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목록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성폭행 여중생 자살까지 우리는 뭘 했나

[임연희의 미디어창] <156>

임연희 기자2017.08.29 08:45:03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간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어두운 밤 학원 건물 옥상에서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지난 2월 성폭행을 당한 소녀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금요일 밤 건물 앞은 휘황찬란한 불빛과 웃고 떠드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소녀가 투신한 곳은 건물과 건물 사이 2m도 안 되는 좁고 컴컴한 공간이다. 수십 미터 발아래를 바라보며 서 있던 소녀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소녀가 성폭행을 당한 건 반년 전으로 그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겠지만 친구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는 게 더 무서웠을 것이다. 학교는 지난달 21일 소녀가 성폭행 당했다는 것을 알고 진상조사를 벌였다. 소녀의 부모는 성폭행 장소에 함께 있던 친구가 동영상을 찍었다며 경찰에 처벌해 달라는 고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학교는 매뉴얼에 따라 조사와 신고의무를 다했고 경찰은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개학 3일 만에 죽음 택한 여중생에게 우리사회는 무엇을 했나?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하지만 소녀는 개학한 지 3일 만에 죽음을 택했다. 그동안 학교는, 교육청은, 경찰은, 어른인 우리는 무엇을 했나? 성폭력 당하는 제 모습을 지켜보며 동영상을 촬영했다는 친구와 같은 교실에 앉아야 하는 개학날이 다가오는 게 소녀는 끔찍하게 싫었을 것이다. 모두가 뒤통수에 대고 수군대는 것처럼 불안했겠다. 선생님이든, 지원시설이든, 경찰이든 믿고 기댈 곳이 한 군데라도 있었다면 소녀는 그렇게 삶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열여섯 살 어린 소녀의 자살은 우리 사회가 함께 저지른 타살일지 모른다. 두렵고 초조한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상처가 빨리 아물 수 있도록 적극적인 보호조치를 했더라면 자살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 달째 수사를 하고 있는 경찰이 빨리 가해자를 검거했다면, 학교가 이 학생을 더 많이 배려했다면 최악의 선택은 안했을 수 있다. 매뉴얼대로 조사하고 신고했다고 학교와 교사가 그 역할을 다한 건 아니다.

언론이 공범, 가해자로 표현하는 같은 반 친구도 걱정이다. 가해 남성과 어떤 관계인지, 실제로 성폭행 동영상을 촬영했는지 여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아 경찰은 공범이나 가해자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이 학생이 받았을 정신적 피해도 간과하면 안 된다. 사실 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공범이나 가해자로 특정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로 인한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성폭력을 '영혼의 살인'이라고 부른다. 피해자에게 신체적, 심리적으로 상처를 남기고 심각한 후유증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특히나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당한 성폭력은 트라우마로 남아 삶과 정신을 피폐하게 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도와주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회복 속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성폭력이 발생하면 빨리 주위에 도움을 요청해 상처 치유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형식적 과정 거쳤다고 교사·학교·교육청 역할 다한 것 아니야

얼마 전 대전교육청은 학교폭력이 줄었다고 발표했다. 초등 4학년부터 고 3까지 1만4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피해응답률이 0.68%로 지난해보다 줄었으며 전국 평균(0.89%)보다도 낮다는 것이다. 교육청은 학교폭력 감소 이유로 인성중심 교육과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이 정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몇 달 전 발생한 여교사 성희롱 사건을 '영웅 심리에 따른 학생 장난'쯤으로 안일하게 인식하는 게 대전교육의 현주소 같다.

5년 전 어느 교사에게 들은 이야기다.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한 여중생이 자살하려고 여러 차례 자해한 것을 같은 반 짝꿍이 발견해 담임교사에게 조용히 알렸다. 짝꿍은 다른 친구들 모르게 매일 여학생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며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눴다. 그 사이 담임교사는 부모를 만나 설득해 아버지의 폭력을 멈추게 했다. 이번 여중생 자살사건을 매뉴얼대로 처리했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대목이다.

보호자 통보, 교육청 보고, 수사의뢰 등 형식적 과정을 거쳤다고 교사와 학교, 교육청의 역할을 다한 게 아니다. 교사는 학교에, 학교는 교육청에, 교육청은 경찰에 공을 넘긴 채 눈치만 봐선 안 된다. 신속한 수사와 함께 피해자의 상처를 빨리 치유하고 2차, 3차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차가운 바닥으로 몸을 던진 소녀는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정말 미안한건 자살을 막지 못한 우리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  
  •  
  •  
  •  
  •  
  •    
  • 맨 위로



시민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