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시장궐위, ‘권원(權原)’ 없는 간섭이 가장 위험

지난 17일 오후 대전시의회 기자실을 방문해

맏형의 책임정치인가, 과도한 월권행위인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국회의원(5선, 대전 서구갑)의 광폭행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본인은 ‘책임정치’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대전시당 등 공적 구조를 통하지 않은 개별행보에 대해 ‘월권’이란 비판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박 의원은 권선택 전 대전시장이 낙마한 지난 14일 이후 나흘 만에 민주당 소속 구청장, 원외 지역위원장, 시민단체 대표, 권 전 시장의 측근, 이재관 대전시장 권한대행을 비롯해 지역 시·구의원까지 두루 만났다. 

소식을 접한 정치권과 언론은 가장 먼저 그 의미를 해석하는데 주력했다. 권 시장 낙마 이후 지역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정치행위가 지방선거와 연결되고 있는 상황에서 ‘출마행보가 아니냐’는 억측이 쏟아져 나왔다.   

결론적으로, 박 의원은 “출마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했다. 대신에 그는 ‘책임정치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미묘한 시점에 모양새가 그렇지 않냐’는 질문에 역정까지 내며 강조한 ‘책임정치’란 바로 이런 내용이었다. 

“그걸(시·구의원 회동 등) 안했다면 (언론이) 뭐라고 쓰겠나. 자기 당 시장이 낙마했는데 침묵하고 있다고 하지 않겠나. 책임 있는 정치라는 게 뭔가. 나서서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 책임 있는 정치인 아니겠나.” 

그는 ‘시장 궐위’라는 대전 시정 초유의 사태를 수습할 적임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했다. 그 믿음은 확신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박 의원에게 “책임 있는 분들이 각자 움직이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누가 움직이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건(각자 움직인다는 것은) 추측일 뿐”이라며 “나는 출마를 안 하는데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고 했다. 

차기 대전시장 출마가 거론되는 이상민(유성을), 박범계(서구을) 의원의 경우 현 사태를 수습하기에 활동 폭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고, 출마의사가 없는 자신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고했다. ‘맏형의 책임감’ 이랄까, 그의 발언엔 결연함까지 묻어났다.    

그러나 ‘당’이라고 하는 공적구조에 대한 배려와 책임감이 전혀 읽히지 않는 게 문제다. 일각에서는 “맏형이 가장 먼저 해야 할일은 사과와 반성이지, 동생들에 대한 훈수가 아니다”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시민의 눈으로 봤을 때, 권선택 전 시장의 시장직 상실에 대해 가장 먼저 사과하고 반성해야 할 정치세력은 다름 아닌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이다.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권 전 시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물러난 마당에, 정작 후보를 낸 정당은 아무런 사과표명이 없었던 까닭이다. 하물며 그 정당의 맏형이 ‘사과’보다 ‘훈수’에 주력하고 있다면, 시민들은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릴까? 

박병석 의원이 시·구의원들을 불러 모아 “우리가 먼저 반성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자신이 나서 시민들 앞에 석고대죄라도 했다면 이 같은 구설에 오르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 의원에게서는 이와 같은 ‘반성적 책임감’은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다선 국회의원의 위세를 앞세우지 말고, ‘당’이라고 하는 공적기구 안에서 사태수습에 나섰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엄연히 당내 의사결정 구조가 있고 위계가 있는 상황에서, 이를 뛰어넘는 자기만의 ‘구원투수론’으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국회의원 선수(당선 횟수)가 늘어나면, 자기 지역구를 넘어 대표성 또한 커지는 것이냐”는 세간의 질문에 박 의원이 어떻게 대답할지 자못 궁금하다. 

박 의원은 “시장 직무대행을 만나 흔들리지 말고 조직을 잘 안정시켜달라고 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이 또한 ‘책임정치’의 일환이란 것이다. 글쎄다. 책임정치를 하겠다고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모두 이재관 직무대행에게 달려가 한마디씩 ‘훈수’를 둔다면 대전시정은 과연 어디로 향하게 될까. 선출권력의 정당성이 상실돼 시장이 공석인 마당에, 정치권이 제 아무리 좋은 의도로 행정을 북돋우려 한들, 그게 가능키나 한 일일까 의문이다.

박 의원은 대전시장 공백사태에 ‘권원(權原)’ 없는 간섭이 가장 위험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다선(多選)이 곧 권원이 될 수 없음도 직시해야 한다. 시민들은 자기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를 ‘책임정치’라고 이해하지 않는다. 반성할 사람이 반성하고, 사과해야 할 사람이 사과하는 것이 진짜 ‘책임정치’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