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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여중생 자살 경찰·교육청 책임 없나?

[임연희의 미디어창] <158>

임연희 기자2017.09.13 14:27:42

성인 남성에게 성적학대를 당했던 여중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20일이 되어 간다. 학교가 문제를 인지하고 경찰에 신고한 뒤 31일 만에 여중생은 홀로 죽음을 택했다. 대전시교육청 앞에는 소녀를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어 지나는 시민들과 SNS를 통해 알음알음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비좁은 건물 사이 음식물 쓰레기 악취와 에어컨 실외기 소음 속으로 몸을 던진 소녀의 넋을 위로하는 마음이 참담하다.

학교·교육청·경찰 시스템대로 했다지만 소녀에게 진정어린 도움 못돼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두려움과 분노를 품고 갔을 소녀는 말이 없는데 경찰, 교육계, 시민사회단체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성폭행과 성매매가 있었느니 없었느니, 경찰과 교육청, 학교의 잘못이 있느니 없느니 분분하다. 교육청 정문 앞에 추모공간이 설치된 데 대해 교육청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학교와 교육청은 적절한 조치를 취했으며 재발방지 대책도 내놨다는데 교육계로 비난의 화살이 쏠리는데 대한 부담이다.

피해자 보호에 소홀하고 늑장수사를 했다는 비난을 받는 경찰도 마찬가지다. 여중생들 사이 진술이 엇갈리고 이들의 진술에만 의존해 가해자를 찾다보니 시간이 걸렸으며 수사에도 어려움이 따랐다는 해명이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되던 남성은 여중생 사망 2주 후에나 구속됐다. 소녀의 자살로 언론보도가 시작된 뒤 경찰 수사가 급진전한 걸 보면 며칠만 구속수사가 빨랐어도 소녀의 죽음은 피하지 않았을까 싶다.

학교와 교육청은 물론 경찰까지도 제도와 시스템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지만 어느 기관도 소녀에게 진정어린 도움과 의지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피해 사실을 가장 먼저 인지한 곳은 학교인데 부모에게 사실을 알린 뒤 경찰에 신고토록 했다. 경찰은 피해자를 성·폭력피해 상담기관인 해바라기센터에서 지원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줬다. 센터에서는 각종 검사를 진행했으며 국선변호사도 선임했다. 이렇게 잘 짜인 시스템인데 소녀는 왜 생을 포기했을까?

컨베이어 벨트 위로 물건이 흘러가듯 기관에서 기관으로 형식적인 연결만 했을 뿐 어느 누구도 소녀의 상처를 제대로 보듬고 치유해 주지 못한 것 같다. 학교는 경찰 수사 중이라며 피해자와 동급생을 개학 후에도 같은 교실에서 생활하게 했고 교육청은 학교장 권한이라며 방관했다. 가해자의 협박이 우려되는 상황인데도 경찰은 별다른 피해자 보호장치를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학생이 '순수한 피해자'가 아닐 수 있다며 책임을 피해자와 가족에게 돌리는 말까지 나온다. 이번 사건은 성인 남성이 여중생을 이용한 성 착취이며 명백한 폭력이다. 어린 학생이 자신의 신체 사진을 지닌 성인에게 협박당하고 가학적인 폭력과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됐다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범죄다. 죽음을 두고 순수한 피해자를 운운하는 자체부터가 또 다른 인권침해다. 경찰은 최대한 빨리 수사하고 적극적으로 소녀를 보호했어야 한다.

▲337개 단체로 구성된 대전성폭력피해청소녀사망사건공동대책위원회가 11일 유성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며 자살한 여중생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오마이뉴스 사진 제공.

학교·교육청 공교육 역할 제대로 했는지 반성부터 해야

경찰에 사건을 넘겼다고 할 일 다 했다는 학교와 교육청도 옳지 않다. 성폭행이든 성매매든, 누가 가해자든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은 수사기관의 몫이다. 경위야 어찌됐든 우리 학생이 성폭력을 호소하다 목숨을 끊은 만큼 학교와 교육청은 철저히 학생의 입장에서 보호하고 후속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학생 개인의 일탈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며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올바른 교육이 아니다.

소위 문제아는 내박치고 말 잘 듣는 아이만 포용하면 공교육은 왜 있고 모든 아이를 학교에 보낼 필요가 있나? 가정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라도 어떤 교사를 만나 어떻게 교육받는지에 따라 열 번, 스무 번 바뀌는 게 청소년기다. 이런저런 사연들로 부모가 못하는 교육을 교사가 맡아달라고 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도 반듯하게 자란 사람들 뒤에는 좋은 선생님이 있는 걸 보면 학교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학교와 교육청은 시스템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할 게 아니라 공교육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부터 반성해야 한다. 교육청이 이번 사건에 대해 생명존중교육과 성교육을 대책이라고 내놓은 걸 보면 아직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소녀를 자살로 내몬 것은 성인 남성들의 비뚤어진 성의식과 정서적·교육적 방임이지 이 학생에게 생명존중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청소년들은 SNS와 채팅사이트 같은 곳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데 우리 교육은 1년에 몇 시간 형식적 성교육에 머물러 있으니 비슷한 사건이 계속되는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라도 우리 아이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 받으며 성범죄와 폭력의 두려움 없이 밝게 자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여중생 자살에 대한 경찰과 학교, 교육청의 책임을 따져야 하며 여성폭력피해자 지원체계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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