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솔 첫마을학교 안신일 교장 & 김기수 교감

주민들의 재능기부와 단지 내 공동시설을 활용해 운영되는 국내 첫 ‘마을학교’가 세종시에서 탄생했다. 학교와 지역, 교육청 세 주체가 마을교육공동체라는 이름아래 힘을 모은 것. 

지난 23일 열린 ‘한솔 첫마을학교’ 입학식에서는 안신일(41) 첫마을 6단지 입주자대표회장이 교장으로, 김기수(48) 아파트 관리소장이 교감으로 위촉됐다. 21명의 첫마을 주민들도 마을교사 임명증을 수여받았다.

2011년 첫마을 입주 이후 줄곧 단지 내 유휴시설 활용에 대해 고민해온 안신일 첫마을 6단지 입주자대표회장을 지난 25일 만났다. 아파트 곳곳의 빈 공간을 주민카페와 장난감도서관 등으로 리모델링한 데 이어 최근 마을학교를 열게 된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단지 내 잠자는 특화시설 활용, ‘시설 공동사용 협약’ 체결

안신일 첫마을6단지 입주자대표회장과 김기수 관리소장이 지난 23일 각각 한솔 첫마을학교 교장, 교감으로 위촉됐다.
지난 2011년 첫마을에 입주한 안신일씨는 입주자대표 직을 맡다보니 아파트 내에 빈 공간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단지별 특화시설인 골프장, 탁구장도 낮 시간에는 이용자가 없어 쓸모가 적었다는 것.

그는 “입주초기 온통 공사장이다보니 아이들이 놀 곳이 없어 방황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며 “단지 내 빈 시설을 활용해 아이들에게 긍정적이고 건전한 놀이장소를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올해 시설 활용 방안에 대해 시교육청과 협의한 끝에 마을교육공동체 시범사업으로 마을학교가 탄생하게 됐다”며 “학생모집은 한솔동 5개 학교(참샘초·한솔초·미르초·한솔중·새롬중)에서 협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첫마을 1~7단지는 이미 올해 6월 최영미 한솔동장과 함께 단지 내 주민 공동시설 활성화를 위한 ‘시설 사용 공동협약식’을 진행한 바 있다.

그는 “단지 내 공동시설 이용은 주민들의 재산권과도 관련돼 있고, 주택법의 영리목적 등으로 제약을 받는다”며 “다행이 첫마을 단지는 공동사용 협약을 체결했고, 최근 국토부에서 이와 관련된 주택법을 변경고시하는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학교와 반이 아닌 ‘마을’ 친구들… 주민들의 자발적 '재능기부' 지원

‘한솔 첫마을학교’는 내달 1일부터 두 달여간 운영된다. 초·중등 학생을 대상으로 골프, 탁구, 보드게임 과목을 개설, 총 6개반이 운영된다. 초등학교는 각 7명씩, 중학교는 10명씩 선발했는데, 접수 인원이 많아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추첨을 거쳤다.

첫마을학교는 일반 학교에서 운영 중인 방과 후 수업과는 큰 차이점을 가진다. 같은 반, 같은 학교 친구들이 아닌 이웃에 사는 언니, 누나, 동생들과 수업을 듣고, 이웃 삼촌과 이모들이 선생님이 된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 학교, 너네 학교가 아닌 ‘마을’로 묶이면서 교육의 담이 허물어지는 것”이라며 “평소 마주치던 동네 아저씨와 이모 등 이웃 어른들을 선생님으로 만날 수 있어 더 특별한 학교”라고 말했다.

메인교사를 비롯해 대부분의 마을교사 자원봉사자들은 단지 내 주민들로 구성됐다. 평소 커뮤니티센터 골프장, 탁구장 등에서 운동을 해온 동호회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재능기부에 나선 것. 보드게임 과목의 경우는 마침 첫마을 주민 중 보드게임 전문가가 있어 도움을 받았다. 

교육보다는 돌봄·보육의 ‘역할’… 마을학교의 가치

첫마을 6단지 내 장난감도서관에 걸린 시설 공동사용 협약서.
아이들은 하루하루 빠르게 성장한다. 그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 이웃 어른들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기성세대와의 갈등이 적다. 어른들 역시 어렸을 적부터 봐온 동네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관심 있게 지켜볼 수 있다.

그는 “마을공동체는 현대사회에서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며 “성장과정을 함께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고, 동네 어른들과 아이들이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관계형성이야 말로 마을학교의 최고 가치”라고 말했다.

마을학교는 교육보다는 돌봄, 보육의 기능이 크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환경에서 안전하고, 편안한 보육환경 조성 역할을 하는 것. 

그는 “사실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이들 정서상 좋지는 않다”며 “맞벌이 부부의 경우 방과 후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없어 필요 없는 사교육을 시키기도 하는데, 마을학교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5년째 첫마을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기수 아파트 관리소장도 마을학교의 운영 가치를 지역 내 관계형성을 통한 안전한 보육환경에 두고 있다.

김 소장은 “과거 동네에는 놀이문화가 있었지만, 주거문화가 아파트로 옮겨가면서 지역 어른들과 아이들의 관계도 사라져버렸다”며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은 지역 내 ‘관계맺음’에서 비롯된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소통을 통해 서로 존중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만 아이들은 올바르고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첫마을 주민들, 운영비용이 아닌 ‘지역 아이들’에 초점

지난 23일 열린 한솔 첫마을학교 입학식 현장. (사진=세종시교육청)
단지 내 시설 공동 이용은 주민들의 재산권과 직결된 문제기 때문에 민감한 사안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단지 내 유휴시설 활용에 대해 고심한 첫마을의 경우, 이번 마을학교 운영을 추진하면서 주민들의 반응이 남달랐다.

안신일 입주자회장은 “주민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긍정적이어서 놀랐다”며 “시설 사용에 따라 발생되는 운영비용의 문제 보다는 내 아이, 내 이웃의 아이가 혜택을 본다고 생각해 거부감이 적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첫마을로 이주하신 분들은 약간 선구자적 기질(?)이 있는 것 같다”며 “당시 ‘그 먼지 나는 곳을 왜 가느냐’는 핀잔을 뒤로하고 새로운 곳을 택한 만큼 도화선만 있으면 수많은 주민들이 아이들을 위해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세종시 첫 마을학교의 교육방향은 무얼까. 

그는 “짧은 기간이지만 한솔 첫마을학교 교장으로서의 꿈은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것”이라며 “일반적인 학교가 학업, 성장 중심이라면 적어도 마을학교만큼은 아이들의 행복을 가장 최우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교육청에서 주민들을 교장, 교감, 교사로 위촉하고 임명해준 만큼 주민들도 큰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모든 부모들이 공감하듯이 세종시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린 만큼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청소년문화 미흡한 세종시, 마을과 연계해 노력해야”

한솔 첫마을학교 골프수업에 활용될 첫마을6단지 내 골프연습장.
끝으로 그는 네 아이의 아빠로서 현재 세종시의 청소년 문화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고 언급했다. 

그는 “아이들의 시계는 어른보다 빠른 만큼 청소년 문화 조성이 시급한 실정”이라며 “청소년 시설을 짓기가 어렵다면 마을 인프라를 통해 장소를 마련하는 등 기관에서 주도적으로 청소년 문화 지원에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첫마을은 이번 마을학교 시범사업을 계기로 단지 내 요가실 등 학교에는 없거나 부적합한 시설을 지역 학교에 개방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내년 본격적인 마을학교 사업을 통해 수업 과목과 시차를 늘려 더 많은 마을 아이들을 대상으로 돌봄과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올해 마을교육공동체 지원 조례가 입법예고된 만큼 내년이면 민간 공모를 통해 마을교육사업을 지원할 수 있게 될 예정”이라며 “마을학교는 교육보다는 지역 관계망을 넓혀 아이들이 훨씬 안전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을 돕는다. 적극 나서주신 한솔동 주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학교 담장 너머 마을 주민들이 아이들의 보호망을 자처하고 나섰다. 지역 아이들은 마을 안에서 이웃들의 관심으로 성장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성장을 가까이서 지켜본다는 것. 이제 세종시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벗어나 마을 안에서도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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