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옥배 공연리뷰] 대전예술의전당 바이올린 독주회

바이올리니스트 선형훈
지난 5월 15일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에서 어린 시절 바이올린 신동으로 불리다가 30여 년간 음악으로부터 외도 후 다시 무대로 돌아온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났다. 지역 대표 종합병원 중 하나인 선병원에서 문화이사로 활동 중인 선형훈이다.

연주평을 쓰기 전 바이올리니스트 선형훈의 음악인생사를 언급해야할 것 같다. 선형훈의 삶의 여정을 알아야만 오늘 그의 연주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5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13세 때 국내 최고의 음악콩쿠르 중 하나인 <이화경향 음악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어린 시절 음악 신동으로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선형훈은 보다 깊이 있는 교육을 위해 13살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세계적인 음악대학인 줄리아드 음악대학의 예비학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를 키워낸 이반 갈라미안(1902-1981) 교수의 마지막 제자가 됐다. 갈라미안은 펄만, 쥬커만, 정경화, 김영욱, 강동석, 김남윤 등을 길러낸 20세기 후반의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 교육가로 평가되는 음악가다.

그러던 중 갈라미안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그 후 몇몇의 스승을 만났으나 갈라미안의 영향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는지 기나긴 좌절과 방황을 겪게 된다. 그 방황이 무려 30년이었다. 그동안 선형훈은 음악계를 떠나 다른 직업을 갖고 그가 어린 시절 꿈꿔온 것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기나긴 외도의 끝은 2012년 결혼이 계기가 됐다. 다시 바이올린을 잡은 그는 연주자의 길로 들어서는 무대 활동을 시작했다.

문옥배 음악평론가 | 당진문예의전당 관장
이날 연주회의 프로그램은 생상(C. Saint Saëns)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가단조 작품28>, 라벨(M. Ravel)의 <치간느>, 크라이슬러(F. Kreisler)의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 프랑크(C. Franck)의 <바이올린 소나타 가장조> 등 바이올린 음악 중 애호가들의 선호도가 높은 작품들로 구성됐다.

특히 생상과 라벨의 작품은 고도의 테크닉을, 프랑크는 깊은 음악해석을 요구하는 작품. 30년 만에 선형훈의 테크닉과 음악해석을 엿볼 수 있는 작품구성이었다. 피아노는 김태희가 맡았고,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이 관객의 이해를 돕는 곡 해설을 했다.

생상과 라벨의 작품에서 선형훈은 30년의 휴지기를 극복하는 바이올린 테크닉을 보여줬다. 바이올린의 고난도 기교로 통하는 스피카토와 슬러 스타카토에서 뛰어난 활 조절 능력을, 왼손의 빠른 패시지 스케일 등에서 민첩하고 명확한 아티큘레이션을 들려줬다.

라벨의 도입부 G선에서의 포지션 이동과 왼손 더블스토핑 등은 그의 왼손테크닉 감각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테크닉은 의식적이기보다는 어릴 적 혹독한 훈련의 결과를 양손이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읽혔다. 그는 고난도 테크닉을 처리하기 위해 그 부분에 집중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테크닉을 조절했다.

그의 음악해석은 유연성과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전체 구축력은 엄밀하게 미리 설계하고 그것에 따라 연주하는 계획성보다는 자유로운 음악진행으로 표현했다. 음 하나하나, 프레이즈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유연한 음악적 프레이즈 처리와 구축력을 그리는 연주를 들려줬다.

일부 프레이즈에서 흔들림이 보였으나, 이는 오랫동안 무대를 떠났던 연주자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음 하나하나에 대한 집중, 구조를 엄밀하게 짜맞춰가는 태도보다는 전체를 자유롭게 구성하려는 모습이 그 흔들림을 상쇄하기에 충분했다. 음악적 구조의 엄밀성, 테크닉에의 함몰보다는 삶의 여정에서 얻은 자유로움을 음악해석으로 표출했다.

프랑크에서는 피아노의 이중주적인 접근이 눈에 띄었다. 생상과 라벨에서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했던 피아니스트는 프랑크에서는 반주에서 벗어나 이중주로의 역할을 통해 작품의 특성을 잘 드러내줬다. 피아노는 바이올린의 자유로운 구성력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바이올린과 매우 일치된 호흡을 보인 훌륭히 연주를 들려줬다.

선형훈은 프랑크에서도 유연한 프레이즈 처리와 자유로운 구성력을 보였고, 특히 2,4악장에서의 클라이맥스 처리는 음량 크기에 의한 물리적 표현보다는 내적인 에너지에 의한 음악적 표현으로 처리했다. 악장간의 유기적인 연결 또한 매우 균형 있게 처리했다. 

선형훈은 음악 신동에서 음악으로부터의 외도, 그 30년간의 삶의 여정을 음악무대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이제는 자유로운 음악을 하고픈 영혼의 의지도 읽혀졌다. 부족함 없는 테크닉과 틀에 갇히지 않은 해석으로 돌아온 바이올리니스트 선형훈. 그의 성공적인 복귀를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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