갚기 위해 마씨 부인을 서낭신(마을수호신으로서 마을의 액운을 막고 잡귀를 막는 신)으로 만들어 주었다. 강태공은 죽은 마씨 부인의 혼이 잡귀가 되어 없어질 운명을 근 3천년 동안 사람들에게 향불과 제사를 받도록 하여 지난날의 은공을 갚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그렇다.
성공에는 반드시 利見大人(이견대인) 즉 성공을 이끌어 줄 수 있는 후견인이 필요하다.
仁德(인덕)을 베풀라 그러면 나를 도와 줄 人福(인복) 즉 후견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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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남 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강사
필자 김충남 강사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堂)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 대전시민대학,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 대전 KBS 1TV 아침마당 "스타 강사 3인방"에 출연

☞ 김충남의 강의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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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화요일 14시 ~ 16시) 논어 + 명심보감 +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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