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옥배의 공연리뷰] 음악평론가 | 당진문예의전당 관장

지난 11월 14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는 이 시대의 거장으로 평가되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자크 펄만(Itzhak Perlman)의 감동적인 무대가 있었다. 1945년생으로 70세가 넘은 나이이기에 그의 이번 내한 공연은 우리가 펄만 생전에 다시금 맞이하기 어려운 기회였다.

이자크 펄만은 이 시대 거장의 반열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명이다. 20세기 바이올린 역사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1세대 연주자인 하이페츠, 오이스트라흐, 밀스타인, 프란체스카티, 메뉴힌 등이 모두 세상을 떠났고, 2세대 바이올리니스트인 그뤼미오, 셰링, 스턴, 수크, 코간, 기틀리스, 페라스 등이 세상을 떠났거나 무대 뒤에 물러난 상황에서 제3세대 바이올리니스트인 아카르도, 펄만, 쥬커만, 정경화, 크레머 등이 70대의 나이에 들어섰다.

때문에 거장으로 칭송받는 제3세대 바이올리니스트의 쇠퇴하지 않은 기량의 실황공연을 들을 수 있는 시한은 불과 몇 년 남아있지 않다. 그만큼 최근 지역에서 연주된 정경화의 대전시향 협연과 함께 이자크 펄만의 이번 공연은 의미가 컸다. (참고로 정경화는 1948년생으로 이자크 펄만과 같은 스승 갈라미안을 사사한 동문이다.)

피아노는 이 시대 최고 반주자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로한 드 실바가 맡았다. 펄만, 초량 린, 미도리, 조슈아 벨, 바딤 레핀, 길 샤함 등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전문반주자로 활동해왔다.

이날 공연 프로그램은 르클레르의 <바이올린 소나타 Op.9-3>,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Op.posth "FAE Sonata">,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Op.24 봄>,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 등으로 17세기 바로크작품부터 고전(18세기)-낭만(19세기)-20세기 초까지 시대별로 구성되어 바이올린 소나타의 역사를 보는 듯 했다. 

 
대가의 뛰어난 연주는 베토벤과 라벨의 연주에서 명확히 드러나고 있었다. 펄만의 연주는 작품이 가진 흐름을 더욱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악장 내, 악장 간 전체적 구축력은 너무도 뛰어났고, 레가토는 길고 우아하게, 리듬적 패시지는 짧고 명료하게 처리하는 등 프레이즈를 성격에 따라 처리했다. 빠른 패시지의 아티큘레이션은 명료성과 완급의 조절이 절묘했다. 그의 음악적 표현과 테크닉은 부자연스러움과 어려움 없이 관객으로 하여금 모든 것이 자연스런 흐름으로 느끼게 했다.

피아노와의 호흡은 어느 한쪽이 주도권을 갖지 않고 이중주의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완벽한 교감의 앙상블이었다. 두 연주자가 서로 호흡을 맞추려하기보다는 음악작품이 가진 흐름에 충실함으로써 작품이 그들의 음악적 교감을 하나로 묶고 있었다. 펄만의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에서 나오는 음색은 우아함의 극치를 들려주었고,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하지만 절제하면서 최소화하고 음악적 깊이에 몰입하려는 지적인 해석을 보여줬다.

펄만은 무려 6곡의 앙코르곡을 연주함으로써 관객의 열광적 호응에 부응해주는 매너를 보여주기도 했다. 슈만의 <로만스 A장조>, 크라이슬러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제곡>,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 브람스의 <헝가리무곡 1번>, 바찌니의 <인형의 춤> 등 바이올린음악 애호가라면 너무도 좋아하는 작품들로 선사했다. 특히 쉰들러 리스트는 자신이 직접 영화 OST를 연주했던 것이기에 오리지널 연주의 감명이 있었고, 바찌니는 완벽히 컨트롤 되는 그의 초절기교를 볼 수 있었던 연주였다.

이날의 연주는 지역에서 우리 시대 바이올린 거장의 마지막이 될 실황연주를 접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기획이었고, 아직 음악적으로, 테크닉적으로 흔들림 없는 거장의 연주에 감동할 수 있었던 음악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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