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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여중생 자살 '매뉴얼만' 의존한 참극

전문가들 학교·교육청 미온적 대처 및 경찰 늑장수사 지적

임연희 기자2017.08.30 15:50:35

성폭행 당한 여중생이 지난 25일 투신자살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학교와 교육청이 진정으로 학생의 심리를 배려하지 않은 채 매뉴얼만 의존한 데서 벌어진 참극"이라고 진단했다.

학교와 교육청이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아이를 돌보고 경찰 수사가 신속히 이뤄졌으면 자살이라는 비극은 맞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해당학교 7월 21일 사건인지… 24일 교육청 보고 후 경찰 신고

A양이 성폭행을 당한 건 지난 2월인데 해당학교는 7월 21일 사건을 인지했다고 밝혔다.

학교 관계자는 "21일이 금요일이라 다음 주 월요일인 24일 자체 조사한 결과 큰 건이라고 여겨 즉각 교육청에 보고했다"며 "성폭행 가해자가 외부인이라 학부모를 통해 24일 경찰에 신고하도록 안내했다"고 했다.

학교 상담교사도 "24일과 25일 두 차례 사망학생과 상담했으며 해바라기센터에 의뢰해 그곳에서 상담이 이뤄졌다"며 "상담윤리상 이중관계 때문에 이후 아이와 직접 상담은 못하고 어머니에게 아이 상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학교는 7월 25일 여름방학에 들어가 8월 23일 개학했는데 A양은 개학 3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들은 경찰에서 "A양이 성폭행을 당한 뒤 계속 협박을 당하며 괴로워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지난 7월 'A양의 성폭행을 돕고 동영상을 찍었다'는 같은 반 B양을 처벌해 달라며 경찰에 고소장을 낸 상태다.

이현숙 대전성폭력상담소장 “교사 사건인지 순간부터 모든 시스템 동시 가동돼야”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매뉴얼에만 의존한 교육당국의 미온적 대처와 한 달 이상 끈 경찰의 늑장 수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현숙 대전성폭력상담소장은 "해당자들이 '난 사건을 연계했다'는 말로 책임을 면피하는 게 문제"라면서 "교사가 사건을 인지한 당시부터 모든 시스템이 동시에 가동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 소장은 "학교는 교육청으로 보고하고 사건을 경찰에 맡겼다고 모든 걸 다 했다고 하는 것은 아이를 대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져야할 자세와 윤리에 어긋난다"면서 "사건을 인지한 순간부터 학교, 연계기관이 아이와 끈을 놓지 않고 지속적으로 보호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매뉴얼대로 처리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 소장은 "해당 기관들이 매뉴얼에 따라 그저 흘러만 가니 마지막에 사건을 받는 사람은 총체적 그림을 그리지 못해 대단히 큰 사건을 소홀히 처리하는 것"이라며 "아이들이 처한 사건은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인데 매뉴얼에는 이런 사례개념들이 없기 때문에 해당자들이 아이와 긴밀하게 접촉하며 사건을 해결했어야 옳다"고 했다.

윤혜숙 대전지역사회교육협의회 회장도 "학교에서 교육청으로 보고하고 수사의뢰하는 등 현재의 매뉴얼에는 충실했는지 모르지만 갈등이 있는 두 학생을 방학이 끝난 후에도 한 교실에 배치하는 등 미온적으로 대처한 면이 있다"면서 "경찰 수사와 별개로 학교가 더 깊게 생각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해당학교 관계자는 "두 아이의 주장이 다르고 B양도 사건의 피해자일 수 있기 때문에 전학을 보내지는 못하고 학급 내 자리배치를 멀리했다"며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며 한쪽 이야기만 듣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단정 지을 수 어려운 상황이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정배 전 전교조대전지부장 “성관련 사건 처리하는 대전교육청 심각한 문제”

자살 사건 발생 후 닷새가 지나도록 교육감의 공식입장과 향후 대응방안을 내놓지 않는 대전교육청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현숙 대전성폭력상담소장은 "지난 6월 여교사의 수업시간에 중학생 10여명이 집단 음란행위를 벌인 사건도 대전교육청은 학교폭력이 아닌 교권침해로 축소했다"며 "아이가 외부인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뒤 자살까지 이른 엄청난 사건인데도 교육청은 그저 매뉴얼에 따라 처리했고 경찰 수사결과를 보겠다는 식의 대응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정배 전 전교조대전지부장은 설동호 교육감과 대전교육청의 사건의 축소 은폐 중심 행정을 비판했다.

지 전 지부장은 "중학교 남학생들의 여교사 성희롱 사건과 이번 여중생 자살 건으로만 봐도 성관련 사건을 바라보고 처리하는 대전교육청의 시각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매뉴얼에 따라 처리했다고 할 일 다 했다고 할 게 아니라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지 전 지부장은 "그동안 대전교육청의 문제처리 방식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쉬쉬하고 내부적으로 말맞추기와 축소 은폐에만 혈안이 돼 있다"면서 "일선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단순하게 보고 덮으려만 할 게 아니라 대응방안을 제대로 마련한다면 줄이거나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병로 대전교원단체총연합회장 “사전예방프로그램 미흡”

유병로 대전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공급자 위주의 수업과 위(Wee)센터와 티(Tee)센터 같은 사후관리시스템은 있지만 사전예방 프로그램이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유 회장은 "공급자 위주의 수업으로 교사들이 위축되다 보니 학생도 본인의 문제를 교사에게 솔직히 얘기하지 못하는 게 학교 현실"이라며 "아이를 학교에 믿고 맡길 수 있어야 하고 교사와 학교도 책임감을 가지고 관리해야 하는데 그런 환경이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 회장은 "대전교육청이 가정형 위(Wee)센터와 교원치유센터인 티(Tee)센터 같은 사후관리시스템은 있지만 사전예방프로그램은 미흡하다"면서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공유하고 교감하면서 갈등이 발생하면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전교육청 “직접조사 나가지 않았고 교육지원청으로부터 사안보고 받아”

한편 대전시교육청은 성폭행 여중생 자살 건에 대해 사안보고를 받았으며 후속대책으로 학생들에 대한 애도교육과 심리검사, 성폭력 예방교육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대전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 차원에서 해당학교로 직접조사를 나가지는 않았고 해당 교육지원청으로부터 사안보고를 받았다"며 "사건이 경찰에 넘어가 있는 상태여서 수사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갈등학생을 방학 후에도 한 교실에 배치하는 등 학교의 대응이 부실했다는 지적에 대해 교육청 관계자는 "언론은 학교의 조치가 잘못됐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며 "두 학생의 진술내용이 서로 달라 한쪽 이야기만 듣고 전학처리 등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위센터 심리전문가를 학교에 투입해 학생과 교직원에 대한 심리치료와 예방교육을 벌이고 있으며 전체 학생들에 대한 심리검사도 마쳤다"면서 "남은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좀 더 지켜봐 달라"고 했다.

유성경찰서 관계자는 한 달이 넘도록 수사가 지연된 데 대해 "학생들이 성폭행 장소와 용의자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전화번호와 인상착의도 딱 찍어 말하지 못해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용의자에 대해서도 조사는 했지만 혐의사실을 부인해 돌려보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분석하는 등 수사력을 집중해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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