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그날부터 모든 정무는 승상 이사가 보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사는 그동안 시황제가 보던 일들을 챙겼다. 여러 날이 지나고 달이 지나다보니 공석이 된 시황제의 자리를 승상 이사가 대신하는 꼴이 되었다. 대신들은 언제 시황제가 돌아올지 모를 일이었으므로 승상에게 잘 보이려 줄을 대곤했다.

이런 궁내의 사정은 낭중령 조고에 의해 하나도 빠짐없이 양산궁에 있던 시황제에게 전해졌다.

승상 이사가 시험대에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이사는 일거수일투족을 진중하게 움직였다.

시황제가 돌아와 자신의 일들을 추궁할지 모를 일이어서 모든 결정에 신중을 기했다. 자신의 언행에 대해서도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하지만 일부 대신들의 눈매는 달랐다. 승상 이사에게 잘 보이려 아첨을 떠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들은 승상의 궁내 출입이 직위에 맞지 않게 초라하다며 더욱 화려하게 꾸밀 것을 간청했다.

“승상 전하. 전하께옵서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계시는 분이옵나이다. 그럼에도 궁내 출입이 직위에 걸맞지 않게 초라하기 이를 데 없사옵나이다. 따라서 전하의 신분에 걸맞은 채비를 갖추고 궁을 출입하심이 가할 줄 아뢰옵나이다.”

승상은 일부 신하들의 주청을 마다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이사가 주저하는 사이 그들이 승상의 행차를 거창하게 하명했다.

따라서 승상은 조석으로 궁을 출입할 때마다 왕이 부럽지 않을 만큼 거창한 행렬에 쌓여 움직이게 되었다. 그런 모든 일들이 시황제에게는 은밀히 보고되었다. 하지만 시황제는 낭중령 조고의 밀지를 보고서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다. 시황제가 양산궁 뒷산에 올라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함양성을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한 무리의 거창한 행렬이 산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나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많은 병거가 도열하여 지났다. 그 뒤로 누군가가 탄 마차가 호사스럽게 따랐으며 더 많은 가마가 열을 지어 지나고 있었다. 또 그 뒤로는 창을 든 군사들이 전투대열을 갖추고 따르고 있었다.

그 위엄이 시황제의 그것 같지는 않았지만 일찍이 보지 못한 그런 당당한 풍경이었다.

시황제의 눈 꼬리가 올라가며 뒤따르던 나인을 불렀다. 미간이 찌부러져 있었다.

“저기 산 아래 지나는 행렬이 누구의 것인지 아느냐?”

양산궁의 나인은 시황제가 가리키는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승상 이사의 행렬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고할 수가 없었다.

“시황제 폐하. 어떤 분의 행차이신지 정확히 알 수 없사옵나이다. 하지만 사람을 보낸다면 즉시 어떤 분의 행차이신지 알 수 있을 것이옵나이다.”

“아니다 됐느니라. 하지만 감히 누가 저렇게 호사스런 행렬을 이루고 다닌단 말이냐. 백성들이 저런 모습을 보면 무어라 하겠느냐?”

시황제가 혼잣말처럼 주절거렸지만 말끝이 곱지 않았다. 시황제는 이미 그가 누구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낭중령 조고의 밀지를 통해 승상 이사가 일부 간신들의 꼬임에 빠져 호사스럽게 궁을 드나들고 있다는 것을 보고 받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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