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덕(대전언론문화연구원 이사장·변호사)


우리는 목소리 큰놈이 이긴다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고,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다툼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교통사고 발생 현장에서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다투는 사람들은 거리에서 흔히 보는 모습 중의 하나다. 목소리 높이는 데만 열중하여 사고의 내용에 대한 정확한 실체 접근은 뒷전이고 상대방의 태도, 나이등 사고 외적인 문제가 전면에 나서며 사소한 트집, 험악한 인식공격이 난무하게 된다. 정확한 사실 인식 하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큰 목소리만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원시적이고 비문화적인 태도는 정말 보기 흉하다.

목소리 크기를 말할 때 중국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 가운데서도 홍콩어(광동어)는 다른 중국인들의 4성에 비해 거의 7성이나 9성에 가까워 우리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럽고 일본이나 영국인들이 보통 말할 때의 소음 평준치가 45db인데 반해 홍콩인들은 80db로 거의 2배에 가깝다고 한다. 자세한 통계내용을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 한국인들도 목소리 크기에서는 별로 뒤질 것 같지 않다. 특히 공공장소에서의 휴대전화기 사용에 있어서는 일본인들이 비밀대화를 나눌 때처럼 속삭이는 데 비하여 우리 한국인들은 상당히 목청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

자기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 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가 어렵게 된다. 귀가 어두운 사람의 목소리가 큰 것과 같은 이치다. 사실은 내 목소리를 낮추어야 상대방이 목소리를 높이는데도 상대방 전화목소리가 작으면 내 목소리를 크게 하게 된다.

요즘은 덜하지만 내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 근처에 있는 시청이나 노동청 앞에는 늘 스피커 소음이 심하다. 자신들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스피커로 온종일 곡을 하거나 노래를 틀어 놓는 등의 시위를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러겠냐고 이해를 해 보지만 그 소음으로 인해 인근 주민들이나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말하기 힘들 정도다. 시위에 있어서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까? 혹시라도 그런 소음으로 인한 주위 사람들의 불만을 이용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일종의 떼를 쓰는 모습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사회가 성숙하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근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설득하고 타협하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지방자치가 되면서 지역이기주의가 팽배해지는 것은 정말 유감이다. 쓰레기 처리장이나 납골당 문제로 인해 후보지 주민들이 벌이는 반대 태도는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주민들의 불편이나 민원을 외면하고 있다가 문제가 불거져야 움직이는 무사안일의 행정에도 문제가 있지만, 당국의 합리적 의사결정과 집행까지 방해하는 님비현상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더구나 해당 자치구 행정책임자나 구의회 의원들까지 반대운동에 목소리를 함께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보기에도 민망하다. 목소리 큰 사람들의 의사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목소리가 작은 대다수 주민들도 헤아리는 균형있는 자세가 현명하지 않을까?

세상을 살아가는데 목소리 큰 사람이 과연 유리하기는 한 것인가? 불리한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목소리가 커지면 감정에 치우치기 쉬워지고 그러면 상대방에 대한 설득력만 약화될 뿐이다. 또한 자신의 주장이나 논리가 빈약하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목소리의 크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다듬어 나가는 각자의 낮은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목소리가 낮아지는 이유를 되새겨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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