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민의왜곡 커넥션’도 규명해야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완구 총리가 우여곡절 끝에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63일 최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뒤로한 채 검찰수사를 받아야 하는 곤궁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그에게 쏟아졌던 ‘대망론’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걸 보니, 권력이란 역시 일장춘몽(一場春夢)에 불과한 모양이다.

한편으론 ‘이완구 대망론’의 실체가 과연 무엇이었나를 되묻게 된다. 자기관리에 철저하지 못했던 정치인이 ‘대망론’을 앞세워 민심을 호도해 왔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말 그는 충청의 대표선수였을까.

필자는 총리인준 과정에서 뜨겁게 달아올랐던 ‘충청총리론’에 대해 “JP 이후 목 빠지게 맹주를 기다려 온 사람들이 만들어낸 논리”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 맹주가 ‘충청의 깃발’만 들면 충청인의 표를 쓸어 담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그들이 지금 충청총리론을 열심히 강변하고 있다”고 썼다.

그리고 이번에 그 충청총리론의 실체가 드러났다. 성완종 회장이 이완구 총리인준을 위해 여론조작에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총리인준을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극에 달했던 2개월 여 전, 대전과 충남 등 충청권 곳곳에 “충청 총리 낙마되면 다음 총선 대선 두고 보자”라는 거친 내용을 담은 플래카드 수천 장이 내걸린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플래카드를 ‘충청의 여론’이라고 착각했다. 비교적 공정한 저널리스트로 평가받는 손석희 JTBC 앵커마저 최근 “(이완구 총리는) 후보시절 낙마 위기를 겪었는데 이를 지역 민심으로 돌파했다”는 표현을 쓸 정도다. ‘플래카드=지역민심’이라는 등식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것이다.

그러나 “플래카드를 내건 관변단체의 배후에 성완종 회장이 있었다”는 제보가 나왔다. 성완종 회장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조직이름으로 7만원 상당의 플래카드 5000장을 붙였다는 내용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새로운 등식이 성립된다. ‘지역민심=성완종’이라는 등식이다. ‘충청 총리론’의 실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때문에 필자는 “이완구 총리에게 3000만원을 줬다”는 성 회장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총리인준 과정에 성 회장이 개입해 여론조작에 나섰는지를 밝히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본다. 민심을 왜곡한 모종의 커넥션이 존재했다면, 부정한 정치자금 혹은 뇌물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공익에 반하는 행위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충청인들이 ‘충청출신 총리’에 기대를 걸었다. 내심 ‘충청에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란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환상을 가졌다. 그러나 그 기대와 환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일부는 “충청의 자존심이 훼손됐다”고 자괴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충청인의 마음에 그런 상처가 생겼다고 해서 누구를 탓할 수 있겠나. 대표선수를 잘 못 선택한 민의(民意)가 있었다면, 그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지역에서 ‘큰 인물’을 키워보고자 한다면, 얕은 대망론에 휘둘리기보다 ‘바른 인물’을 발굴하는데 더 신경써야한다. 정치신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그들의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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