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기관’ 싸움에 ‘시민’ 불편만 가중

행정 갈등이 원인…대안마련 시급

입주시즌의 새 아파트에서 공용시설을 둘러싸고 건설사와 입주민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건설사들이 분양수익을 올리기 위해 커뮤니티센터 등 공용시설 규모나 내용을 과장한 뒤, 실제로 약속을 지키지 않아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세종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특정 아파트 단지 이야기가 아니다. 행복도시 전체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행복청과 LH가 건립한 공원이나 복합커뮤니티센터, 도로, 체육시설 등을 세종시가 인수받는 과정에서 기관 간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행복청과 LH는 건설사, 세종시는 입주민의 처지와 흡사하다. 문제는 기관 간 이해가 엇갈리면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갈등만 키우는 일이 많다는 데 있다. 시민들은 행정 갈등의 틈바구니에 끼어 그저 불편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이미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행복도시에 처음으로 건설된 수영장이 2년 넘도록 문을 열지 못한 것도 실은 이런 행정 갈등 때문이었다. 학교, 공원, 주민센터, 체육시설, 하수처리장 등 거의 모든 공공시설에서 그 크기만 다를 뿐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오죽하면 ‘행복청’과 ‘세종시’라는 이원적 행정구조를 하나로 합쳐야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을까.

행정 스스로만 문제의 심각성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사례로 ‘1생활권 준공 지연’을 들 수 있다. 공공시설물 인수를 둘러싸고 행정이 서로 다투는 동안, 세종시 1년 예산과 맞먹는 1조원 대 민간 재산권이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사업 준공’이란 행정행위를 근거로 소유권 정리가 이뤄지는데, 행정이 막혀있다 보니 시장경제의 근간인 ‘소유권’마저 제약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민간투자를 활성화시키겠다’는 행정의 장밋빛 청사진이 공염불로 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일부 전문가들은 “기관통합은 어렵더라도 차제에 별도의 통합기구를 두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고 있다. 세종시의회 차원에서 공공시설물 인수점검 특별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안찬영 시의원은 현 행정 갈등의 원인을 “소통부재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진단했다. 행복청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앙정부 차관급이 대거 포진한 ‘행복도시 건설추진위원회’에 세종시장이 당연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세종시 건설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민간업체 관계자들은 “행정기관이 서로 협의해 민원인 편에서 뭔가 일처리를 해 주리란 기대를 접은 지 오래”라고 체념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불편이 있어 행정기관에 문의전화라도 걸면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세종시민은 이렇게 핑퐁행정의 볼모로 잡혀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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