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가만히 있기’를 강요하는 세종교육

최근 세종시 K초등학교에 근무하는 H교사의 행동이 세종교육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H교사는 시교육청 홈페이지 ‘열린 교육감실’ 게시판에 자신이 당한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시교육청이 이 글을 비공개 처리해 의구심을 일으켰다. H교사가 이에 항의하는 글을 계속 올리자 이번엔 아예 게시판 전체를 비공개로 바꿔버렸다. 당장 ‘불통행정’ 논란이 일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소통’을 강조하는 최교진 교육감 체제의 시교육청이 ‘불통행정’논란을 일으켰을까. <디트뉴스>가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매우 상반된 주장을 만났다. H교사는 자신이 의로운 일에 나섰다가 부당한 징계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시교육청은 자질이 부족한 교사가 일탈행동을 하고 있으며, 게시판 글은 제3자에 대한 명예훼손 소지가 있어 비공개 처리했다고 밝혔다.

H교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번 논란은 ‘세종교육의 적폐가 드러난 사건’이고, 교육청 해명이 사실이라면 ‘돈키호테 같은 현직교사의 일탈행동이 교육계를 뒤흔든 사건’이다. 본보는 연재보도를 결정했다. 양측 주장을 충실하게 다루되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세종교육 현주소’를 함축한 사건이란 판단 때문이다. <편집자>

글 싣는 순서

1.“믿었던 진보교육감에게 배신당한 기분”: 교육청 게시판서 퇴출된 H교사의 하소연

2.교육청 “자질부족 교사의 일탈, 징계 마땅”: ‘H교사 사건’ 해명, 적법절차 강조

3.H교사 사건,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나 : H교사와 교육청의 진실공방, 쟁점은?

4.[데스크칼럼] 진보교육감에게 ‘진보’를 묻다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자료사진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됐다. 전국 17개 광역단체에서 15명의 진보교육감이 선거에 도전해 13명이 당선됐으니, 그야말로 ‘진보교육감 전성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진보교육감 전성시대의 원인을 ‘보수의 분열’에서 찾았다. 보수표심이 더 두터운데도 불구하고 보수진영이 각 선거구별로 3~4명의 후보를 내다보니 진보 단일후보들이 어부지리 당선됐다는 것이다.

정치를 선거공학으로만 이해한다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시각으로는 선거결과에 담긴 민심(民心)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왜 유권자들은 진보교육감을 선택했을까?

‘세월호 사건’을 목도한 엄마들의 분노. 즉 ‘앵그리맘’이 진보교육감 전성시대를 만들어냈다는 시각에 필자는 동의한다. 앵그리맘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 선내방송이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바라봤다. 그리고 어른들, 즉 기성세대의 지시에 순종하기를 강요해 온 교육에 문제가 많았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진보교육감 대거 당선’에 담긴 시대적 명제는 ‘지시에 잘 따르는 순종적 인간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으로 키워달라’는 부모들의 요구일지 모른다. 이념이나 정파에 대한 호불호가 교육감 선거결과를 좌우했다고 볼 여지는 그리 크지 않다.

김재중 | 세종포스트 편집국장
이런 시대적 명제에 동의한다면 진보교육감들은 교육계 내부의 부조리, 관행, 답습에 대한 재점검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새것을 이식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것을 혁신하려는 노력이 더 절실한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 후 1년, 달라진 것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최교진 교육감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세종교육도 마찬가지다. 최근 <디트뉴스>가 집중 보도한 ‘H교사 사건’은 학교 현장의 선생님에게 ‘가만히 있기’를 강요해 온 기존 교육행정의 권위주의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H교사와 교육청의 진실공방이 한참 벌어졌지만, 중요한 것은 세종교육이 H교사를 끌어안지도, 설득하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H교사는 학부모들의 찬조금 관행에 반기를 들었다가 학교로부터 부당한 압박을 받았고, 교육감 간담회에서 교육계 줄 세우기와 폐쇄적 문화에 대해 지적했다가 불공정한 징계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억울함을 교육청 게시판에 올렸더니 글을 삭제하고 게시판을 비공개로 전환하는 수모까지 당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본보는 세종교육청에게도 충분한 해명기회를 제공했고, H교사가 정황과 직감에만 의존해 다소 과장되게 ‘표적감사와 보복징계’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사실 그의 억울함에 대해선 인간적 연민을 느끼지만, 명백한 증거가 있지 않은 이상 ‘표적과 보복’이란 말에 동의하긴 어렵다.

그러나 H교사에 대한 교육행정의 과도한 질타와 평가절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청의 한 징계위원은 H교사에 대해 “강제로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 교육현장을 떠나야 할 교사”라고 극단적 평가를 내렸다. 한 교사의 자질을 논하기에 앞서 교육행정의 자질을 더 의심케 만드는 대목이다.

H교사에 대해 “승진에 눈이 멀고, 언론플레이에 능한 교사”라고 이야기한 다른 교육청 관계자의 평가에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승진에 눈이 멀었다면 조직의 불의(不意)에 조차 입을 다무는 것이 일반적인 태도 아닌가. ‘언론플레이’란 말은 그 자체가 언론이 사리분별을 하지 못한다는 불신에서 나온 말이다. 언론 스스로 그런 모습을 보여 왔기에 변명할 명분은 없지만, 교사 한 명과 비교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교육청 관리자가 할 말은 아니다.

세종시 교육행정에 묻고 싶다. H교사가 만약 학부모 찬조금을 묵인했다면 어땠을까. 학교현장에서 상급자의 지시에 순응했으면 어땠을까. 허심탄회하게 불만사항을 말해보라는 교육감의 제안에 굳게 입을 다물었으면 어땠을까. ‘견책’ 정도의 경징계에 순응해 억울함을 언론에 호소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말 그대로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어땠을까?

교육행정이 일선 선생님들을 질식시키고 있다. 그렇게 질식당한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펼칠 지 예상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게 과연 진보교육감을 선택한 민심에 대한 화답일까. 여전히 세종교육은 ‘가만히 있기’를 강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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