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6> 두려움, 정신신경증의 시초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모든 일에 크고 작은 두려움을 갖고 있는데, 즐길 수 있는 두려움과 정신병적인 고질적 두려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우리가 두렵다고 하면서도 그 두려움을 즐기는 경우다. 공포영화를 보거나 스릴 넘치는 위험한 번지점프나 놀이기구에서 고함을 지르거나, 말도 안 통하는 낯선 외국을 혼자 여행하는 경우 등은 두려움 속에서도 성취감의 즐거움을 느끼는 정상적인 모든 이들의 경우이다.

보편적 두려움은 반대급부적으로 두려움의 성취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를 떠나 사회진출을 하거나 조그만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 출산을 앞둔 엄마인 경우, 용기를 내어 사회의 진실을 외칠 때 우리는 무언가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지만 동시에 호기심, 기대감, 설렘 그리고 열정이 뒤섞여 성취감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는 또 다른 두려움은 정신신경증이 있거나, 없더라도 날 때부터 심약(心弱)한 정신을 갖고 있어 대인 기피나 폐쇄적 삶을 고집하는 고질적이고 정신병적 두려움이다.

이런 고질적 두려움은 예술가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예술가들은 가끔 영혼 속에 깃들어 있는, 무언지 모를 터질 것 같은 창조력이 억압돼 있다가 자신의 천재적 예술 능력을 통하여 당대의 사회적 현상에 앞서 표출시키곤 한다.

예를 들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현대인의 단조로운 반복적인 삶과 무기력으로 황폐해져 가는 정신 변화를 표출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에르바르트 뭉크, 르네 마그리트 등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사회의 불합리하거나 미래 인간 삶의 정신적 변화의 두려움과 고통을 미리 예견하고, 그림이라는 천재적 예술로 자신의 내적 두려움을 외적 성취감으로 바꾸고자 노력하였다.

절규 (1893년. 화가, 에르바르트 뭉크)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는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읜 것을 필두로, 누이, 아버지 등 가족을 차례로 잃으면서 평생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다. 스스로를 “요람에서부터 죽음을 안 사람”이라고 불렀으며, 그가 자신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림이었다.

심리적이고 감성적인 주제를 강렬히 다룸으로써 보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감정을 자아내게 하는 그의 기법은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1893년 그가 그린 그림 ‘절규’는 인간 정신의 어두운 심연에 대한 탐구가 시작됐던 19세기 말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실존의 고통을 형상화한 초상이다.

뭉크는 끊임없이 물결치는 선을 사용하여 화면안의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우리 시선을 옭아맨다. 기묘한 일출이 격렬한 색채로 극적이고 고통스러우며, 심지어 머리와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삶이 복잡해진 현대인의 점차 피폐해지는 정신세계, 고뇌, 정신착란의 발작이 느껴진다. 그는 1908년 신경쇄약에 걸린 후 16년간 많은 작품생활을 하였고, 사후 자신의 모든 그림과 재산을 오슬로 시에 기증하였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네덜란드 쉰데르트에서 태어나 16살에 헤이그의 구필화랑에서 동생 태오와 그림 딜러로 근무 중 매일 수많은 화가들의 다양한 그림을 접하면서 예술적 감각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아를의 정신병원 (1889년. 화가. 빈센트 반 고흐)

1877년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고, 1886년 벨기에 안트 베르펜 미술학교에서 잠시 미술을 공부했으나 점차 자신만의 독특한 붓놀림으로 자연의 형태와 색체를 전달하는 새로운 미술화풍을 익혀갔다.

이후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이주하여 사망할 때까지 900여점을 그렸고, 유명 작품으로는 해바라기 연작, 별이 빛나는 밤,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정신병원의 정원 등이 있다. 이중 아를의 ‘붉은 포도밭’ 단 한 점만이 팔리는 등 당시 무명생활로 인한 정신병과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같이 지내던 고갱과 1888년 말다툼 후 극도로 예민해진 고흐는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자르고,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인생의 마지막 1년을 보냈다. 1890년 7월27일 반 고흐는 들판으로 나가 가슴에 총을 쐈고, 37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2014년 기준으로 세상에서 제일 비싼 그림 100편 중 그의 작품 7편이 포함되어 있음은 아이러니하다.

벨기에 태생인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초현실주의 작가다. 그의 작품에는 고정관념을 깨는 공포와 위기감, 신비주의적 환상이 어우러져 있다.

1953년 그림 ‘콜콘드’에는 중산모와 짙은 회색 양복을 입은 중년의 작은 남성들이 변함없는 똑 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붉은색 지붕의 주택가 주위를 빛줄기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다. 정체성의 상실과 일상의 단조로운 진부함으로 고통 받는 20세기 인간들의 나태하고 지루한, 퇴락되어가는 정신세계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골콘드. (1953년. 화가. 르네 마그리트)

 
이들은 모두 다소의 정신적 장애나 무미건조하고 단조롭게 변해가는 사회의 정서적 변화 여건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끊임없이 샘솟는 정신 내면의 천재성과 미래에 닥칠 불안과 두려움을 강렬한 예술적 성취감으로 승화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모든 현대인의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정신세계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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