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상 왕관이 제안한 제도는 이미 주왕조 뿐만 아니라 당시에 거의 모든 나라들이 사용해오던 분봉제였다.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었다.

시황제는 새로운 제도를 찾고 있었다. 자신이 이룩한 대제국에 걸맞은 새로운 제도. 그동안 어떤 나라에서도 행하지 않았던 그런 제도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신들은 전혀 그런 제도를 제시하지 못하고 이미 낡아버린 옛 제도를 들먹이고 있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의견은 없소?”

시황제는 제차 물었다.

그때 저만치 떨어진 위치에 서있던 정위 이사가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시황제 폐하. 지금 조당에서 건의된 내용은 주나라의 분봉제를 일컫고 있사옵니다. 주나라의 분봉제는 이미 실패한 정치제도라는 것이 증명되었사옵니다. 분봉을 받은 같은 성의 자제는 곧 서로 멀어지게 되옵니다. 그들은 서로 다투어 심한 경우 원수가 될 수도 있사옵니다. 성이 다른 제후 또한 서로 비난하기 일쑤였사옵니다. 천자는 그들을 제지할 힘이 없어 혼란이 가중되었사옵니다. 주나라가 망한 것도 그 때문 이었다 사려 되옵나이다. 그러니 제후를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사려 되옵나이다.”

진왕이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지방을 군과 현으로 나누는 군현제를 실시함이 마땅하다고 사려 되옵나이다. 시황제 폐하.”

“군현제라?”

귀에 선 말이라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황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재설명을 요구했다.

“모든 지방을 군과 현으로 나누고 시황제 폐하께서 큰 공이 있다고 판단하시는 신하를 직접 임명하시어 그곳을 다스리도록 하고, 과가 생기면 그를 직접 불러들여 문책하심이 옳을 줄 아옵니다. 그들에게 후하게 상을 내리면 그들은 충성을 다할 것이옵나이다.”

새로이 점령한 영토를 등급에 따라 서로 다른 행정구역으로 나누고 중앙 정부가 직접 통치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제안이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시황제는 이사의 의견을 지지하며 말했다.

“천하가 전쟁으로 괴로움을 겪으며 편안한 날이 없었던 까닭은 제후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은 생각하도다. 지금 종묘에 힘입어 천하가 비로소 평정되었다. 그런데 또 제후의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것은 병란을 심는 것과 같도다. 이렇게 하고서 천하의 평안을 구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겠는가? 정위의 제안이 옳도다.”

시황제는 이사에게 소상한 시책을 마련하여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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