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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레르트 언덕의 시타델라 요새

[정승열의 세계속으로] <43>

정승열2017.10.31 09:51:21

▲헝가리 지도.

부다페스트 시내를 가로지는 도나우 강 남쪽 고지대는 부다지역에는 부다 왕궁이 있고, 왕궁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어부의 요새와 왕궁의 성당인 마차시성당이 있다. 이곳에서 부다왕궁을 거쳐 약1.5㎞ 떨어진 가장 남쪽 끝에 시타델라 요새가 있다. 시타델라 요새가 있는 지역이 해발 235m의 나지막한 겔레르트 언덕(Gellert Hegy)인데, 이곳에 올라가면 서울의 남산처럼 부다페스트 시내와 아름다운 도나우 강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겔레르트 동상.

겔레르트 언덕이란 1001년 성 이슈트반 1세(Saint Stephen I; 970~1083)가 신성 로마제국의 오토 2세의 후원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우자 로마교황청에서는 헝가리인들의 개종을 위하여 베네치아 출신 성 조르지오(St. Giorgio) 수도원 원장을 역임한 겔레르트 수도사를 파견했는데, 겔레르트 수도사는 가톨릭 전도를 하다가 1045년 이교도들의 폭동에 붙잡혀서 죽었다. 

▲요새입구.

이교도들은 겔레르트를 와인 통에 집어넣고 도나우 강으로 굴려서 강물에 빠져 죽였는데, 훗날 그가 순교한 언덕을 ‘겔레르트 언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부의 요새와 마차시성당을 거쳐 부다 왕궁을 지나는 산길을 걸어가면 잘 보이지 않지만, 도나우 강 위에 놓인 엘리자베스 다리(Erzsebet hid)를 건너면 겔레르트 언덕의 중간쯤에 겔레르트 동상이 보인다. 

▲성벽과 대포.

겔레르트의 동상은 1947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헝가리 건축가 쉬트로블(Zsigmond Kisfaludy Strobl: 1884~1975)이 겔레르트가 순교한 장소에 높이 4m의 동상을 세운 것이다. 도나우강위에는 수많은 다리가 놓여있지만, 유명한 세치니 다리 바로 하류 쪽에 세워진 에리자베스 다리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가 헝가리를 통치할 때 황제 프란츠 요제프(Franz Joseph : 1830~1916)가 아내 엘리자베스 황후의 이름을 붙인 것으로서 1903년에 개통되었다.(겔레르트 언덕에 관하여는 어부의 요새와 마차시 성당 참조).

▲전시물.

부다페스트의 부다 지역에서 가장 남쪽 끄트머리인 겔레르트 언덕에는 시타텔라 요새(Citadella)와 전승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다. 그러나 부다페스트 시내와 아름다운 푸른 도나우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세운 시타델라 요새는 헝가리 인들이 쌓은 것이 아니라, 1848년 헝가리를 점령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가 반항하는 헝가리인들의 폭동을 사전에 진압하기 위하여 부다페스트 전 지역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쌓은 감시대였다. 1850년  대리석을 다듬어서 둘레 200m, 높이 4~6m의 긴 타원형의 시타델라 요새는 당시의 중무기인 대포로 공격해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한 1~3m의 두터운 성벽으로 쌓았다. 가파른 경사지에 큼지막하게 쌓은 요새는 더욱 웅장하게 보인다. 

▲요새뒷면.

1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식민 통치가 끝났지만 요새는 전략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아 그대로 존치되었는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또다시 헝가리를 점령한 나치 독일군이 이곳에 방공포대를 설치하고, 요새의 한쪽에는 포로수용소를 설치하여 운영했다. 

▲요새에서 본 도나우강(왼편은 왕궁, 오른편은 국회의사당).

그러나 1944년 소련군이 침공하자 나치 독일군은 이곳에서 마지막 저항을 하다가 마침내 항복했는데, 소련은 승리를 기념으로 1947년 시타델라 요새 앞에 34m 높이의 ‘자유의 여신상’을 세웠다. 두 팔을 높이 지켜든 소녀가 승리를 뜻하는 종려나무를 펼쳐 든 모습의 동상을 세운 것은 '소련군이 마침내 나치 독일에서 승리했다'는 징표이자 헝가리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의 표현이기도 했다. 더욱이 자유의 여신상 전면 좌우에는 마치 헤라클레스가 악마를 쇠몽둥이로 후려치는 듯이 제압하는 두 개의 동상을 각각 설치해놓았다.

▲자유의 여신상.

이렇게 겔레르트 언덕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에서 세운 시타델라 요새와 구소련이 나치 독일로부터의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기념탑 등 두 개의 침략군의 상징물이 있는데, 자유화의 물결로 1989년 공산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도 헝가리인들이 두 상징물을 철거하지 않는 것은 치욕의 역사를 상징하는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들을 가두고 고문했던 서대문형무소를 철거하지 않고, 식민통치의 잔학상을 보여주는 증거로 보존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서울 남산의 산책로처럼 약간 가파른 산길에 세워진 요새의 입구에는 당시의 모습을 그린 사진들과 전쟁에 사용했던 대포들을 전시하고 있고, 요새를 둘레 200m에 이르는 긴 타원형 대리석 성벽을 한 바퀴 돌아보면 투박하지만 견고한 성벽 곳곳에 부수한 총탄과 대포 자국이 격전의 흔적을 잘 말해주고 있다. 2차 대전 후 헝가리의 독립 후 시타델라 요새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호텔로 사용하고 있어서 내부를 관람할 수 없고, 또 입장료도 없다. 

자유의 여신상 기단 뒷벽에는 나치 독일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소련군 전몰장병들의 이름을 새겨두었는데, 지금은 전사한 구소련군 후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상황이 바꾸어서 시타델라 요새는 헝가리인들 보다 외국여행객들이 부다페스트를 조망하기에 가장 훌륭한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어서 몰려드는 관광지가 되었다. 시타델라 요새 입구 주변은 관광객들을 위한 카페, 레스토랑이 성황이다. 

시타델라 요새 앞 광장에서는 헌법 제정일인 매년 8월 20일인 불꽃놀이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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