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신경과 이상봉 교수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신경과 이상봉 교수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신경과 이상봉 교수의 진료대기실 앞.

진료가 지연되자 기다리는 환자들의 얼굴에서 지루함이 보인다. 대학병원 하면 으레 떠오르는 오랜 대기시간과 짧은 진료시간이 이곳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특히 이상봉 교수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평균 한 달 이상은 대기해야 한다. 오랜 시간 기다려 진료예약을 잡고 병원에 와서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니 힘들 수밖에.

하지만 병원 CS팀에 따르면 그로 인한 환자 민원이 단 한건도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설명을 잘해준다는 것’에 있다.

실제 진료를 받고 나오는 환자들의 표정은 그간의 기다림은 잊은 듯 만족스러운 얼굴이다. 어떤 원인으로 해당 질병이 생겼는지, 치료 뒤 회복될 가능성은 얼마인지, 혹은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잘 알려주는데, 진료를 받고 나면 “아, 진료 대기시간이 길어진 이유가 있었구나”하고 수긍하게 된다고 환자들은 말한다. 

3분 진료로 환자는 서운하고 의료진은 억울한 대학병원 시스템 안에서 ‘오래 진료 보는 의사’로 알려진 신경과 이상봉 교수를 만나봤다.

이 교수의 어릴 적 꿈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남을 가르치는 게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이다. 지금은 대학교수니까 어느 정도 꿈을 이룬 것 같다고 웃는 이 교수. 그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졌다.  

이 교수는“고등학교 때는 공학박사가 희망사항이었는데, 친한 친구가 함께 의대 진학을 권유하는 바람에 의사의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때 부친의 사업 실패로 가계가 기울어져 자습서나 문제집을 구입할 형편이 되지 않았는데, 국어시간에 낱말의 뜻을 찾아오라는 숙제가 많았어요. 자습서가 있는 친구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숙제를 했지만, 저는 누님들이 쓰던 국어사전을 뒤적거리느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좀 힘들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런 공부방식이나 습관들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의대 공부를 마치고 홍성의료원 응급실에서 첫 인턴 근무를 시작한 날, 이 교수는 난생 처름 공포감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요즘은 3월 인턴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 임상 술기법에 대해 인턴 워크숍과 교육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숙달된 상태로 업무를 시작하지만, 그 당시에는 별도의 교육과정 없이 4학년 임상실습 때 교육 받았던 기억만 가지고 첫 인턴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곳 당직의사였던 선배는 20여분 만에 인수인계를 끝내고 바람처럼 사라졌고, 의사로서 제가 만난 첫 환자는 사망한 상태로 내원한 DOA(dead on arrival) 환자였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간호사가 코치를 해줘서 간신히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수 있었어요. 그 뒤로 배 아프다는 아이부터 뇌출혈 할아버지까지 많은 환자들이 밀어 닥치는 바람에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내며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했죠.”

간호사들과 선배 전공의 도움과 격려로 그 시기를 무사히 넘긴 이 교수는 신경과 공중보건의를 마친 1997년 5월 신경과 전문의이면서 내과 의국원으로 대전성모병원에 합류했다.

입국 후 심장내과 파트에 소속돼 환자증례 토론과 회진 등을 함께하면서 내과 분야의 임상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1년 후 신경과가 내과에서 분리돼 독자적인 임상과로 새 출발하게 된다.

이 교수는 “신경과 개설 후 9개월은 가톨릭중앙의료원에서 신경과 전공의를 한명씩 3개월 간격으로 파견 보내 주어서 응급실과 입원환자 진료에 큰 도움이 되었다”며 “하지만 의약분업 파동 이후 신경과 전공의 수급에 차질이 생겨 파견이 중단됐다. 그 후 혼자서 외래와 입원환자진료, 타과 협진, 뇌파 판독 등의 많은 업무를 하다보면 밤늦게 퇴근하게 되고, 환자 상태가 나빠져 새벽에 호출 받고 나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1998년 3월 신경과 전문의 한 명으로 시작한 대전성모병원 신경과는 17여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 류선영 교수, 김태우 교수, 이택준 교수, 정유진 교수 등 성실하고 유능한 교수진이 확보돼, 뇌혈관질환, 치매와 퇴행성질환, 두통과 어지럼증, 말초신경과 근육질환 등 전문적이고 특성화된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이 교수는 “전공의 부재로 인한 일부 진료공백은 담당 교수가 365일 직접 진료해야 되는 상황과 맞물려 좀 더 신속 정확한 진단과 치료로 이어지는 장점을 갖게 됐다”며 “외부적으로는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7개 병원의 신경과 교수들과 정기적인 집담회와 국내외 학술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최신 의학지식의 습득과 환자진료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2000년경 뇌신경센터 개설, 24시간 비디오-뇌파 모니터링 장비, 수면다원검사기, 뇌혈류 초음파 검사 장비 구축 등으로 신경계 질환의 진단에 필요한 각종 신경생리검사들을 활발하게 시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바쁜 와중에 연구에도 박차를 가했다. 뇌영상 기법을 이용한 뇌혈관 질환의 진단과 치료 분야에 관심이 많던 이 교수는 2004년 호주 멜버른 의대로 연수를 떠났다. 

그곳에서 이 교수는 급성기 뇌경색 환자의 뇌CT 사진에서 보이는 저음영 소견을 뇌관류자기영상(Perfusion MRI)과 비교하여 경색된 뇌조직이 살 수 있을지 괴사되어 죽을지를 예측하는 연구에 돌입했다. 환자 자료를 모으고 MRI 영상자료를 데이터화 시키는 복잡한 과정들을 이어나갔다. 결국 예상했던 것 이상의 연구결과로 호주 연수기간에 미국 뇌졸중학회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도 얻고, 저명한 외국학술지(Stroke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이 교수는 대전성모병원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교육수련부장, 의료협력센터 소장, 뇌신경센터 소장 등 여러 보직을 역임했다. 그러면서도 환자를 보는데 소홀함이 없다. 오히려 ‘진료 오래 보는 의사’로 불린다. 정해진 시간 내에 가급적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열악한 의료환경에서 모든 환자를 오랜 시간 진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텐데, 노하우가 궁금해졌다.

“저는 주로 초진 환자나 병이 재발한 환자를 진료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인데, 환자가 호소하는 내용과 신체검진이 병을 찾아내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단 환자 파악이 되고 진단과 치료 방침이 서게 되면 진료시간이 점차 짧아지죠. 제가 환자분들 얘기를 중간에 끊지 못하고 마냥 들어주다보면 정신과나 타과 문제 또는 가족 아픈 것까지도 꺼내어 진료 시간이 더 길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요즘은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겨서 가급적 환자 문제에 국한해서 면담을 진행하는 편이긴 하지만, 환자의 가족과 주변 환경에 대한 얘기를 경청하다보면 서로 신뢰감도 생기고 환자분이 진료에 협조적으로 되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환자와의 라포(rapport)를 중시하는 이 교수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머릿속에 있다. 그 중 특별히 기억에 나는 환자가 있다며 소개했다.

“2002년쯤 말초신경을 둘러싸는 수초들이 심한 염증으로 망가져서 제대로 신경전달이 안 되는 ‘귤레인-바레 증후군(Guillain-Barre syndrome)’으로 고등학교 남학생이 응급실을 통해 중환자실로 입원했어요. 처음 그 환자를 봤을 때 양쪽 팔다리를 전혀 못쓰고 안면신경과 호흡마비까지 동반되어서 마치 뇌사 환자로 착각될 정도로 병세가 심각한 상태였는데, 혹시 생존하더라도 후유 장애가 많이 남아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워 보였죠. 그 학생의 아버님이 교사였는데, 아버님은 아들의 병간호를 위해 학교를 휴직하고 병원 앞에 임시숙소를 잡아 장기 투숙하면서 열심히 간호했어요.”

환자는 염증억제제인 면역글로블린 치료제를 두 사이클 맞고 환자는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사지 근육의 힘이 조금씩 생겨 재활의학과로 전과됐다.

“이 후 저는 해외 연수를 떠났고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외래 진료를 보던 어느 날, 간호사가 누가 인사드리러 왔다고 해서 보니까 한 건장한 청년이 걸어 들어오는 게 아니겠어요? 그 청년은 바로 환자였던 그 학생이었어요. 그 뒤를 따라 낯이 익은 학생의 아버님이 들어오셔서 덕분에 이번에 아들이 대학교에 합격했다고 말씀하시는데, 순간 저도 울컥 눈물이 날 뻔 했죠.”

장애에도 불구하고 재활치료와 학업에 매진하였던 그의 피나는 노력과 아버님의 헌신적인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았고, 직업에 대한 감사함과 보람을 느낀다는 이 교수.

그는 “가끔 보호자인 부인이 남편 먼저 진료실로 들어와 남편에게 술 그만 먹으라고 얘기해달라거나 나쁜 습관에 대해 지적해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있는데, 가족 말은 잘 안 듣다가 제가 하는 얘기는 곧잘 듣는 것을 볼 때 내심 흐뭇하다”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의사로서 환자, 보호자의 신뢰를 얻고 대내외적으로도 영향력을 갖춘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희망인터뷰를 통해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단순기술자와 전문가의 차이는 일을 대하는 열정과 자세에서 드러난다’는 글귀를 본적이 있습니다. 자기 업무에 열정적인 팀 동료들은 저의 가장 큰 재산이죠. 경험 많은 신경과 전담간호사의 적절한 업무분담과 지원으로 환자진료와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또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조언해주고 챙겨줘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실무를 담당하는 팀원들의 생각과 활동 역량에 따라서 그 부서의 업무성과가 달라지기 때문인데, 그런 면에서 우리 팀원들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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