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육동일 교수(한국주민자치중앙회 회장, 충남대)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로 출범한 세종시가 그간 정부청사 이전과 각종 부대시설이 속속 들어서면서 최근 인구 20만을 넘어섰다. 게다가 지난 달 정부는 경기 구리시에서 세종시를 잇는 '서울-세종간 제2경부고속도로' 사업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2025년에 완공예정이다.

세종시민들을 비롯한 충청지역민들은 수도권에서 세종시로의 접근성이 좋아져서 세종시로의 인구유입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면서 환영하는 분위기다. 세종시는 2020년에 30만, 그리고 2030년에 50만의 인구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도시규모면에서는 계획대로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세종시는 신행정수도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 그리고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에 이르기까지 그 숱한 우여곡절과 난관 속에서 분명한 목표와 역할을 부여받고 태어난 도시다. 즉 세종시는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시정하고, 국가균형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건설되는 도시다.

당초의 신행정수도가 위헌판결을 받음으로써 할 수 없이 서울과 세종시로 중앙정부 부처를 나누어 분산, 배치시키도록 국회와 국민들이 어렵게 내린 결정의 산물이다. 그것은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국정운영의 비효율성보다 수도권 과밀해소 및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상생발전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출범 3년을 보낸 세종시가 애초부터 부여받은 도시목적을 구현하면서, 국민들의 열망을 담아내고 있는가를 지금쯤은 따져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진행상황을 놓고 볼 때, 유감스럽게도 세종시가 국민들이 기대한 대로 제 길을 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뚜렷하다. 세종시 전체 인구는 2012년말 10만 3천여명에서 올 10월말 현재 20만 5천여명으로 3년 사이 약 100% 증가했다. 그러나 세종시 유입인구의 전출지를 보면, 세종시를 둘러싼 대전‧충북‧충남이 전체 유입인구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대전시민 4만여명이 세종시로 빠져나가 전체 유입인구의 26%에 이른다. 충남, 충북도 각각 11%, 10%나 된다. 2017년까지 세종시에 2만이상의 신규아파트가 공급되면 인근지역 주민유입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우려한 대로 세종시가 충청권인구를 속속 빨아들이는 빨대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서울시의 인구는 다행히 줄고 있다. 올 3/4분기(7,8,9월) 서울을 떠난 인구가 총 3만 7천여명으로 최대폭을 기록했다고 한다.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세종시 건설로 나타난 효과는 결코 아니다. 최근 3년간 서울을 떠난 인구는 30만명을 넘어섰다지만, 그 인구는 세종시로 가지 않고 경기도와 인천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경기도는 25만 2천명, 인천은 6만 4천명이 증가했다. 서울의 전월세 가격이 폭등하고 수도권의 교통인프라가 더욱 확장되면서 서울의 인구가 경기, 인천으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세종시로 이전한 관련부처 일부 공무원들과 가족들이외에 수도권인구는 여전히 줄지않고 있는 것이다.
 
세종시는 당초의 의도대로 수도권 인구가 내려와서 채워야 성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정책적 보완조치 없이 이대로 충청권의 인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계속된다면 세종시 건설이 수도권 과밀해소는커녕 수도권과 비수도권간 격차와 갈등만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나아가 충청권은 동반 쇠퇴의 길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세종시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울-세종간 고속도로가 연결되면 오히려 주거지는 수도권에 두고 세종시로 출‧퇴근하는 수요가 증가하는 등 수도권으로의 집중화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1960년대 이후 '수도권집중억제 및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수백가지의 정책을 시도했으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언발에 오줌누는 격으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지역간·계층간·도농간 불균형 문제를 하루속히 시정하지 않으면 지역의 분노가 폭발하는 절박한 국면에 접어들 것이다. 세종시 건설은 이런 문제해결을 위한 가장 강력하고 효과가 큰 정책이다. 또 그렇게 되도록 지금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인근 대전‧충청지역민들로 세종시 인구를 늘려가서는 절대 안 된다. 그동안 그렇게 많은 국민적 에너지와 건설비용을 들여 여기까지 온 이상 세종시가 이대로 가서는 안된다. 지금부터 올바른 길과 방법을 다시 찾아야 할 때다. 
 
세종시 건설로 대전시의 침체와 쇠퇴의 징후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백년전 불과 인구 5천명의 대전면에서 시작한 대전시의 인구는 직할시가 된 1989년 1백만을 넘어선 이래 2013년까지 매년 1만명 이상 증가하다가, 세종시가 출범하면서부터 매년 1만명씩 줄고 있다. 앞으로 그 감소폭은 더 커질 것이다. 양 도시가 이대로 가면 상호간 상생발전의 윈윈(win-win) 게임이 아니라 제로섬(zero-sum) 게임으로 갈 것이다. 그러면 대전이 절대적으로 불리해질 게 틀림없다.
 
그 이유 또한 분명하다. 대전이 세종시와 차별화된 도시로서의 도시정체성(city identity)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은 뭐니뭐니해도 철도도시로 탄생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05년 경부선 철도와 1913년의 호남선 철도가 대전을 지나게 됨으로써 삼남의 관문이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로 인해서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했고, 1949년 인구 12만 6천명의 대전시가 될 수 있었다.

뒤이어 1970년 경부와 호남고속도로가 다시 대전에서 교차함으로써 대전은 명실상부한 교통도시가 될 수 있었다. 그 결과, 1973년 대덕연구단지가 조성되면서 대전은 과학도시라는 새로운 도시브랜드를 추가했다. 과학도시 대전으로 말미암아 1989년 대전직할시로 승격했을 뿐만 아니라, 1993년 대전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도시발전을 앞당기게 되었다. 1992년 자운대, 1997년 대전제3청사가 들어섬으로써 대전은 국방도시와 행정도시의 브랜드까지 추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1년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에 이어 2014년 KTX 호남선이 서대전역을 따나고, 대전도시철도 2호선 건설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에서 제2경부고속도로 마저 대전을 비켜간다면 대전은 이제 백십년만에 자랑스런 교통도시 간판을 내려놓아야할 지 모른다. 그것은 대전의 무장해제를 의미한다. 더 이상 대전시가 이대로 가서는 안된다.
 
이제라도 쇠퇴하는 대전이 살아나려면 교통도시의 정체성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최근 다시 점화된 충청권광역철도와 함께 도시철도의 건설, KTX 시대의 호남선 서대전역 문제해결, 그리고 대전역 역세권 개발과 충남도청사의 활용이 교통도시 대전으로서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하는 차원에서 종합적‧체계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그 결과는 ‘대전권광역교통망의 구축’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국가나 지역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이를 재도약의 계기로 만드는 힘의 원천은 리더들의 빛나는 지혜와 용기다. 침체와 쇠퇴의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대전은 지금 도시안정이나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을 주도할 새로운 리더십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대전이 쇠락의 늪으로 빠지느냐 아니면 재도약의 계기로 삼느냐를 결정하는 내년의 총선이 그 만큼 중요한 이유다.
 
끝으로, 지금 대전시민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 정치에 대한 불신, 행정에 대한 불만을 느끼는 소위 '3불시대'에 살고 있다. 그간 대전을 발전시킨 시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은 사라지고 꿈과 희망을 잃은 채 도시활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희망이 없는 국민은 반드시 망한다”는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말을 다시 꺼낼 것도 없이 대전이 다시 한 번 일어나려면 대전시민들이 자신감과 일체감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다.

대전은 지난 백년동안 대전을 교통도시, 과학도시, 국방도시, 행정도시로 만든 시민들의 저력이 있다. 이제부터 대전 도시의 정제성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도시발전의 새 전략과 정책을 통하여 대전을 반드시 중흥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전시민들이 깨어나서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갖고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 말고 밀고나가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