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새삼스럽게 국회의 권한을 들어보자면 법률제정권, 예산심의 확정권, 결산심사권이 있고, 국정감사‧조사권과 중요공무원 선임권과 임명동의권, 조약비준동의권 등이 있다. 그러나 현재 국회는 세월호와 함께 침몰된 민생과 경제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엄중한 권한을 부여받은 국회가 요즈음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고 있어 많은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넘어 분노까지 자아내고 있다.

가기천 수필가·전 서산부시장
5개월이 넘도록 단 한 건의 법률안도 처리하지 않자 ‘식물국회’, ‘불임(不姙)국회’, ‘방탄국회’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그러나 ‘식물’국회라는 말은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땅에 뿌리를 박고 있어 비록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비바람 견뎌내며 자라고 꽃피우며 열매를 맺는 식물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외견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국회가 어찌 환경과 조건을 탓하지 않고 나름 살아가는 식물과 어떻게 비유할 수 있을까?

‘불임’국회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다. 아기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부부들의 애타는 마음을 그런 곳에 붙일 수는 없다. 그나마 지난 26일 우선 상임위를 거친 90 여건의 법률안을 처리하겠다고 개회했던 본회의는 몇 분 만에 산회하고, 9월30일로 미뤄놓았다.

400개 피감기관 시간․비용 들여 자료준비 ‘헛일’

이런 가운데 정기국회의 ‘꽃’이라는 국정감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더구나 국정감사는 매년 9월에 20일 동안 실시하던 것을, 올해에는 8월과 10월 두 번으로 나눠서 실시하기로 하였으나 세월호특별법과 관련한 정쟁으로 8월 국감은 무산되었다. 이에 따라 당초 감사가 예정된 400곳 가까이 되는 피감기관들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자료를 준비하였으나 헛일이 되었으면서도 아무런 내색도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도 수 십 억 원의 세금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국정감사가 무엇인가? 국정감사는 헌법 제61조에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는 근거로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로 세부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국정감사는 고전적인 권력분립 이론 차원에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가 행정부와 사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수단의 하나이다.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감사대상기관이고, 국회 상임위에서 의결된 증인은 국감장에 나가야 한다.

국회의원이 자료를 요구하면 피감기관에서는 몇날 며칠 동안 밤을 지새워 준비하고, 심지어 트럭으로 운반하여야 할 만큼의 많은 자료를 제출한다. 한편으로는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에게 갖은 연을 대어 예상 질문 사항을 입수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하고, 피감 기관장들은 예행연습까지 하며 ‘매 맞을 준비’를 하는 경우도 있다.

국감을 앞두고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하여 언론에 제공하여 보도가 부쩍 늘어나는 때가 바로 이 무렵이다. 국감 때가 되면 언론에서는 돋보이는 의원을 골라 ‘오늘의 국감 스타’로 보도한다.
국회로써의 감시와 견제의 차원만이 아니라, 국회의원으로서도 ‘한 건’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올 국정감사 시간 부족해 내실 있는 감사되기 어려워

하지만 올해 국정감사가 제대로 실시될까 하는 의문이다. 우선, 시간적으로 가능할까 하는 문제이다. 국회의장은, 8월 국감이 무산되자 올해 국정감사는 10.1부터 20일 간 진행하기로 하고 26일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기로 했으나 그나마 무산되었다.

이러다 보니 감사대상 기관 선정과 자료제출 요구, 증인 채택 등 국감계획이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어 계획하고 있는 일정을 과연 지켜지겠는가 하는 궁금증을 갖게 한다. 산더미같이 쌓인 과제들을 풀어야하기 때문에 국정감사 일정마저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 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예산안을 먼저 처리하고 난 뒤에 연말국감이라도 실시하여야 한다고 하지만 감사결과를 예산안심의에 활용한다는 효용성 측면에서 볼 때도 적절치 못하다는 점을 덮을 수 없다.

다음은, 내실 있는 감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공무원들의 단단한 방패를 뚫을 수 있도록 예리하게 창을 갈아야 하는데, 과연 얼마나 준비를 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또한 국회의원 자신들은 반년 가까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처지에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무슨 낯으로 질문하고 추궁하며 때로는 ‘훈계’를 할 것인지 궁금증이 앞선다.

감사자는 보다 높은 도덕성, 성실성과 책임감으로 모범을 보여야 권위가 있고, 피감기관의 수긍과 승복을 받아낼 수 있을 만큼 더 고민하고 치열하게 준비해야 하는데 자칫 절차이고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은 아닐지 하는 우려도 빼놓을 수 없다.

시기 놓쳤어도 24시간 쪼개서라도 국정감사 진행해야

그러나 어쨌든 시기는 놓쳤어도 시간은 있다. 학창 시절, 방학이 끝나갈 무렵에서야 밤새워 부랴부랴 해낸 숙제가 동그라미 다섯 개를 받았던 경험도 있었으니까. 올해 국감이 다소 시기가 어긋났더라도 24시간을 쪼개어 몰아치기라도 해서 바짝 끈을 조여 실시한다면 다행이겠다. 그것이 주권을 맡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국회의 의무이고, 국민들이 그래도 국회를 믿어보고자 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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