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호 기고]

요즈음 사람들을 대하면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많이 듣는다. 흔히 민초라고 불리는 일반 사람들은 대통령의 거부권이 뭐고, 국회가 제출한 국회법 제98조23항의 개정안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세히 알려고 들지 않는다. 말 그대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세금으로 뜯기는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저간의 방송뉴스만 접하다보면, 그저 왜 대통령이 노기를 띠게 되었는지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오죽했으면 왜 대통령이 화가 치밀어 국회를 나무라게 되었는지, 아니나 다를까 여당 국회의원들이 일거에 대통령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복종하듯 납작 엎드렸는지를 두고 말이 무성하다. 거기에, 수적으로 밀리는 야당 국회의원들이 파란을 예고하는 것도 ‘그저 또 시작이구나’ 하는 정도다. 삐딱한 방송뉴스에 곧잘 기름 붓기를 좋아하는 종편은 이를 부채질하듯, 일부 독설가들을 앞세워, 한국정치에서 배신의 역사와 배신자의 말로를 파노라마처럼 엮어내며 대통령의 노기를 두둔한다.

도대체 대통령의 거부권이 뭐길래 입법기관이 모두 비상시국을 맞은 듯 안절부절하게 되는가? 대통령의 거부권은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에 대하여 대통령이 이의가 있을 때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부쳐 국회로 되돌려 보내서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민주주의를 하다보면 각자 입맛에 맞지 않아 법률을 만드는 입법부(국회)에서도 옥신각신하기 일쑤지만, 이를 집행하는 행정부 입장에서도 썩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부서든지 입장표명을 할 수 있다. 

청주시의회 ‘행정정보공개조례’ 등 단체장 맘에 안 들면 지방의회 조례 ‘재의요구’

24년째 접어드는 지방자치사를 돌이켜 보면 이러한 거부권이 수도 없이 많았다. 지방자치에서는 이를 거부권 대신 ‘재의요구’라고 하는데, 지방의회가 의결한 조례가 맘에 안 들면 단체장이 재의요구를 하며 돌려보낸다. 즉, 조례를 그대로 시행하기에는 문제가 있으니, 지방의회에서 재의결 해주십사 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방의회에서는 재심의를 하는데, 과반수 출석 및 출석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재의결하게 된다. 그래도 단체장이 걸고넘어지면 대법원에 제소되는 수도 많다.

대표적으로, 1991년 청주시의회에서 만든 ‘행정정보 공개 조례’는 시민들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청주시의회에서 제정하였지만, 청주시장은 ①근거가 될 상위법이 없는데다가 ②청주시에만 적용할 수 없으며 ③대통령령에 의해 행정기관의 행정정보를 허가제로 한 사무관리규정에도 위반되는 동시에 ④심지어 개인이나 단체 간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두 번에 걸쳐 재의와 취소를 요구하다가, 마침내 대법원에 최소소송을 제기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소송에서 대법원은 오히려 이러한 조례가 지방자치의 진일보라고 판단하여 이듬해 6월에 청주시의회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것이 모태가 되어 96년에 정부에서도 ‘정보공개법’을 제정하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열린사회를 만드는데 입법기관(지방의회)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사법부 60년사에 한국사회의 변화를 이끈 획기적 판례를 남긴 사법기관(대법원)의 위상에 대하여 재평가하게 된다.

그렇다면 행정절차의 수순에 불과할 뿐인 거부권(재의 요구)이 메르스나 경기침체보다도 더 독이 오른 이유는 뭘까? 아무리 보아도 이번에 문제가 된 국회법 제98조의23항만 가지고는 독이 오를만한 건더기가 없어 보인다. 내용을 보면, 국회에서 만든 법률 내용에 대통령령ㆍ총리령ㆍ부령이 부합하지 않으면 그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그 조치과정을 국회에 보고하라고 하던 것을, 개정안에서는 국회가 요청한대로 처리하여 보고하라는 식이다. 간단하지만, 내용만 봐도 과거보다 국회와 법률의 위상이 제고되는 면은 있다.

대한민국 제대로 된 삼권분립국가인가?

이번 사태를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 이번의 거부권은 무엇보다 세월호 특별법(입법부)과 그 시행령(행정부)간의 충돌과 연관이 있다. 요약하자면, 특별법에서는 진상조사특별위원회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하자는 측인데, 시행령에서는 흐지부지되는 식으로, 부부지간이나 다름없는 법령이 엇박자로 가는 꼴이다.

둘째, 과연 현재의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삼권분립국가인가를 묻고 싶다. 법령을 조정해야 할 여야정치가 여당우세의 당청정치로 그동안 기울어왔지만, 급기야 청와대정치를 확인시켜준 꼴이다. 맘에 안 드는 국회를 해산시킬 수는 없고, 대신 국민들로 하여금 국회를 욕보이게 한다. 이는 같은 선출직이면서 큰 선출직이 작은 선출직을 길들이는 방식이다. 큰 선출직은 유권자를 위해 일하는데(민생 관련 법안 등의 논리로), 작은 선출직들은 당리당략에 치우쳐있다며 유권자의 매도대상으로 삼는다. 결국엔 선출직 정치권 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가중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셋째, 하수상한 시류 속에 사태의 본질을 흐리며 국민정서를 이반시키는 SNS 공작이 수상쩍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할 때, 난데없이 SNS를 통해 세월호로 숨진 이들에게 의사자를 요구하고 이들에 대한 대우가 보훈대상자들을 능가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려 국민들이 세월호 자체를 혐오하게 만들 듯 한다. 또한 메르스 사태의 위급함을 일찍 간파하여 방역의 일등공신인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하여, 뜬금없이 SNS를 통해 ‘박원순 시장 서울대 입학 이후 학력 몽땅 거짓말 보기’를 퍼뜨려, 메르스와 학력사기를 말장난 치도록 유도한다.

이번에도 SNS를 통해 메르스 광풍 속에 국회의원 연금법안이 통과되었다고 아우성이다. 그 내용은 국회의원들이 죽을 때까지 매월 120만원씩 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나라를 지킨 보훈대상자의 월 9만원보다 월등히 많음과 독도지킴이 예산 168억 원을 깎아 만들었음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국회사무처가 나서 이 같은 내용이 허위사실이라며 법적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사실여부를 떠나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지도 못하면서, 일반인이 매월 30만원씩 30년을 부어야 타먹을 수 있는 연금액을 국민의 통장에서 빼먹는다는데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 같다.

이런 사실이 또다시 유포되는 저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20여세의 실수투성이 지방자치에 비해, 70세를 바라보는 중앙정치는 완숙하리라 믿었다. 그래서 24세 약관의 지방자치가 걸핏하면 잘못한다고 하여 예전의 중앙정치로 돌아가자는 여론선전에도 꼼짝 못하고... 그런데 결국 중앙정치도 믿을 것은 왕조정치였던가? 수천 년의 왕조정치 슬하에 길들여진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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