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115>

지난주 대구지방경찰청이 급식업체 선정 등의 대가로 영양사와 학교운영위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급식 위탁업체 대표 등 30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업체선정과 검수편의 대가로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고 입찰 때 다른 업체 명의를 빌리거나 가족, 지인, 회사 직원의 이름으로 위장업체를 설립해 동시 투찰하는 방법으로 900여 회에 걸쳐 200억 원 상당을 낙찰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급식비리는 올해 초 경남을 시작으로 경북, 부산, 경기 등 전국적으로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주변인 명의로 여러 업체를 차려 놓고 낙찰률을 높이고 선정 대가로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는 행위는 업자들 사이의 비슷한 영업방식이기 때문에 전국적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급식 납품업자들 사이에서는 전국 어디든 털면 다 걸릴 것이라는 자괴도 있다.

경찰 지난주 대전 급식납품 '빅 3'업체 압수 수색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우리사회는 먹거리와 관련한 비리에 특히 분노하며 아이들 급식문제에 대해서는 전 국민적 공분을 살 정도로 예민하다. 위장업체 입찰과 업자-학교 관계자들 사이의 부적절한 거래 등 그동안 의혹을 넘어 구체적 설까지 나돌았지만 내사수준에 머물던 대전경찰이 최근 '빅 3'로 불리는 업체를 압수 수색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겠다.

타 지역 경찰들이 급식비리 수사에 열을 올리는데 대전경찰만 뒷짐 지고 있기도, 변죽만 울려 놓고 별 문제 없다고 덮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대전시교육청이 지난달부터 급식비리 의혹을 감사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뤄진 경찰의 압수 수색은 용두사미가 될 공산이 큰 교육청 감사와의 선긋기와 함께 엄정수사 의지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급식문제는 폐쇄적인 과정과 정보공개가 부족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들다. 현행 학교급식은 나라장터(조달청)와 학교급식 전자조달시스템(eaT시스템)으로 이뤄지는데 교육부가 납품비리를 막겠다고 도입한 eaT시스템이 중복 입찰과 담합 등 비리 온상이 되고 있다. 올해 초 대전지역 100여개 납품업체들이 eaT시스템에 대한 불만으로 투찰을 거부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압수 수색 받은 3개 업체가 이때 식재료 납품을 싹쓸이 했다고 한다.

모든 입찰은 공개경쟁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 학교가 여전히 업체지명경쟁방식을 고집하는 것도 비리요인으로 작용한다. 유치원을 포함해 대전지역 급식학교는 302개인데 이중 41개교는 업체지명경쟁을 하고 있다. 학교가 특정업체를 지명해 입찰에 참여시키는 것인데 이번에 문제가 된 3개 업체를 중심으로 지명경쟁이 이뤄진다는 게 업계의 불만이다. 퇴직을 앞둔 교장이 1년치 지명경쟁계약을 체결하고 나가는 일도 있다니 그 배경이 의심스럽다.

업체지명경쟁이니 수의계약, 금액 쪼개기 같은 것들은 타 지역 사례에서 이미 다 나왔다. 학교와 업체들 사이에 담합이나 특혜가 이뤄지니 구매비용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하고 같은 돈을 내고도 우리 아이들은 점점 더 형편없는 식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복날 급식으로 영계백숙 반 마리를 내놓던 학교가 언젠가부터 닭다리 하나씩을 주다가 올해부터는 닭죽으로 메뉴가 바뀌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불량 급식 논란을 빚은 대전 봉산초등학교 식판 모습.
학교와 업체 간 유착 고리 어디까지 이어졌는지 찾아내야

급식비리의 핵심은 학교와 업체 간 유착 고리가 어디까지 이어졌는지 찾아내는 것이다. 지난해 일부 영양사와 업체 관계자들이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는 소문인데 이 정도면 유착을 넘어 한통속이라는 의심이 든다. 전교조대전지부는 학교와 업체뿐 아니라 교육청까지 비리 사슬에 얽혀 있다고 주장하는데 경찰 수사가 신뢰를 얻으려면 이 부분을 명쾌하게 밝혀내야 한다.

급식비리 문제를 수차례 지적해온 전교조가 내일(19일) 급식업체 간 투찰 방해 등 짬짜미 의혹, 간접납품업체들의 갑질 횡포, 급식업체와 일부 학교 영양(교)사와의 부적절한 거래 의혹 등을 폭로하겠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야 할 식판 뒤로 얼마나 많은 부정과 비리가 숨어있을지 걱정과 함께 부끄러움이 앞선다.

급식비리 수사에 칼을 빼든 경찰을 보는 눈들이 많다. 칼만 겨눠도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뽑혀 나오는 급식비리가 대전에서는 없으면 좋겠지만 드러난 정황으로도 가볍지는 않은 것 같다. 시민의 관심은 비리업체가 어디인지보다 경찰 수사로 학교급식이 투명해지고 우리 아이들의 식단이 풍성해지는 것이다. 경찰이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것인지, 모기를 보고 칼을 뺀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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