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 진실한 답변

   
 

“당신의 부모가 큰 병에 걸려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와서 공무원인 당신에게 그만큼의 돈을 줄 테니 도와달라고 청탁을 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나?” 행정고시의 최종 관문인 면접시험장에서 이런 질문이 나온 적이 있다.

답변하기가 참 곤란하다. 돈을 받아 부모를 살리겠다고 하면 청렴하지 못한 공무원이고, 뿌리치겠다고 하면 입바른 소리이긴 하나 인간미가 부족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이런 답변은 어떨까. “내가 받는 다고 하면 옳지 못한 것이고 받지 않겠다고 해도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공무원으로서 돈을 받지 않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겠다.”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될 것이다.

가끔 대학에 취업특강을 나갔다. 그 때마다 써먹는 레퍼토리 중 일부다. 취업을 앞 둔 대학생들의 면접요령을 조언하기 위해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요즘 대학생들은 말을 참 잘 한다. 그럴듯한 대답들을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듣기는 쉽지 않다.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아서다. 대답을 다 듣고 나서는 이런 말을 해준다. 지식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보다 진실하게 답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면접관은 답변에서 가치관과 성실성 등을 보고 싶어 한다고.

유한식 세종시장은 연기군수를 지냈다. 이해찬 세종시 국회의원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요즘 세종시를 대표하는 두 선출직 공직자가 각각 연두순방과 의정보고회를 열고 있다. 각 지역을 순회하는 대장정이다. 본인들은 아니라지만 6·4지방선거의 전초전 성격의 행사들이다.

연두순방이건 의정보고회건 지역마다 민원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시장이나 국회의원은 이런 주민들의 요구에 납득할만한 답변을 해야 한다. 한솔동에서는 열병합발전소 건설에 따른 특별지원기금의 사용처가 논란이다. 그 뼈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동네에 열병합발전소가 있다. 시험 가동한다더니 한 밤중에 굉음이 들리고 악취가 진동했다. 그런데도 발전소 건설에 따른 특별지원기금을 피해자인 우리 동네가 아닌 다른 곳에 쓴다.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질문에 두 선출직 공직자가 답변을 내놨다. 유 시장은 박수를 받지 못했고, 이 의원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유 시장은 주민들이 원하는 답을 하지 못한 것이고, 이 의원은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통방식이 유 시장은 ‘군수급’이요, 이 의원은 ‘총리급’이라는 말이 나올법하다.

그렇다면 주민들은 이 의원으로부터 원하는 바, 즉 발전소 건설에 따른 특별지원기금을 얻은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유 시장이 박수를 받지 못한 이유는 특별지원기금을 다른 곳에 쓰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아서다. 그의 답변은 특별지원기금은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의 승인을 받아 시설기금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지극히 원칙적인 내용이었다.

반면 이 의원은 열병합발전소 관련 민원에 대해서 “철저히 검토해서 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특별지원금 사용처 논란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주민 민원이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니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설명을 이어갔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 어렵다’고 딱 잘라 말한 유한식 시장과 구체적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약속한 이해찬 의원.

누가 주민들의 호응을 더 많이 받았는지를 떠나, 나는 유 시장이 더 진솔한 답변을 꺼내 놓았다고 생각한다. 특별지원기금에 대해 핵심을 말했고, 법적인 이유로 양해를 구했으며, 시 자체사업으로라도 도와주겠다는 대안까지 제시해서다. 물론 실천여부는 차후의 문제겠지만 말이다.

물론 박수라는 결과를 떠나 내가 면접관이라면 둘 다 불합격이다. 둘 다 이 문제의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했다고 본 까닭이다. 특별지원기금의 대부분은 면지역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데 쓰인다. 지금으로서는 갈등이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첫마을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 만큼 신·구 지역 간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 정치인이라면 상생을 먼저 말하는 게 도리다. 행복도시는 원주민들의 고통 속에서 탄생했다. 어떻게 말해야 진실한 답변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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