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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되지 않을 권리

[임연희의 미디어창] <126>

임연희 기자2017.01.12 09:42:31

프랑스 직장인들은 새해부터 퇴근 이후 업무 이메일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 1월 1일부터 발효된 이 법은 직원 50명 이상 사업장으로 하여금 근무시간 외에 이메일을 보내거나 받지 않을 권리를 두고 직원들과 협상하고 이를 문서로 명시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직장인들은 업무시간이 아니면 이메일 일체를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지난 2000년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채택한 프랑스는 초과근무에 대해 최소 10% 이상의 수당을 주도록 했지만 퇴근 후 통신기기를 이용한 업무 커뮤니케이션까지 연장근로로 인정해 수당을 지급하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이로 인한 직장인들의 스트레스와 불면증이 심해지자 정부가 직접 나서 “회사의 전화·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법에 명시해 당당하게 거부하도록” 한 것이다.

퇴근 후 업무 전화나 이메일, 메신저 받지 않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인데 근로자가 퇴근 후 업무 관련 전화나 이메일, 메신저 메시지 등을 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통신기술의 발달과 스마트기기 보급으로 퇴근 후에도 실질적 업무가 연장되면서 각종 문제가 발생하자 새롭게 부각된 권리다. 프랑스와 독일의 일부 대기업은 저녁이나 주말 직원의 이메일 접속을 차단하거나 휴가기간 자동 전송 메일이 삭제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일찌감치 시작했다.

스마트폰 보급에 따라 국민 누구나가 ‘손안의 컴퓨터’를 갖게 돼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과 정보검색이 가능해졌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하다. 단체 채팅창에서 나간 학생을 계속 초대해 괴롭히는 ‘카톡 감옥’, 피해 학생만 남겨두고 모두 퇴장하는 ‘방폭’ 같은 것들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도 있다. 학교폭력은 줄어들지만 학생들 사이에선 카카오톡을 활용한 신종 왕따가 급증한다니 걱정이다.

직장인들도 스마트폰 메신저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와 강박증을 호소한다.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는 물론이고 퇴근 후나 휴일에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며 메신저 내용을 확인하는 일명 ‘메신저 증후군’이다.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 국회의원들도 ‘카톡 감옥’에 갇혔었다.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놓고 퇴장하는 의원들을 거듭거듭 초대하는 바람에 어떤 의원들은 아예 전화번호를 바꾸기도 했다.

스마트기기 통해 1주일 평균 11.3시간 초과근무

우리나라 직장인의 86%는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으로 업무 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고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스마트기기를 통해 1주일에 평균 11.3시간을 초과근무 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월화수목금금금’도 모자라 ‘24시간 메신저 감옥’이 된 것 같다. 일과 휴식이 구분되지 않는 장시간 업무는 효율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대부분 직장인들은 퇴근 후 회사 업무로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통신업체가 밤 10시 이후 카톡 등을 통한 업무지시 금지 지침을 내렸으며 퇴근시간이 되면 사무실의 PC나 조명을 끄는 ‘셧다운제’를 운영하는 기업도 있다. 근로시간 외에 통신수단을 이용한 업무지시를 금지하는 일명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도 발의됐다.  출퇴근 시간만 있을 뿐 근로시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근로자들의 사생활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 공감이 간다.

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유럽처럼 근무시간 이외의 연락과 업무처리는 ‘초과근무’라는 인식이 확대되지 않는 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톡’과 이메일 공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연결된 디지털 세상에서 진정한 퇴근은 회사와의 연결을 끊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거나 취미·문화생활을 하는 것이다. 한 대권주자가 공약했던 ‘저녁이 있는 삶’은 결국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실현될 때나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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