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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니안 섬

[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33>

정승열2017.08.11 12:07:21

사이판에서 남쪽으로 약8㎞, 괌에서는 북쪽으로 약160㎞ 떨어진 섬 티니안(Tinian)은 면적 152㎢로서 사이판의 약4/5정도 크기이다. 티니안은 1521년 세계 일주에 나섰던 마젤란이 괌에 상륙한 뒤 인근의 로타 섬까지는 답사했지만, 티니언에는 상륙하지 않고 훗날 괌에 도착한 선교사 디에고 루이스 데 산비토레스(Diego Luis de Sanvitores) 등 5명이 처음 티니안에 상륙해서 포교를 시작했다고 한다.

▲정승열 한국공무원문학협회 회장

그 후 산비토레스 선교사는 괌과 사이판 일대의 섬들을 당시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2세의 왕비 ‘마리아 아나’의 이름을 따서 마리아나 제도라고 이름 붙였으나, 1670년 포교하던 선교사 루이스 데 메디나(Luis de Medina)가 티니안 원주민에게 살해되고, 또 최초로 포교에 나섰던 산비토레스 마저 괌에서 살해되자 스페인 정부는 1695년 티니안의 주민 전부를 괌에 강제 이주시킨 뒤 티니안을 무인도로 만들었다. 그 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은 괌을 빼앗기고, 1899년 티니안을 포함한 북마리아나 제도를 독일에 450만 달러에 매각했으나 제1차 대전 때 독일이 패하자 다시 일본이 차지했다.

일본은 1916년부터 1944년 8월 미 해병대의 공격으로 전멸할 때까지 28년 동안 사이판과 티니안 섬의 대대적인 벌목과 개간에 나섰는데, 티니안의 북부에 군용 비행장을 설치하고 육․해군 약8,500명을 주둔시켰다. 그러나 1944년 8월 미 해병대가 티니안을 점령한 이후에는 미국이 일본 본토를 공습할 기지로 삼고, B-29가 출격하는 공항으로 바뀌었다.

▲티니안 브로드웨이.

괌을 제외한 사이판․ 로타․ 야프 섬 등 북마리아나 제도(諸島)는 1947년부터 미국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가 1986년 신탁통치가 끝나면서 미연방의 북마리아나 제도의 일원이 되었다. 1945년 일제에서 해방된 한반도를 미, 영, 소 등 이른바 ‘모스코바 삼상회의’에서 신탁통치를 결정했으나, 우리 국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신탁통치 결정이 무산된 것을 생각해보면,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북마리아나 제도에 관하여는 2017.07.14. 사이판(1) 참조).

▲산호세교회 종탑.

티니안의 주민은 약3,500명으로서 원주민은 1,000명 정도이며, 나머지는 필리핀, 한국, 일본 등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원주민의 약 20% 정도가 일제 강점기 때 징용과 징병으로 끌려왔던 조선인의 2~3세라고 한다. 당시 이곳으로 끌려왔던 조선인들이 원주민이 사는 밀림으로 탈출하여 현지인과 혼인하여 김(金)씨 성을 가진 이가 지금은 King씨, 강(姜)씨 성은 Kiosshin, 신(申)씨 성은 Shing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특히 박(朴)씨 성을 가진 이는 원주민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다시 박씨 성을 가진 조선여인과 결혼하여 Park씨가 되었다고 한다.

▲티니안.

또 송(宋)씨 성을 가진 이는 이곳에서 살다가 인근의 Rota섬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Song sung Village를 이루고 있으며, 한편 당시 조선인으로서 일본군의 통역과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하던 전(田)씨 성을 가진 이는 종전 후 일본에 부역한 것에 대한 조선인들의 보복이 두려워서 조선인과 어울리지 못하고, 일본인 성씨인 마쓰모토(松本: Matsmoto)라 개성하여 살고 있다고 했다. 조선인의 후손들은 조상의 나라인 한국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티니안을 찾은 한국인들에게도 퍽 호의적으로 대해준다고 했지만, 이들과 직접 만날 기회는 없었다.

사이판, 괌 등 북마리아나 제도의 섬들은 2차 대전이후 소득수준이 높아진 일본인들이 호텔, 음식점 등을 지어서 마치 일본의 어느 관광지에 온 것처럼 일본풍이 물씬 풍기고 있다. 또, 괌이나 사이판에서 티니안까지는 페리가 운행되다가 최근에는 한 푼이라도 관광객들로부터 주머니를 더 훑어내려고 사이판공항에서 경비행기가 운항되고 있는데, 경비행기는 조종사를 포함해서 6인승~ 8인승이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티니안 섬에서는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매시 30분에 출발해서 사이판으로 돌아오는데, 비행시간은 약10분정도 걸린다.

▲한국인 위령탑.

항공료는 무려 왕복 99달러씩이다. 물론, 종전처럼 페리도 운항하고 있다. 페리가 기항하는 부두 캠머 비치(Camer Beach)는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군항으로 쓰던 곳이었으나, 미군이 점령 후 당시 점령군 부대장의 이름을 따서 “존슨 비치(Jhonson Beach)”라고 부른다고 하니 언제나 승리자의 이름만 역사에 기록되고 있는 것은 동․서양이 똑같은 것 같다.
 

▲타가하우스

그런데, 티니안 섬에는 대중교통이 없어서 패키지여행의 투어 프로그램이나 렌터카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그나마 섬의 남서부인 산호세 일대만 개발되었을 뿐 대부분이 밀림지대인데, 산호세 일대는 섬의 형상이 뉴욕의 맨해튼 섬을 닮았다고 하여 ‘브로드웨이’니, ‘8번가’처럼 뉴욕의 거리를 본뜬 도로이름이 많다. 특히 옛 건물 중 산호세 교회의 정원에 있는 스페인이 통치하던 시기에 세운 높이 20m의 교회 종탑에는 태평양전쟁 때의 포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티니안의 상징이 되어 '벨 타워(Bell Tower)'라고도 한다.

이런 불편함 속에서도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가고 있는데, 북마리아나 제도의 섬들은 대부분 산호초로 이루어져서 산호초 섬인 티니안 섬에도 곳곳에 태평양의 거센 파도가 높은 곳이 많다. 특히 섬 북동쪽 산호초로 이루어진 바위 암벽에 복잡한 구멍이 뚫려있어서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조수가 10m 가량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곳을 ‘블로우 홀(Blow hole)’이라고 하여 관광코스로 삼은 것은 조금 가소롭다. 화산섬인 제주도 서귀포 일대의 바닷가에서 밀물이 될 때마다 작은 물보라가 튀어나오는 것보다 약간 큰 모양이다.

▲타가하우스 석재들

해안가에는 마리아나 제도에서 가장 세력이 강했다고 하는 타가 왕조(Taga Dynasty)의 추장 타가가 살았던 타가 하우스(Taga House)를 비롯해서 타가 스톤, 타가왕조의 전용 물놀이 장이었다고 알려진 타가 비치 등이 있다. 타가 족이 왜 사이판이나 괌 같은 큰 섬에 터를 잡지 않고 티니안처럼 작은 섬에 정착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타가 하우스의 유적지가 매우 협소한 것을 보면 타가의 세력도 그다지 강력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직사각형으로 깍은 큼지막한 바윗돌을 겹쳐서 올린 타가 스톤은 중장비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얹혀서 세웠는지 궁금했다. 그밖에 티니안 비치, 출루 비치, 치겟 비치, 석회석 숲의 오솔길 등이 있으며, 티니안 비치에서는 오염되지 않은 태평양 바다의 수심 80m까지 바라볼 수 있어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청정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타가비치

또, 2차 대전 당시 일본해군의 첫 항공 함대사령부가 있던 콘크리트 2층 건물은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포격으로 훼손되었지만, 지금은 미 군사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이 미국 본토를 공습하려고 건설했던 공군비행장은 돌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데도 종전 후 50년이 지나도록 풀 한포기 자라지 않을 만큼 활주로의 견고함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는데, 이런 중노동을 한 근로자들은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 되었던 우리 조선인들이 아니었을까?

최근 티니안에는 일본인들이 점령하던 중 숭상했던 스미요시 신사(住吉神祠), NKK 신사 등을 복원했으며, 섬 중심의 언덕도 목초지로 개간해서 운영하는 MDC목장에 수천 마리의 젖소와 육우가 방목되고 있다. 이곳은 북 마리아나 제도에서 가장 큰 목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밀림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조선인 2~3세들에게 조상의 뿌리를 찾게 해주고, 한편으로는 징용되어 전사한 줄만 알고 살아가고 있을 고향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원혼으로나마 남지 않도록 해줄 방법은 없는 것일까?

▲티니안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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