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안희정 지사에게 필요한 정치력

김학용 주필
정치인에게 필요한 재능은 크게 2가지다. ‘집권의 기술’과 ‘정치의 기술’이다. 전자가 부족하면 자신의 정치를 해볼 기회를 얻기 어렵고, 후자가 부족하면 권력을 잡아도 성과를 낼 수 없다. 정치의 기술은 곧 ‘정치력’이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집권의 기술은 곧 ‘득표력(지지율)’을 좌우한다.

득표력은 정치력의 일부분으로 볼 수 있지만 정치의 과정으로 보면 두 가지는 구별되는 요소다. 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이 이 두 가지를 갖추지 않으면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없다. 대권이든 지방권력이든 정치인에게 득표력과 정치력은 필수조건이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득표력’과 ‘정치력’

득표력과 정치력은 비례하는 편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득표력이 좋아도 정치력이 부족한 사람이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득표력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지만 정치력은 가변성이 적다. 많은 정치인들은 득표력에만 신경쓰고 정치력 문제에는 소홀한 편이다. 부족한 정치력을 득표력으로 보충하려는 정치인들이 많지만 여기엔 한계가 있다.

정치력은 밀어붙이는 힘만 말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타협만이 능사도 아니다. 정치력은 자신의 신념이나 아이디어에 대해 상대가 인정하고 스스로 동조하도록 만드는 능력이다. 국민들의 여러 의견을 중재하는 능력도 정치력이다. 한마디로 정치적 현안을 해결하는 능력이고 수완이다.

사안이 첨예하면 친구조차 설득하기 힘든 판에 사사건건 반대를 외치는 정적을 달래는 일은 훨씬 어렵다. 그래서 차라리 양보하고 타협함으로써 결말을 짓는 게 때론 현실적이고 정치인다운 모습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상대 의견만 존중한다면 자신의 신념은 어디서 펼칠 것인가?

정치인은 하나부터 열까지 이런 문제와 씨름하는 직업이다. 내 고집만 부려서도 안되고, 무조건 양보하고 끌려만 가도 안 된다. 정치력은 이런 딜레마에서 보다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이다. 여-야는 서로 정치의 대상이고, 같은 당 내에서도 주류와 비주류가 서로 정치의 대상이다.

정치력을 어떻게 발휘하는지는 국민이 심판한다. 어떤 정치인이 어떤 아이디어로 상대를 어떻게 설득하고 협상하는가 하는 점을 국민들은 지켜본다. 보다 많은 국민들이 원하는 결과를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 유능한 정치인이고 일국의 지도자감이다.

공무원까지 정치판에 춤추는 충남도청

안희정 지사는 비록 지방도백에 불과하지만 전국적인 지명도에선 내로라는 정치인에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정치력은 검증된 바 없다. 그가 대권에 도전하겠다면 말할 필요도 없고 도정의 원만한 수행을 위해서도 정치력은 필수요건이다.

도청 공무원까지 정치판으로 끌어들인

논란이 되고 있는 내포 현수막 문제도 핵심은 설치와 철거 과정의 ‘불법성’보다 ‘정치성’에 있다. 김용필 도의원이 안 지사의 실정을 비판하는 천막 시위한 것은 도지사를 압박하기 위한 정치 행위였다. 예산군민들이 내건 현수막도 안 지사 비판에 가세하는 정치 행위다.

천막과 현수막은 안 지사와 도의원 사이에 벌어지는 정치적 갈등의 상징물이다. 장사꾼이 자기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내건 단순한 불법 광고물이 아니다. 따라서 현수막의 강제 철거는 누가 했든 행정 행위라기보다 정치 행위다.

불법 현수막의 철거 권한은 예산군에 있으나 충남도 총무과장이 뗐다. 총무과장은 “주민 자격으로 뗐다”고 했으나 도의 총무과장이 아니었다면 주민자격까지 내세우며 철거에 나섰을까? 충남도의 정치력 부재가 공무원까지 정치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안 지사는 ‘도지사 와유’(도지사 &YOU)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동창회 계모임 상인회 등에서 불러주면 도지사가 달려가는 도민소통 강화 프로다. 어떤 경우에도 소통은 필요하지만 안 지사는 소통의 대상을 고민해야 한다. 정치력을 키우려면 대중보다는 안 지사 자신과 정치적 대척점에 있는 집단과 대화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박정희 평가에 관대한 386 정치인 안희정

안 지사는 박정희에 대해서도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표현할 만큼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고집불통 이미지의 ‘386 정치인들’과는 거리가 있는 말도 자주 한다. 극단적인 발언도 하지 않는 편이다. 야권 쪽에서 오히려 서운할 정도의 ‘중도적(中道的) 발언’도 많다.

이게 현실 정치에서 실천될 수 있다면 뛰어난 정치력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있다. 정치인은 말만 가지고는 알 수 없다.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안 지사에게 가장 좋은 ‘실험 대상’이 있다. 도의회다. 안 지사를 가장 괴롭히는 기관일지 모르나 여기야말로 안 지사가 정치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중앙정부도 도의회도 새누리당(여당)이 끌고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새정치연합(야당) 소속인 안 지사에겐 여러모로 불리하다. 작금 도지사와 도의회 간 심각한 불통의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이 안 지사의 정치력 배양에는 오히려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상대편과 소통’ 노력 더 필요한 안 지사

남경필 경기지사가 실험중인 연정(聯政)은 도민보다는 ‘상대편’과의 소통 시스템이다. 인사에선 상대 편 사람도 쓰고 일에서는 상대편 아이디어도 도정에 적극 반영해보려는 노력이다. 도지사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를 성취하면 그게 정치력이다.

안 지사에게도 ‘상대편’이 있다. 도의회든 단체든 안 지사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안 지사는 대중과 도민보다는 상대편과의 소통을 강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봤으면 한다. 지금 안 지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집권의 기술보다 정치의 기술이다.

도의회가 먼저 정치의 기술을 발휘해 볼 수는 없는가? 도의원들이 안 지사의 ‘도지사 와유’ 프로에 참여해보면 어떨까? 특히 안 지사와 껄끄러운 도의원들이 안 지사를 초청하고 안 지사가 찾아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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