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살아 숨쉬는 조직

 



새해는 '여유'(餘裕)와 '우리'가 만들어 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넉넉함에서 오는 '여유'로 공동체를 상징하는 '우리'가 함께 하는 사회를 양(羊)의 해 원단(元旦)에 화두(話頭)로 던져 본다. 양은 무리 지어 살면서 좀처럼 싸움은 하지 않는다. 무리 지어 사는 모습에서 '우리'를 배우고 싸움을 하지 않는 습성에서 '여유'를 가져왔으면 한다. 정초(正初)에서 세모(歲暮)까지 '여유'와 '우리'가 줄곧 길거리를 맴돌면서 건강한 사회를 견인해주길 기원한다.

지난 시간은 참으로 숨가쁘게 달려왔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다. 앞으로만 달려야 한다는 강박감은 '여유'에 틈을 주지 않았고 외눈박이 가치관은 이웃을 생각할 겨를을 앗아가 버렸다. 그러다 보니 갈등과 가치관 부재, 이기주의, 그리고 도덕의 상실이라는 정신적인 공황이 시대의 부산물로 남게 되었다. 지난해 있었던 지도자 선출 과정은 그러한 부정적인 요소가 한꺼번에 분출되었다. 세대, 지역, 보혁(保革)의 갈등과 철새 정치인으로 표출화된 부패한 가치관, 이기적인 발상, 마지막으로 승리 지상주의에 도취한 나머지 너무나 쉽게 포기한 도덕은 우리 모두를 패자(敗者)로 만들어 버렸다. 격전을 치르고 난 자리에는 '나'와 '이기'(利己)만 남아있었다.

새해는 찬물에 갓 세수하고 나온 청년의 얼굴처럼 우리 사회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정치가 그렇고 경제 또한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근육질의 모습이 되었으면 한다. 특히 우리 사회를 이끄는 정신이 병들지 않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양(羊)처럼 순수한 마음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그런 사회를 그려보고 싶다. 그러자면 역시 '여유'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인 삶에 필요한 '우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여유'와 '우리'를 역동적인 힘으로 승화시켜 역사를 만들어 가는 두 축(軸)이 계미년(癸未年)에 마련되기를 소망해본다.

'나'를 앞세운 사회는 형이하학적이다. 조급함이 지배하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우리'가 없고 '여유'가 부족한 사회는 아귀다툼이 일반화 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삶의 아름다움이 뿌리내릴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 그래샴이 말했던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이 법칙이 사회의 도덕율이 되면 그곳은 죽은 사회다. 조급함과 나만을 생각하는 집단은 그래샴이 만드는 사회가 되어버린다. 우리 사회가 적어도 나쁜 경험의 학습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세대를 넘어 후대에 물려 줄 국가라면 우리는 청징하고 섬세한 삶이 녹아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부정부패를 대물림하는 건 이 시대를 사는 구성원의 직무유기이다.

″살맛 나는 세상은 우리 시대의 의무″

사학자 E.H. 카아는 역사를「과거와 현재의 만남」으로 표현했다. 그렇다. 역사는 과거의 훌륭한 경험과 현재의 역동성이 교차됨으로써 새 것을 탄생시킨다. 우리 역사는 어떠했는가. 잘못된 경험과 그것을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현재를 통해 선순환(善循環)의 역사를 창출해 내지 못한 게 지나간 모습이 아니었던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변화의 징조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치가, 경제가, 사회가 그러한 모습을 표현하려고 꿈틀거리고 있다. 지난 해 대통령 선거와 월드 컵 축구대회, 미군 장갑차 사망사건을 통해 결집된 국민의 힘이 메시지를 던지려는 몸짓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조금씩 여유를 찾고 이웃을 보기 시작했다. 희망의 소중한 싹이 돋아나고 있다.

'여유'는 넉넉함에서 나온다. '우리'는 또한 '여유'에서 나온다. '여유'와 '우리'를 생각하는 사회는 곧 정이 넘치는 사회다. 새해에 애절한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정이 충만한 사회다. 우선 남의 허물은 무조건 한번만 덮어 보자. 그리고 내가 아닌 조직의 발전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보자. 그런 다음 그 결과를 기다려보자. 과연 손해가 반대급부로 돌아올까. 단언컨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보거상의(輔車相依)라고 하던가. 여유와 공동체는 바퀴와 지지대처럼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우리 사회가 '여유'의 바퀴로 이웃을 만들어 정을 가득 실은 수레가 되었으면 하는 게 계미년 아침에 빌어보는 간절함이다. 그래서 살맛 나는 세상, 교육 이민을 오는 나라,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를 우리 세대가 한번 만들어 보자.

새해 아침.
지난 달력을 휴지통에 버리듯 낡은 사고는 과감하게 폐기하자. 그리고 새 달력과 함께 튕겨나듯이 새로운 출발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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