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공포 양산한 주범은 ‘우리 자신’, 대물림 말아야


빠르고 간편하고 효율적인 것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살충제 계란 파동, 생리대 유해성 논란 등을 겪으면서 각종 화학제품에 대한 불신과 공포를 일컫는 ‘케미포비아(화학+공포증)’란 신조어가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대다수 언론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문제를 ‘케미포비아’의 근원으로 지목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권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유해성 화학물질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거나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는 대중의 공포증을 ‘증오 포퓰리즘’으로 치환시키는 1차원적 접근법이다. 언론이 ‘공공의 적’을 상정한 뒤 집중포화를 쏟아내는 상황에서 대중은 안도를 느낄 뿐, 반성적 성찰에 이르기 어렵다. 

이번 살충제 계란파동 등에서 확인된 정부기관의 미숙한 대처는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지만, 깊은 고민 없이 ‘빠르고 간편하고 효율적인 것’만을 선택해 온 우리 스스로가 공포를 양산한 주범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도 있다. 

이런 인식을 확장시키면, 공동체의 영속성 측면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후과(後果)를 고려하는 선택’ 즉, 좋지 못한 결과를 피하고자 하는 선택이 필요하다.  

불편하고 값비싸지만 ‘유기농 매장’을 고집하는 소비심리는 ‘후과를 고려하는 선택’의 대표 사례다. 친환경 농산물이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는 일반농산물 생산과 유통에 대한 불신, 즉 ‘케미포비아’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처럼 ‘후과를 고려하는 선택’이 공공의 관점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원자력발전 중단’에 대해 우리는 어떤 논란을 벌이고 있나. 값비싼 ‘친환경 농산물’을 사 먹고 있지만, 값비싼 ‘청정에너지’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충제 따위와 비교할 수도 없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만, 원자력은 그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싼 에너지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케미포비아’가 안고 있는 모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디트뉴스> 독자와 가까운 대전·충남으로 시야를 돌려보자. 

개발과 환경이 맞부딪히는 현장에서 이 같은 모순은 여기저기 등장한다. 도시의 중심부를 비워두자는 획기적인 세종시 개발계획에 대해, 대전 도안신도시에 흐르는 천혜의 갑천을 그대로 두자는 주장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불편해 하고 있다. 

개발의 중심부에 있는 그 값비싼 땅을 금개구리나 미호종개와 같은 보호종 동물의 서식처로 남겨두는 것은 인간의 편익에 반하는 행위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 중 상당수는 ‘케미포비아’의 희생자들이다. 살충제 달걀이 나와 내 가족에 끼칠 ‘후과’를 걱정하면서도, 환경훼손이 가져올 미래세대의 ‘후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불편하고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듯, 미래를 위해서도 현재의 효용과 편익을 일정부분 포기해야 한다. 이것이 ‘케미포비아’를 대물림하지 않는 길이란 사실을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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