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들이 괘를 짚어보니 시황제 폐하께옵서 황궁을 잠시 피해 있으심이 좋을 듯 싶사옵나이다.”

“황궁을 피해있어라. 그럼 어디로 간단 말이냐?”

“순행을 나서시면 되질 않겠나이까. 궁의 남동쪽으로 길을 나서시면 서광이 시황제 폐하를 감싸시기에 염려할 일이 없다 사려 되옵나이다.”

“괘 풀이가 그러하단 말이더냐?”

“예 시황제 폐하.”

시황제는 방사들의 진언에 따라 유람 길에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승상 이사를 불러 서둘러 순행 떠날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때가 가을로 접어드는 시점이라 유람에는 적절치 않았지만 시황제의 엄명인지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해서 승상은 우선 날씨가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방향을 잡았다.

시황제는 한시라도 궁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매일같이 승상을 불러 채비가 끝났는지를 확인하고 서둘 것을 재촉했다. 동시에 이번 순행에는 평소 사랑하던 공자 호해를 동행시키라고 일렀다.

그렇게 해서 시황제 일행이 궁을 나선 것은 그해 10월이었다. 매번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던 시절에 순행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단풍이 들 즈음 유람에 나선 것이었다.

가을 단풍은 봄의 새싹이 주는 것 못지않게 아름다움을 만끽토록 했다.

울긋불긋 산이 불타고 있었다. 들에는 누른 곡식이 황금물결을 이루어 넉넉함을 자아냈다.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런 세상을 뒤로하고 죽는 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었다. 게다가 천하를 통일하고 이제 몇 년이 지났다고 벌써 죽음을 생각해야 한단 말인가. 억울함이 북받쳐 올랐다.

시황제는 마차 창문을 열고 산야를 굽어보며 동남쪽으로 내달려 무관과 남군을 지나 11월에 운몽(雲夢)에 도착했다.

황궁의 액운을 피해 내달리는 길이라 잠시도 머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운몽에 도착하자 마음이 달라졌다. 그곳은 바람에 구름이 이는 곳이라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른 새벽 자리에서 일어나면 물안개가 고을을 넉넉하게 덮고 있어 신선이 되었다는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래서 시황제는 그곳에서 여러 날을 보냈다. 하지만 마음은 좀 체 쫓기고 있었다. 도무지 그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액운이 자신에게로 달려올 것 같았다. 시황제는 다시 행차를 재촉하여 이번에는 배를 타고 장강을 따라 내려갔다.

굽이굽이 수 천리를 내달리는 장강인지라 그곳에 타고 있노라니 용을 타고 대양을 내달리는 기분이었다.

배에서 올려다보는 절벽이며 그곳에 붙어선 나무들과 단풍이 유달랐다. 탄성을 연신 자아내며 그렇게 유람을 즐겼다. 배위에서는 매일같이 잔치가 열렸다. 술과 음식과 계집들의 야스런 몸놀림이 시황제를 즐겁게 했다. 하지만 그 즐거움 뒤에는 끝나지 않은 액운 꼬리가 밟혔다. 그래서 시황제는 선상에서 단 한 순간도 혼자 있지 않았다.

계집들을 옆에 끼고 있거나 혹은 신하들과 함께했다. 시황제 일행은 적가(籍柯)를 돌아보고 해저(海渚)를 건너 단양(丹陽)을 지나 전당(錢塘)을 거처 절강(浙江)에 도달했다.

그곳으로 오는 동안 시황제의 기력이 많이 쇠약해졌다. 매일같이 계집을 옆에 끼고 술을 즐기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을 탐하게 되었고 결국 아랫도리의 힘이 빠져가고 있었다. 게다가 뇌리 한구석에는 늘 쫓기고 있다는 상념이 떠나지 않았다. 그 액운은 바로 죽음이었다. 자신을 쫒아오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놓아버리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짐이었다.

머리가 무거울 때마다 어린 계집들과 뒤엉켜 희열을 즐겼고 그러다보니 몸이 메말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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