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석 기고] 영문학박사, 세종교육연구소장

이사를 했다. 약 50여년의 세월을 뒤로한 채 어머님이 시골 생활을 정리하셨다. 그 많은 권고와 핀잔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보이시던 어머님이 드디어 큰 아들 곁으로 오신 것이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결정을 하셨다. 시댁어른 2대를 봉사하시고, 남편과 사별한지 약 16년 만에 당신이 그토록 애지중지 하시던 나의 고향 청양, 화성을 등지고 큰아들과 둘째 딸이 사는 세종으로 둥지를 옮기신 것이다.

적당히 농사일을 하셨다면 이런 결정을 하지 않았을 텐데 연세에 비해 노동의 강도가 너무 컸고, 얼마 전에 사랑하는 막내아들이 유명을 달리하여 더 이상 삶의 의욕이 없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큰 저항 없이 자식들 권유에 순수하게 따라주셨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이치에도 순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가치도 어떤 계기를 통하여 여실히 무너지는 것 같다.

이제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이후 발음이 어눌해지고, 유약한 모습을 여러 곳에서 보면서 억지로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요즘 새삼 느낀다.

그동안 형제들은 “저희들 사시는 곳으로 오셔서 이제 어려운 고추 농사일 그만하시고, 여생을 저희들과 맛있는 음식 함께 먹으며 행복하게 살자”며 명절 때 마다 거의 싸움하다시피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이제는 힘없이 자식들 의견에 따라와 주신다. 이전에 그렇게 완강하시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구부정한 허리하며 순간순간 자주 잊어버리는 건망증을 목도하는 나는 어머니 뒤에서 얼마나 우는지 모른다. 그래서 인생은 이렇게 웃고 있지만 갈대처럼 윙윙 울고 사는지 모르겠다.

이제 세종의 봄이 오는가 하더니 여름이다. 벚꽃이 피었다고 좋아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온통 주변이 짓 푸른 신록으로 단장을 했으니 말이다. 벌써 가을을 걱정해야 될 정도로 7월의 한낮 온도가 30도를 윗 돌고 있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몸과 마음이 지난겨울처럼 춥고 긴 적은 없었다. 동생을 하늘로 보내고 오던 날은 정말 시린 날 이었다. 눈도 많이 내렸고 마음도 엄청 추워 완전 얼어버렸다. 하물며 형제가 이정도인데, 자기 살붙이를 가슴에 묻었으니 어머님의 겨울은 오죽했겠는가? 그런 어머니가 이제 완전히 달라졌다. 당신의 눈빛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아볼 수 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고추를 따던, 리어카를 끌던 부모에게는 자식이 등불인 것이다.

그 등불이 꺼지면 부모에게는 곧 절망이다. 요즘 우리 어머님이 그렇다. 큰 아들인 나는 왜 그러시냐고 원론적인 관심으로 어머님을 대한다. 자연스럽게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의욕이 없어 보이는 어머님을 보면서 무엇이 진정으로 이분을 편안하게 하는 걸까? 로 고민한다.

이제 7월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생동감이 넘치는 봄을 지나 여름이다.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던 그 힘겨운 겨울도 가고,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하셨던 잔인한 4월도 이제 지나간 역사가 되었다.

올 봄과 여름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혹독한 겨울도 갔다. 이 아름다운 신록의 향연에 건강함에 감사한다. 어떻게 얻은 기쁨인데 말이다.

살아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데 사람들은 복에 겨워 늘 불평불만을 한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그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100년의 터, 청양, 화성을 등지고 이곳 세종으로 이사를 왔다. 평생 천 년 만 년 살 것 같던 고향을 떠나왔다. 지금도 우리 선대들의 혼과 얼이 묻어 있는 고향집을 생각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아련한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애지중지하던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어머님의 의욕상실과 파탄에 빠진 농촌경제가 이번의 큰 결정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시골의 노령인구는 점점 노동력의 상실을 가져왔고, 시골 사람들에게 농촌이 더 이상 아름다운 전원생활이 아닌 것이다.

지금 한국은 FTA로 인한 농수산물 가격의 불합리한 유통구조, 농촌 노동인력의 감소, 그리고 신성한 노동의 의미에 대한 천민의식 등으로 이제 더 이상 농촌이 이상적인 낙원이 될 수 없어졌다.

John Stein Back의 '분노의 포도'라는 작품에서 기계화 농업의 압박으로 농토에서 쫓겨난 이동농민들의 비참한 생활과 또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결함을 통하여 그 시대를 통렬하게 비판했듯이, 지금의 한국의 농촌이 너무도 많이 닮아있다.

인간의 선의와 농촌의 운명에 대한 신비로운 신뢰가 그 위험한 수준에 와 있는 것이다. 즉, 작가 스타인벡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떠돌이 노동자라는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땅을 소유하고 자신들을 위해 일하게 되기를 꿈꾸듯’이 결국 시련과 비극은 우리 인간들이 선택하는 미래의 계획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그 누가 어떤 일을 하던 ,어떻게 살아가던지 간에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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