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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국회의사당

정승열의 세계속으로] <46>

정승열2017.11.27 16:06:48

▲1. 부다왕궁에서 본 국회의사당.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시내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도나우 강의 북쪽 페스트(Pest) 지역은 고지대인 남쪽의 부다(Buda)지역과 달리 근대의 건축물이 많다. 특히 뾰쪽한 첨탑들과 돔(Dome) 형식의 웅장한 건물인 국회의사당(Orszaghaz)과 성 이슈트반 대성당(St. Stephen Basilica)의 두 건물은 1885년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지은 건물로서 높이는 각각 96m이다. 이것은 헝가리 건국 896년의 숫자와 맞춘 것이며, 부다페스트에서는 두 건물보다 높게 지을 수 없도록 규제받고 있어서 두 건물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2.자유광장.


도심에 있는 성 이슈트반 대성당과 달리 도나우강변에 있는 국회의사당은 매트로 2호선 라요지 코슈트 역(Kossuth Lajos Tér)에서 내려야 한다. 1885년부터 1902년까지 매일 1,000여 명의 일꾼을 투입하여 건축한 국회의사당은 길이 268m, 폭 118m, 총 691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모양은 네오고딕 양식으로서 중앙에 커다란 이슬람식의 돔을 만들고, 주변에 365개의 뾰족한 첨탑을 세웠다. 365개의 첨탑은 1년 365일을 상징하며, 이것은 365일 내내 오로지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일하라는 헝가리인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3.코스크 동상.


그런데, 헝가리 국회의사당은 영국 국회의사당(Big Ben)에 하차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회의사당이라고 하는데, 남한(98,000㎢)보다 작고(93,030㎢), 인구도 고작 1,000만 명 정도의 소국이고  그나마 1인당 국민소득도 12,570달러(2016년 추정)에 불과한 나라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회의사당을 지었다는 것은 지나친 과소비가 아닌가 싶다. 

▲라코치 기마상.


사실 국회의사당의 건물은 워낙 거대해서 그 전경은 파리의 에펠탑을 센 강 건너편에서야 전체를 바라볼 수 있듯이 도나우 강 건너편 부다 지역에서 바라보아야 할 정도로 광대한데, 헝가리인들은 걸핏하면 아시아 몇 번째 혹은 세계에서 몇 번째를 자랑하는 우리의 민족성과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이스튜반 동상.


헝가리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국회의사당을 많이 찾는 것은 헝가리 출신 미술가 문카치 미하이의 천정화, 순금 50kg으로 장식되어 건물 전체가 보물로 평가되는 아름다운 예술성과 헝가리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의 조각, 동상 등의 조형물 때문이다. 국회의사당 관람은 매일 10시, 12시, 13시 13시 45분, 15시 등 5회 관람이 가능하며, 일요일․월요일․부활절․성탄절․1월1일․ 5월 1일은 입장할 수 없다. 관람료는 어른 5200ft(한화 약21,500원), 학생 2600ft(한화 약 10750원)이고, 외국인은 반드시 여권을 지참해야 한다. 국회의사당 맞은편에는 민속박물관(Neprajzk Museum)이 있어서 국회의사당을 관람한 뒤 헝가리 민속의상과 전통 생활양식을 살펴볼 수도 있다. 

▲라요지 코스츠 상.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길가에는 자유 광장(Freedom Square)과 라요시 코슈트 광장(Lajos Kossuth Square)이 있다. 자유 광장은 구소련이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시켜준 것을 기념하여 헝가리인들이 세운 기념탑인데, 구소련은 나치 독일을 몰아낸 뒤 헝가리의 해방자를 자처했지만 1991년까지 헝가리를 장악해서 헝가리인들로서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와 나치 독일에 이은 새 지배자를 만난 셈이다. 구소련이 헝가리를 해방시켜준 것을 기념하는 상징물은 부다 지역의 시타델라요새의 ‘전승기념탑’과 조형물이 있다(2017.10.31. 시타델라 요새 참조).  

▲국회의사당 전경.


자유 광장을 지나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라요시 코슈트 광장은 1848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에 저항하며 독립투쟁을 주도했던 라요시 코슈트(1802~1894)의 이름을 붙인 광장으로서 광장의 오른쪽에 코슈트의 동상이 있다. 왼쪽에는 1703년 합스부르크가에 저항하며 독립전쟁을 이끈 라코치 페렌츠 2세(Rákóczi Ferenc II)의 동상이 있는데, 라코치가(家) 출신으로서 합스부르크가의 인질로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자란 페렌츠 2세는 칼뱅파 신교도들의 지원 아래 독립운동을 주도하여 합스부르크가 세력을 몰아내고 1704년 민족회의로부터 트란실바니아 공(公)이 되었다. 그러나 1711년 그가 폴란드에 간 사이에 장군 카로이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와 공모하여 헝가리는 또다시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게 되자, 코슈트는 귀국하지 못하고 폴란드에 망명했다가 프랑스 ·터키로 전전하다가 터키에서 죽었다. 

▲국회의사당 첨탑.


라요지 코슈트 광장은 1956년 대학생과 시민들이 소련군의 철수와 민주화를 요구하며 연좌데모를 벌이다가 소련군의 총탄에 쓰러져 민주화의 성지가 되었는데, 이곳의 국기게양대에서는 매일 경비병교대식이 벌어진다. 또, 매년 정부에서 주관하는 각종 행사가 이곳에서 거행된다(헝가리 민주화에 대하여는 2017. 09.29. 부다페스트 참조). 

▲성 이슈트반 1세 왕관.


국회의사당을 둘러싼 네 곳의 광장에는 896년 건국 후 1천년 동안 오스만 터키를 비롯하여 몽고, 오스트리아, 독일, 소련 등 수많은 강대국의 지배를 받다가 2차 대전 이후에야 비로소 독립을 쟁취하기 까지  헝가리를 대표하는 역대 임금과 지도자 88명의 동상이 있다. 헝가리인들은 국가의 독립과 생존에 더욱 감사하며 영웅광장에 집단으로 동상을 건립한 이외에 국회의사당 주위에도 설치한 것이다. 

▲유람선에서 본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 내부로 들어서면 1층 로비에서부터 3층 돔까지 이어진 계단에 붉은 카펫이 화려함을 더해주는데, 3,456m에 이르는 계단 전체를 붉은 카펫으로 덮은 것도 거대한 건물만큼 지나친 면이 엿보인다. 중앙 로비에는 16개의 원주(圓柱) 위에 16명의 헝가리 지도자 동상이 있고, 총 691개의 방에는 상․하 양원의 회의실을 비롯하여 약50kg의 황금과 수천 개의 보석, 그림, 스테인드글라스, 태피스트리 등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것은 헝가리의 첫 통일한 임금이자 가톨릭을 받아들여서 로마교황으로부터 성자의 반열에 오른 성 이슈트반 1세의 왕관이다. 

1000년 로마교황 실베스테르 2세가 이슈트반 1세에게 하사한 왕관은 세계의 종말로 유럽 전체가 두려워했던 새 천년(Millenium) 첫 날에 이슈트반 1세 대관식에서 머리에 썼던 왕관으로서 너비 203.9mm, 길이 215.9mm, 무게 2,056kg이나 된다. 왕관은 위아래부분이 서로 다른데, 윗부분은 성 이슈트반 1세의 두개골을 본뜬 것이고, 아랫부분은 비잔틴 황제 미하일 두카스가 1074년경 헝가리 왕 게자 1세에게 보낸 것으로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뀐 것은 1166년경이다. 

이후 헝가리의 군주는 이 왕관을 받지 않으면 공식적인 군주로 인정되지 않았으며, 1256년부터 ‘성스러운 왕관(Holy Crown of Hungary)’으로 불렸다. 하지만, 왕관은 헝가리의 운명과 함께 수세기 동안 유럽 여러 나라들이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을 벌여서 뺏고 빼앗기는 과정에서 땅속에 묻어두어서 한때는 그 행방을 알 수 없기도 했고, 또 다른 나라에 담보로 제공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소련에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서유럽으로 반출되었다가 다시 미국에 넘겨졌는데, 미국은 1978년 1월 6일 왕관을 헝가리에 이양했다. 당시 헝가리에서는 큰 축제가 벌어졌으며, 2000년부터 헝가리 국회의사당에 소장하고 있다.

아무튼 관광객들은 의사당 건물의 아름다움 특히 야간 조명에 비치는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있지만, 파리 센 강의 아름다운 조명에 의한 야경을 감상했던 눈으로는 금빛으로 반사되는 모습이 단조롭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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