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도 떠나고 싶다는 대전

  김학용 주필  
 김학용 주필

인터넷에 보니 호남선 철도 개통일은 1914년 1월 11일이다. 며칠 후면 딱 100년이다. 호남선은 ‘큰밭’에 불과했던 촌락이 인구 150만의 대도시로 발전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대전(大田)을 탄생시킨 게 경부선이었다면 대도시로 발전시킨 것은 호남선이었다.

호남선이 아니었으면 대전은 경부선 상의 작은 여러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그쳤을 수도 있다. 대전은 경부선과 호남선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중추 도시가 되었다. 사람과 물자가 몰리면서 북적이는 현대 도시로 발전해왔다.

100년 만에 대전 떠나가는 호남선

그 호남선이 이제 대전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올해 말 오송~익산으로 연결되는 호남고속철도가 개통되면 호남선은 100년 만에 대전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대전은 그동안 누려온 영호남의 분기점의 지위를 완전히 잃게 된다.

그 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자명하다. 호남선 이용객 660만 명 중 29%인 190만 명이 서대전역을 이용한다. 하루 5000명이 넘는다. 이들이 찾지 않으면 서대전역과 주변은 더 썰렁해질 것이다. 상가 임대료도 인근 아파트 값도 더 떨어질 것이다. 서대전역 일대는 더 피폐해지며 슬럼화의 과정을 밟을 것이다.

서대전역의 운명이 이렇게 결정된 것은 2005년 7월이다. 민선3기 염홍철 대전시장 때다. 이미 오래 전에 엎질러진 물이다. 지금으로선 호남선을 서대전에 다시 갖다 붙여 되살릴 방법은 없다. 대전시에선 “KTX가 가끔이라도 서대전을 경유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현실성 없는 주문이다.

썰렁한 서대전역, 대전의 미래일 수도

혹여, 서대전역의 어두운 미래가 대전의 미래는 아닐까? 호남선과 작별을 고하는 갑오년 정초에도 불안감은 감출 수 없다. 대전에는 처지가 같은 ‘제2의 서대전역’들이 더 있다. 충남도청의 빈터와 흔들리는 대덕특구(과학벨트)가 그것이다.

옛 충남도청도 또 하나의 서대전역이다. 여기는 충남도청이 대전에 온 지 80년 만에 떠나가며 남긴 빈 공간이다.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은 경부 호남선과 함께 대전 발전의 양대 축이었다. 공동화 되던 대전 원도심을 떠받치던 마지막 기둥이었던 도청이 떠나간 지 1년이 넘었지만 대책조차 감감소식이다.

충남도청의 빈자리는 해결될 기미가 아직 없다. 최소한의 대책이라도 만들어지나 하고 기대했던 도청이전특별법도 물건너갔다. 대전시가 전문교육기관도 아닐진대 지금처럼 그 많은 강좌를 계속 진행할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도 안 된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사설학원의 밥그릇을 빼앗는 방법으로 원도심 살리기를 계속할 수는 없다.

80년 만에 대전 떠나간 충남도청

대전에 과학도시라는 이름을 붙여준 대덕특구(대덕연구단지)는 안전한가? 대구 광주 부산에도 특구가 생기고, 연구기관 분원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서 대덕특구는 ‘보통구’로 전락하고 있다.

과학벨트도 원안에서 크게 후퇴하면서 특구의 앞날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상민 의원은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을 유치해 세계적인 과학단지로 만들겠다는 과학벨트 당초 취지는 물건너갔기 때문에 과학벨트 수정안은 반쪽이 아니라 빈껍데기”라고 말한다.

야당 의원의 정치적 수사라고만 할 수는 없다. 대전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은 과학벨트 수정안도 좋은 것이라며 수정안에 찬성 박수를 보냈지만 이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최문기 장관조차 수정안보다 원안이 좋았다는 사실을 국회에서 실토한 바 있다.

  충북도의 항의로 호남고속철도 용역이 백지화되기도 했다. 충북도의회가 펴낸 '오송역 유치활동 보고서'의 일 부분.  
충북도의 항의로 호남고속철도 용역이 백지화되기도 했다. 충북도의회가 펴낸 '오송역 유치활동 보고서'의 일부분.


대전 출신 국회의장도 떠나겠다는 대전

대전의 호남선 상실은 교통도시로서의 위상을 잃는 걸 뜻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교통이 발달해도 도시철도가 갖는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진단한다. 환경문제를 해결할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고속철도라는 것이다. 호남선을 잃는 것은 도시 간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를 잃게 되는 것과 같다.

‘포구의 시대’ 강경읍은 쌀의 집산지였다. 강경장은 대구 평양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이었지만 철도교통에서 소외되면서 촌락은 쇠락하고 말았다. 공주는 철도 통과를 거부하고 도청을 빼앗기면서 아직도 옛 도시에 머물러 있다.

도시는 늘 성장만 하는 게 아니다. 인구가 줄고 경제가 활력을 잃으면 도시는 쇠락한다. 대전도 그럴 수 있다. 통계상으론 대전 인구가 늘고 있지만 힘깨나 있는 사람들은 다투어 세종시로 떠나고 있다. 대전이 국회의장까지 시켜준 강창희 의장조차 정치에서 물러나면 세종시로 이사하겠다고 말한다. 대전의 앞날을 어둡게 보기 때문일 것이다.

기로에 선 대전, 미래 비전 찾아야

대전은 지난 100년 동안 성장해왔다. 교통의 요충지로서, 충남도청의 소재지로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북적였다. 90년대에는 일부이긴 하지만 제3정부청사도 대전에 내려왔다. 그러나 대전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새로운 뭔가를 찾지 못한다면 대전의 앞날은 장담할 수 없다. 제2의 강경과 공주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대전은 새 꿈과 비전을 찾아야 한다. 대전시민 전체의 몫이지만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사람,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더 고민해야 한다.

2014년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다. 벌써 20년 넘게 선거를 해오면서 이제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다. 그러나 선거가 지역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다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충북 정치인들은 보여주었다.

대전과 충남이 빼앗긴 호남선은 충북(오송)이 가져갔다. 충북의 정치인들이 오송역 유치를 위해 벌였던 노력을 보면 그들의 승리는 마땅해 보인다. 인터넷에도 충북 지역 정치인들이 몇 년 간 펼쳤던 ‘호남선 유치활동 보고서’가 돌아다닌다. 사실상 ‘투쟁 보고서’다.

400쪽이 넘는 보고서는 대충 훑어보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충북은 유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도지사를 비롯해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시민단체 모두 정말 자기 일처럼 뛰고 또 뛰었다. 오송역 분기의 타당성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건의하고 설득하고 사정하고 때론 거칠게 항의도 하면서 결국 관철해냈다.

충북 정치인들이 가르쳐 주는 것

호남선을 빼앗기는 결정이 내려질 당시 이 지역 지도자들은 무얼 하고 있었나? 대전시장, 국회의원, 구청장, 대전시의원, 구의원들은 호남선 문제에 대해 어떤 노력을 했나? 2005년 7월1일자 내일신문은 정부의 오송역 분기 결정에 대한 시도별 반응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충북 ‘웃고’ - 대전 ‘담담’ - 충남 호남 ‘울고’>

대전은 뒤늦게 경쟁에 뛰어든 데다 거의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반응도 담담했을 것이다. 당시 염홍철 시장은 남의 얘기하듯 “아쉽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밥그릇만 찾아 선거 때마다 이당 저당 옮겨 다니고 선거 공신 챙기기에만 바쁜 정상배들에겐 호남선이 중요할 이유가 없다.

만에 하나, 대전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이 충북 정치인들처럼 뛰고 매달렸다면 어땠을까? 결과는 충북의 승리가 보여준다. 애초 오송안은 수요 측면이나 비용 측면에서 1순위가 아니었다. 수요에선대전, 비용에선 천안이 가장 유리했다. 충북의 노력과 정치력이 순위를 뒤집고 결국 오송역 분기를 쟁취한 것이다.

미래 100년 위해 '제2의 호남선' 찾아야

‘호남선’은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지만 반성하지 않으면 대전의 미래는 없다. ‘호남선 패배’는 10년이 다 돼가지만 지금이라도 철저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실패만 거듭될 것이다. ‘과학벨트 원안’을 사수하지 못한 것도 커다란 실패다.

올 지방선거에서 누굴 대전시장으로 뽑더라도 나와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만일 충북지사 같은 사람이 대전시장이 됐다면, 충북도의원 같은 사람들이 대전시의원이었다면 서대전역 주변 상인들은 지금처럼 암울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호남선’은 지방선거의 중요성을 일러주고 있다.

호남선은 '100년 친구' 대전에게 묻는다. “내가 당신을 떠나더라도 안녕할 수 있는가?” 우리가 고마움을 잊고 지낸 호남선이다. 이제라도 ‘호남선’을 통해 대전을, 우리 자신을 철저하게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제2의 호남선’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의 대전 100년을 위해서..

  오송역 분기는 눈으로 봐도 유리한 노선이 아니었다. 충북 도지사와 국회의원들은 이 노선을 가지고 충북의 미래를 열었다.  
오송역 분기는 눈으로 봐도 유리한 노선이 아니었다. 그러나 충북도지사, 국회의원, 도의원들은 이 노선을 가지고 충북의 미래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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