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사)대전교육연구소장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이 죄 아닌 죄지, 뭐.”
수능 점수가 공개되던 날, 어느 교사가 툭 던진 말이다. 점수가 기대에 못 미친 학생들의 낙담을 생각하며 답답한 마음에서 던진 말이리라, 지난 삼 년간 보충수업과 학원수업과 야간자율학습 등으로 여가는 물론이고 잠마저 반납했던 고통스런 나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다. 과연 우리 아이들은 이 나라에 태어난 죄로 입시라는 이 고통의 언덕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하는가?

성광진 (사)대전교육연구소장
1994년 처음 수능이 도입되었을 때는 그때까지의 학력고사가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는 데 실패했다며, 창조적이고 다양한 사고를 가진 인재를 뽑을 수 있도록 교과서를 탈피하여 문제를 출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22년이 지났다.

과연 수능은 제 역할을 다 했을까? 결국 사교육 시장만 키워놓은 꼴만 되었다. 교과서 밖의 창의적 사고는 학원에서 준비해야 했고, 학교는 학원을 따라가려다 보니 정규수업 외에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으로 학생들을 들볶아댔다. 그래서 입시 외에는 써먹을 곳을 찾지 못할 수준 높은 수학과 영어와 국어에 매달려야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국·영·수가 얼마나 힘을 실어주는지 의문이다. 학창시절 온힘을 다해 공부했던 내용들은 인생에서 별달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만 그 점수가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그 점수가 어떤 대학에 진학하느냐를 갈랐기 때문이다.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지만 아직도 입시제도는 요지부동이다. 수능은 학력고사보다 더 효율적이지도 않았고 국·영·수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기만 해서 과거보다 사교육에 더욱 힘을 쏟는 상황이다.

가계부채 증가요인 사교육비와 대학교 수업료 큰 몫 차지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명목)는 24만4천 원으로, 사교육비 총 규모는 약 17조 8천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비용에는 기타 교육비(방과후학교비, EBS교재비, 어학연수비 등)와 영·유아 사교육비도 포함하면 최소 20조 원은 넘을 것으로 교육단체들은 추정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KDI에서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명목지출 교육부분 세부항목'을 재분석하여 2014년의 사교육 시장 규모를 32조 8천억 원으로 추정한 바 있다.

결국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요인 가운데 큰 몫을 하는 것이 사교육비와 대학교 수업료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수능을 없애는 것을 고려해야 해야 한다. 학생들은 학교의 내신을 높이기 위해 학교 공부도 해야 하고, 수능에 맞춰 따로 학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중으로 고통이 따른다. 학교에서도 교육과정에 도달해야 할 학습수준과는 다른 수능에 맞춰야하기 때문에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라는 편법을 만들어야 했다.

학교 학습활동 대학 입학 기준 삼을 때 학력 격차 사라질 것

그렇다면 수능을 없애고 학교 성적만으로 학생을 판별하여 입학시키는 방안을 추진하면 어떨까? 물론 나타날 심각한 여러 문제가 있다. 우선 고등학교 간 학력격차를 문제될 것이다.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특성화고 등 학교별 학력 격차가 현실적으로 크다. 도시와 농촌 간에 나타나는 격차는 말할 것도 없고, 도시에서도 주거지역에 따라 나타나는 학력 격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학력 격차 때문에 학교 성적으로 입학의 기준을 삼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거꾸로 놓고 보자면 학교에서의 학습과 활동을 주요 평가의 대상으로 삼아 대학 입학의 기준을 삼을 때 고질적인 학력 격차가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라도 내신 성적을 받기 유리한 학교에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생 모집이 힘들던 일부 특성화고나 소외지역 학교도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교육계가 바라왔던 고등학교의 학력 수준을 고르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이다. 거주지역이나 생활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학교가 고른 학력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교육이 바라는 목표다. 

학교 내 경쟁이 지금보다 치열해질 수 있지만 내신과 수능의 이중적인 구조 때문에 겹으로 경쟁에 몰아넣는 지금의 대입제도보다는 더 합리적이고 부담이 적다. 수능이 없다면 중등학교에서 야자와 보충수업으로 일컬어지는 파행적인 교육과정이 정상화될 수 있다. 상당수의 대학이 수시모집에서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없애고 오로지 내신 성적과 면접만으로 입학전형을 하고 있다는 점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일부 학부모의 금품을 앞세운 부당한 학교 개입이 어려운 시대로 변하고 있다. 학교 밖 외부 대회 수상 실적 등을 비교과 내신점수에서 차단함으로써 내신의 공정성이 살아나고 있다. 철저한 감시와 규제로 내신에 비리가 끼어들 틈새를 주지 않으면 된다. 더 중요한 점은 고액 과외나 학원 수강으로 점수를 높이기 유리한 수능을 없애면 시들하던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점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대학의 이름보다는 어떤 능력을 갖추었나가 인재를 판별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사회의 발전을 위해 정말로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이 죄가 아니라 기쁨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책임이 지금 어른들에게 있다. 내년으로 성큼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입시 개혁에 대해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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