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진상규명·재발방지 바라는 국민 분노 자극할 만

운전자라면 누구나 교통사고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을 한 두 가지 쯤 갖고 있기 마련이다. 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된 1999년 어느 날 신호등 앞에서 갑자기 멈춘 차량을 추돌했었는데, 앞 차의 운전자가 모 보험회사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회사에 있던 선배를 통해 “잘 봐 달라”는 일종의 청탁을 요청한 사실이 있다.

하지만 일은 더욱 꼬여버렸다. 상대 운전자는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범퍼 교체는 물론 병원에 입원해야겠다며 추가적인 보상을 요구했다. 그 후 한 두 건의 교통사고를 더 겪었지만  다행히 모두 상대방의 과실 때문인지라 별 문제는 없었다.

가해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면 괜한 술수를 쓰지 말고 보험사를 통해 원만히 처리하는 것이 가장 나은 길이라는 것을 1999년의 사고 경험이 가르쳐 준 셈이다.

뜬금없이 이런 기억을 떠올린 것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교통사고 비유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역시 큰 틀에서는 교통사고와 마찬가지인 만큼 피해자가 가해자를 수사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부여·청양) 역시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만약 본의 아니게 교통사고가 났는데 피해자가 앵커를 조사하고 수사한다면 받아들이시겠나?”라고 반문하며 ‘세월호 참사=교통사고’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특별검사에 대한 추천권을 유가족들에게 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펴기 위한 것인데, 그 비유가 황당하다 못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바라는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할 만한 것이어서 듣기가 불편하다.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세월호 참사와 교통사고는 엄연히 다르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국가가 그럴 능력은커녕,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거나 이런 사건이 생기길 방치했다고 보는 게 국민의 대체적인 시선일 것이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단순히 교통사고 정도로 여기고 해법을 모색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 뻔하다. 그런 접근법이라면 단식 42일째를 맞은 ‘유민 아빠’ 김영오 씨는 보상금이 적다며 억지를 부리는 사람 정도로 보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책임 있는 자세는 아니다. 세월호 특별법 처리 문제를 오로지 국회의 권한으로 돌리고 있는데, 유가족들의 요구가 진정 무리한 것이라면 박 대통령이 직접 이들을 설득해서라도 신뢰를 줘야 한다.

이미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꼬인 정국을 자체적으로 풀어가기는 어려워진 상황에 와 있다. 박 대통령이 뒷짐을 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가수 김장훈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큰 울림을 준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단식을 하다 24일 실신으로 병원에 이송된 그는 최근 ‘대통령 전상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영오 씨와 관련 “그 분이 보상을 원했습니까? 아니면 대통령의 하야를 원했습니까?”라며 “오직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재발을 방지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이 돼 이 땅에 다시는 원통하고 비참한 참사가 없었으면 하는 ‘올바른 특별법’에 대한 갈망뿐이었죠. 그건 사실 유민 아빠가 싸울 일이 아니라 정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이것이 정치입니까? 이것이 좌우나 진보-보수, 세대 간의 골 그런 문제입니까?”라며 “국민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주시고 지혜로운 결단으로 국가를 바로 세워주시기를 소망하며 간청 드립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제라도 국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상대로 해야 한다.

넬슨 만델라의 명언처럼, 국가는 높은 계층의 시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계층의 시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의해서 평가돼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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