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구 특별기고] 국학박사 | 향토사학자
철거에 동원된 인부와 굴삭기, 트럭만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렬한 햇볕이 사정없이 내려쪼여 숨이 콱콱 막힐 정도로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굴삭기와 트럭들. 그 기계들이 움직일 때마다 내는 시끄러운 굉음이 귀를 먹먹하게 해도 가족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막노동을 열심히 하는 인부들의 몸부림이 나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정훈 선생 고택이 순식간에 허물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건물 잔해만 앙상하게 남은 황량한 모습을 보니 너무 황당하고 허무해졌다. 나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이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고 말았다.
8일 오전 11시 30분경 대전 문학사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대전 문인협회 사무실에 들러보니 여성 간사 한 분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전 문협에서는 대흥동 정훈 고택이 이미 매각되어 7일부터 철거에 들어간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6월 말부터 시작한 서명을 계속 받고 있었다.
서명부를 보니 8일 오전까지 230명의 문인들이 서명에 참여한 것으로 돼 있었다. 또 중구청, 대전시청, 도시재생본부 등 관계 기관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한편 지방신문사 기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했다. 그래서 대전 중구청 공보실에 가서 8일자 한 지방신문을 보니 3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게재돼 있었다.
대흥동 정훈 고택은 이미 매각 절차를 끝내고 7일부터 철거에 들어갔는데,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헛수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사후 약방문’, ‘버스 지나간 뒤에 손들기’ 등과 같은 속담들이 실감났다.
대전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와 근현대 건축물들이 하나 둘 사라져버려 정말로 안타깝고 어처구니없고 한심하다. 이미 박용래 시인의 오류동 고택은 사라진지 오래됐고, 보문산 청심등대세계평화텁은 한 달 전에 전격 철거됐으며, 정훈 시인 대흥동 고택도 8일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졌다.
전통문화와 근현대 건축물은 일단 철거되어 사라져버리면 원형 그대로 복원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철거보다는 유지 보수하는 방향으로 문화재 관련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제는 시민단체들이 전면에 나서서 지자체와 문화재청의 문화재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감시하면서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와 근현대 건축물들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데에 앞장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