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성에서는 “백호가 없는 골에 여우가 왕 살아 먹고 산다”는 이야기가 백성들의 입을 통해 번지고 있었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하지만 시황제는 스스로 선인의 경지에 이른 몸이라 생각했으므로 속세의 사사로운 일을 놓고 논하려하지 않았다.

승상이면 그 정도의 허풍을 부릴 수도 있다고 여겼다. 속으로는 승상 이사가 거만을 떠는 모습이 곱지 않았지만 자신이 비운 자리를 메우려면 그의 위상도 걸맞아야 한다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시황제는 다음날 같은 시각에 다시 산에 올랐다. 그리고 함양성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있었다.

하루 전의 행렬과 달리 너무나도 초라한 행렬이 산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나발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 많던 군거도 없었다. 여러 대의 가마와 병사들의 진군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몇 명의 호위병과 가마 한대만 쫄래쫄래 지나고 있었다.

시황제가 눈을 부릅뜨고 뒤따르던 나인을 향해 물었다.

“저 행렬이 누구의 것인지 아느냐?”

그러자 나인이 말했다.

“승상전하의 행렬이옵나이다.”

시황제가 눈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행렬을 누차 보아왔으므로 알 수 있나이다.”

나인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럼 어제 본 그 행렬은 누구의 것이냐?”

시황제의 말끝이 올라가며 물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뒤따르던 나인이 입을 열지 못했다.

“네 이놈. 네가 감히 짐을 능멸하려 하느냐?”

시황제는 고래 같은 고함을 지른 다음 호위를 담당하던 위위에게 즉시 나인을 문초하여 승상의 행렬이 어제와 다르게 된 연유가 무엇인지를 고하라고 일렀다.

따라서 위위는 즉시 나인을 끌고 산을 내려가 문초하기 시작했다. 갖은 매를 때리고 인두로 지지는 혹형을 가하며 승상의 행렬이 하루 전과 달리 간소화된 것이 나인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캐물었다.

그러자 나인이 죽을 지경이 되어 입을 열었다.

사실은 이러했다. 나인은 중인 신분으로 승상 이사의 도움으로 궁에 들어와 시황제를 가까이에서 모셔왔다. 그런데 시황제가 이사의 호사스런 행렬을 보고 불쾌하게 여기자 밀지를 넣어 이런 사실을 이사에게 알렸다. 물론 그 일들은 중인들이 담당했던 것이다.

위위는 나인의 실토를 낱낱이 적어 시황제에게 고했다.

“그놈들이 짐이 거처하는 것을 발설했단 말이냐. 능지처참을 해도 시원치 않을 놈들 같으니라고. 위위는 당장 그들을 잡아 모두 참하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시황제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하는 수 없이 위위는 부하들을 데리고 시황제를 모시며 따라다니던 중인들을 양산궁 밖으로 끌어내 모조리 참수하고 결과를 보고했다.

풀냄새와 나무 향으로 가득했던 양산궁은 피비린내로 얼룩졌다. 그 피비린내는 시황제가 쏟은 그동안의 정성이 허물어진 징표였다.

양산궁에 숨어 선인이 되고자 했던 꿈이 산산조각 깨어지고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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