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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의 책임 일깨우는 인사청문회

[김학용 칼럼] 권 시장이 잘해온 인사청문회를 왜?

김학용 주필2016.08.11 18:28:45

제주시장을 하려면 선거가 아니라 제주도의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제주시는 자치시(市)가 아니라 도지사가 시장을 임명하는 ‘행정시’로, 제주지사가 제주시장까지 인사청문회 대상에 넣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새로 임명된 제주시장도 인사청문회를 거쳐 발령됐다.

제주도는 도 산하 공기업 및 기관의 장(長)과 정무부지사도 인사청문회를 거친다. 2004년 김태환 지사 때부터 해오고 있다. 원희룡 지사가 들어와서 인사청문회 대상을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까지 확대했다. 인사청문회는 대전시를 포함, 인천 경기 광주 전남 강원 등 여러 시도에서 도입했거나 도입을 추진중이다.

인사청문회, 법적 근거 없으나 시장 동의하면 문제 없어

▲김학용 주필

지방자치단체 인사청문회의 법적 근거는 아직 없다. 그러나 인사권자인 시도지사가 동의하면 문제가 없는 제도다. 지방공기업 사장이나 정무부시장에 대한 인사권자가 인사 과정에서 지방의회 검토 과정을 거친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이 제도는 인사권자의 ‘양보’로 시행되는 만큼 청문회의 결과를 강제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훨씬 낫다. 인사청문회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인사가 더 신중할 수밖에 없고, 무자격자의 임명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을 추천해서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인사권자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인사는 인사권자의 권한이지만 막중한 책임이기도 하다. 권선택 시장도 인사청문회를 통해 이런 점을 느꼈을 법하다. 자신이 추천한 인사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할 때는 발탁자로서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과정을 통해 사람을 걸러내도록 하는 게 인사청문회의 목적이다.

인사, 권한보다 책임 알게 하는 인사청문회

인사청문회는 인사권자에게 ‘인사권의 무거움과 책임’을 알려주는 제도다. 인사권자로선 좋아할 리 없다.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는 총리를 고를 때 대통령은 머리를 쥐어짜곤 한다. 낙마를 거듭하면 ‘총리를 꼭 둬야 하느냐?’는 한탄까지 나온다. 장관 임명 때도 인사청문회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방까지 인사청문회가 필요할까 하는 의문도 있을 수 있다. 지방이니까 더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 지방 인사는 중앙에 비하면 견제 장치가 거의 없다. 자치단체장의 거수기로 전락한 지방의회가 수두룩하다. 엉터리 인사를 해도 말 한마디 못한다. 인사청문회마저 없으면 ‘엉터리 인사’가 더 심해질 게 분명하다.

중앙에선 인사청문회가 순수한 인물 검증보다 종종 당사자나 인사권자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이면서 부작용을 우려하기도 한다. 인사청문회가 능력있는 인사의 발탁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정말 유능한 인재라면 인사청문회가 발탁의 장애물일 수는 없다.

▲대전시의회의 인사청문회 모습. 자료사진

부적격 인사 막을 수는 없어도 ‘경고음’ 가능

인사청문회는 인사권자가 부적격자를 선택할 때, 이를 저지할 수는 없더라도 “엉터리 인사”라는 경고음을 시민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 인사청문회가 없으면 인사권자가 도둑을 요직에 앉히더라도 경고음조차 듣기 어렵다. 언론 기능이 부족한 지방에선 인사청문회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다행스럽게도 권선택 시장은 지난 선거 때 인사청문회 도입을 공약했고, 시장이 되어 약속을 지켰다. 인사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인사청문회는 무엇보다 필요한 제도다. 권 시장이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권 시장 스스로는 오히려 이상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권 시장은 “인사청문회를 해보니 내가 의도했던 방향과 맞지 않았다. 제도적 한계, 법적 조치 불비 등의 원인으로 또 다른 논란이 양산되는 만큼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의도했던 방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 제도의 ‘의도’는 인물 검증에 있다. 시의회에 대해 인물 검증을 제대로 못한다는 비판은 있었어도 의원들이 청문회를 달리 써먹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

시장이 제도적 한계와 법적 미비를 문제삼는 것도 잘못이다. 시민의 대표인 시장과 시민의 또 다른 대표인 지방의회가 협의하면 누구도 간여할 수 없는 사안이다. 경기도에선 도지사와 도의회의 협의로 도의원을 집행부의 실국장을 맡도록 하는 ‘지방장관제’까지 추진하고 있다. 물론 법에는 없는 제도다.

권 시장 인사청문회 포기하면 오해 받을 수도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국회의원은 최근 지방공기업 사장 등을 임명할 때 지방의회의 인사청문회 개최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지방공기업 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을 핑계로 인사청문회를 시행하지 않는 자치단체까지 강제로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이 법에 반대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젠 시도지사가 거부해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인재 풀이 작은 지방에서 인사청문회는 인사권자에게 더 곤혹스런 제도일 수 있다. 사람을 허투루 골랐다간 인사권자가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인사청문회는, 거절하기 힘든 이유를 내세워 시장에게 달려드는 ‘미자격자들’을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권 시장이 인사청문회를 다시 접는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오히려 문을 열어 놓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권 시장은 좋게 시작한 제도를 중도 포기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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