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새해 예산 전쟁이 끝났다. 대전시가 확보한 내년 예산 규모는 작년보다 6.5% 늘었다고 한다. 현안 문제인 충남도청 부지 인수 사업비 일부도 포함됐다. 대전시장 자리가 공백 상태임을 감안하면 선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전시 관계자는 시장 부재 상황에서도 지역 국회의원들과 협조해 지역 숙원사업비를 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호남선 KTX에 대해 보인 정부의 지역 차별적 태도는 충청 주민들을 또 한번 무력감에 빠뜨렸다. 호남선 KTX 노선과 관련, 충청권은 서대전역 직선화를 원하고 있고, 호남권은 무안공항 경유를 희망하고 있다. 그동안 서대전~논산 직선화 문제는 정부의 장기 철도계획에서조차 빠질 만큼 부정적이었고, 무안공항 경유 역시 사업비가 훨씬 더 들고 노선이 ‘ㄷ 자’로 휘기 때문에 어렵다는 게 정부 입장이었다.
 
호남선 KTX, 호남은 묻지도 따지도 않고 '1조', 대전은 타당성 알아보자 '심사비 1억'
 
그런데 무안공항 문제는 이번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경유를 요구하고 정부가 이를 즉각 수용하여 관련 예산을 반영함으로써 풀리게 되었다.  두 정당은 지난 11월 말 “양당은 무안공항 경유 안에 합의하면서 정부가 현재 검토 중인 계획안을 즉각 변경할 것을 촉구하며, 동시에 관련 예산안이 2018년에 편성될 수 있도록 한다”는 양당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그러자 다음날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용역 결과와 지자체 의견 등을 광범위하게 수렴한 결과 무안공항 경유 노선이 적합하다는 입장을 최근에 정했다”고 호응했다.

광주 송정을 거쳐 목포까지 이어지는 호남선 KTX가 무안공항으로 우회할 경우 사업비가 1조 1000억 원이 더 들어 총예산 2조4천억 원이 소요되며 운행시간도 10분 이상 길어진다. 이 때문에 예산권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무안 경유 불가 입장을 고수해왔으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공동으로 노선 변경을 요구하자, 곧바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내년도의 관련 예산도 134억을 증액, 154억 원으로 확정했다. 호남 언론들은 크게 환영하면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의 존재감이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번에 서대전역 관련 예산도 포함은 되었다. 정부는 ‘서대전역 직선화 사업 사전타당성 용역비’로 1억 원을 반영했다. 대전시는 직선화 사업의 시발점으로 단정짓는 듯한 해석을 내놓고 있으나 말그대로 ‘사전 용역’수준으로 봐야 할 것이다. 사전용역만 해놓고 안 하는 사업들이 수두룩하다. 정부 타당성 조사조차 하지 않고 추진되는 무안공항 경유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호남선 KTX 노선 문제이면서도, 호남에 대해서는 1조 이상 늘어나는 사업을 하룻 만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번복하면서 충청에 대해서는 사업비가 호남 증액분의 반도 안 되는 사업(4500억 원)인 데도 타당성을 따져보자며 심사비조로 1억 원을 세워주었다.
 
심사비 1억 원을 세우는 데도 대전 지역 정치인들이 고생을 했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부탁하고 호소하지 않으면 기재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지역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의 노고는 알아주어야 한다. 그러나 기재부가 이런 식으로 주는 돈을 받는 게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지역을 차별하면서 던지는 1억원을, 그래도 받아 옳은가? 대전시민의 한 명으로 드는 솔직한 심정이다.

서대전역은 호남선 역 가운데 이용자가 가장 많은 역이었다. 연간 500만 명이 넘었다. KTX 노선이 서대전역을 비켜가면서 지금은 100만 명 이상 급감한 상태다. 경제성을 따지지 않는 무안공항은 연간 이용자가 32만 정도다. 서대전역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입장은 그 반대다. 무안공항 경유의 경제성은 묻지 않겠다는 것이고, 서대전 역은 승객이 많아 경제성이 있어 보이는 데도 오히려 한번 확인해보자는 것이 이 정부의 태도다. 그러면서 1억 원을 대전시민들에게 던져주었다. 
 
다른 지역 같았으면 ‘이런 1억’ 안받았을 것
 
다른 지역 같으면 이런 1억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10억 원을 준다고 해도 안 받았을 것이다. 너무나 명백한, 이런 지역 차별적 태도에는 그에 상응하는 입장을 취해야 맞다. 정부가 합리적 근거 없이 지역 차별적 대우를 하는 데 대해서까지 수용할 필요는 없다. 충청권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문제에 능한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같은 호남선 KTX 문제인 데도 호남에는 묻지도 않고 1조 원을 올려주고 충청에는 1억 원만 편성했다면 “기재부장관 밥값에나 쓰라”며 거부하는 정치인이 있어야 된다. 이런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면 “같은 호남선 문제인데 무안은 되고 서대전은 안 되는 이유가 뭐냐?”며 기재부장관에게 서대전 직선화 확답을 요구해야 한다.
 
‘무안공항 경유 1조 인상 확정’뉴스가 나오는 상황에서 ‘서대전역 직선화 ‘심사 비용 1억’은 대전시민들에게 희망보다 상처를 주는 돈이다. 돈은 단돈 1만원도 소중하지만, 이런 1억은 지역을 능욕하는 돈이다. 대전시민의 내년 숙제는 정부의 이런 태도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을 지역의 대표로 뽑아야 한다는 점이다. 작년 부산시장은 영남권 신공항을 유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 빼앗기지 않으려 시장직을 걸었다. 바람직하고 이성적인 태도는 아니나 그 부산시장의 심정은 이해한다.
 
우리 지역에는 그런 부산시장의 반쪽이라도 닮은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 지역에는 지역 대표가 되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혹은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지역의 이해(利害)에는 오불관언의 태도를 보이면서 제 몸만 사리다 임기를 마치는 정치인들뿐이다.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대전시장과 충남지사 후보에 대한 하마평도 무성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관한 한, 부산시장 반쪽이라도 될 만한 정치인이 내 눈에는 아직 안 보인다. 서대전역 문제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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