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 단편소설] 1. 세월호 3년의 세월, 어둠 저편만 응시

세월호 객실에 홀로 버려진 아이, 이광희 作

“어여들 모여 봐요.”
마을 가운데쯤에 있는 회관에서 아침 회의가 열렸다. 마을사람 전원이 아홉 명 이지만 일곱 명만 모였다. 나이가 제일 어린 혁기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아버지 재곤씨만 참석했다. 그리고 몸이 좋지 않아 조금만 더 누워있겠다던 다연이도 불참을 일찌감치 통지했던 터라 결석이 용인되었다.
회의의 소집은 마을 동장을 맡고 있는 양 선생님이 했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스피커로 마을 사람들에게 생방송을 했다.

“아 아. 마이크 시험 중.....
동민여러분! 오늘은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드는 날입니다요. 예감이 아주 좋아요. 그래서 회의를 소집하고자 합니다. 동민여러분께서는 한분도 빠짐없이 마을 회관에 참석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걸걸한 동장님의 목소리가 여과 없이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예감이 좋다고 마을 회의를 소집한다는 것은 동장의 월권이었다. 하지만 늘 아무 일도 없이 무료함속에서 살던 이들에게 새로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예감은 흥미로운 것이었다. 아울러 회의를 소집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이보다 더 하찮은 일로도 마을 회의가 소집된 적이 많았던 탓에 이정도면 모일만 하다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다.

세월호마을, 이광희 作

마을은 미로처럼 뒤엉킨 골목을 따라 각자의 집이 있는 형태였다. 집들은 숨도 쉬기 어려울 만큼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집주인이 집을 비운상태라 여덟 집만 흩어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게다가 그 집들을 연결하는 통신수단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동장님이 사용하는 스피커를 통해 의사가 전달될 뿐이었다. 
늘 검푸른 빛이 암울하게 짓누르며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그 빛은 무겁고 차가웠으며 세월보다 더 질겨보였다.

그나마 사람들의 가슴속에 숨어있는 희망의 불씨가 희미하게 각자의 집을 밝히고 있었다. 얼굴빛을 통해 발산되는 그 빛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 마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희한할 정도로 조용했다. 장마당을 오가는 사람들의 소리는 물론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쥐죽은 듯한 고요함만 천근의 무게로 마을을 짓누르고 있었다.   
따라서 예감만으로도 회의소집이 가능했다. 아니 어떤 작은 일이라도 있으면 모일 구실을 찾았다. 그것이 아침회의의 목적이었다.

아침회의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동안은 각자의 생활에만 전념했다. 전념했다기보다 각자 어둡고 답답한 공간에서 혼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냥 각자만 있도록 설계된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누가 옆에 있는지 알아보지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많은 시간이 지났을 때 동장을 맡고 있는 양 선생님이 마을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하나 둘씩 만나게 되어 각기 혼자만 사는 마을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어울린 마을 주민들이 모두 아홉 명이었다.

이 가운데도 권씨 아저씨와 그의 아들인 혁기는 가장 늦게 회의에 합류했다.
그들은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외딴집에 살기에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곳에 사람이 산다는 것조차 몰랐다.

국화 한 송이, 이광희 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동장님이 마을을 둘러보다 낡은 가구로 막힌 골목을 발견 하고 그 길을 따라가다 외딴집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권씨 아저씨와 혁기를 만났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늘 검푸른 빛으로 어두컴컴했으므로 집이 있는 것조차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뒤늦게 회의에 참석했다.

처음 권씨 아저씨는 동장님을 무슨 도깨비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래서인지 회의가 몇 차례 열린 지금까지도 익숙하지 않아 낯설어했다. 그는 늘 가장 늦게 와서 가장 일찍 가는 스타일이었다.

아침 회의는 조금 이른 탓에 모두 눈을 부비며 아직 졸음에서 들깬 얼굴이었다. 모두 도란도란 둘러앉았다. 회관이 좁아 넉넉하게 앉을 수는 없었다. 그냥 다닥다닥 붙어 앉아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회의를 소집한 동장님이었다. 그는 버릇처럼 출석을 부르듯 마을 주민들을 하나하나 둘러본 다음 입을 열었다.

“에-. 오늘 아침부터 회의를 소집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에, 간밤의 꿈자리 때문입니다.”
동장님은 다시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지난 3년은 참으로 지루하다보니, 에, 모든 것이 나태하게만 돌아가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글쎄 어제 밤 꿈에 말이요. 에, 하늘에서 환한 빛이 쏟아지더라고요.”

동장님은 자신의 말에 신이 난 모양이었다. 얼굴이 환하게 밝아오더니 양손을 위로 치켜들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말을 이었다.
“바로 저기였어요. 바로 저기. 하늘에서 글쎄 눈부신 빛이 쏟아지더라니 까요?”
그는 어둠으로 가려진 높을 천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을회관, 이광희 作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관심이 없어 보였다. 장난꾸러기 영언이는 하품을 하며 그저 멍한 모습으로 동장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려니 하며 이야기를 흘려듣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의 얼굴빛도 희미하게 까무락 거렸다. 처음에 이곳에 모였을 때는 제법 각자의 얼굴빛이 밝았는데 지금은 그때에 비해 많이 흐려져 있었다. 겨우 명맥만을 이어가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 빛 사이로 하늘이 활짝 열리더니 글쎄......뭐랄까. 말로 다할 수 없는데. 에, 아무튼 불덩어리 같은 빛이 우리 마을 위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는 거지요.”
동장님은 횡설수설하며 간밤의 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설깬 잠에 지루함이 겹쳐 하품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때 모서리에 앉아 있던 또치쌤이 말을 거들었다. 그는 짧은 머리카락이 고슴도치를 닮았다고 해서 아이들이 또치쌤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동장님 말씀은 무언가 좋은 징조가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지요. 하늘이 열리고 그곳으로 밝은 기운이 들어와 우리가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또치샘이 졸고 있던 아이들을 깨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향’이란 말에 힘주어 말했다. 순간 또치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오다 이내 시들해졌다.

“아 맞아요. 또치쌤 말씀이 맞아요. 그런 얘깁니다.”
동장님이 말을 덧붙였다. 또치쌤의 조언에 아이들이 눈을 떴다. 그들은 고향이란 단어에 필이 꽂혀 까만 눈을 반짝거렸다. 권씨 아저씨와 영애 아주머니도 기대감에 젖은 눈빛으로 동장님을 주시했다.
“꿈이었지만, 에, 정말 눈앞에 펼쳐진 생생한 현실 같았어요.”

그는 소리를 죽이며 몸동작을 줄였다. 크게 올려들었던 손을 아래로 내리며 차분하게 말했다.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궁금증이 일어나는 눈빛으로 그를 더욱 예리하게 주시했다.
“그런데 그게 뭐였어요?”

동장님 가까이에 앉은 은희가 또록또록한 소리로 물었다. 
“글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새 같기도 했고 천사 같기도 했어.”
“천사요?”

눈을 동그랗게 뜬 현호가 되물었다.
“응 천사. 그런데 말이야 날개는 못 봤어. 그래 없었어. 머리에 큼직한 불덩어리를 달고 있었지.”
날개가 없다는 것과 머리에 불덩어리를 달고 있다는 말에 아이들의 실망감이 교차했다.
“그럼 천사가 아닌 모양이네요.”
은희가 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영언이가 되물었다. 그들은 그렇게 묻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사실 그동안 물을 일도 없었다. 고요만 답답할 만큼 지루하게 고여 있었기에 질문이란 것 자체가 생소할 지경이었다. 그냥 일방적으로 말하면 듣고 또 누군가가 말하면 듣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회의였다. 물론 동장님의 경험담 들은 것이 전부였다.

매일 아침 학교 정문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아이들의 등굣길을 안내했던 얘기며 학교 뒤편 텃밭에 야채를 가꾸어 아이들과 나누어 먹었던 이야기. 뭐 이런 것들이 대부분 이었다.
그것을 경청했다고 표현하면 맞을지 모르지만 무의미하게 들었다. 그러다보니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동장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한명인줄 알았는데 점점 수가 많아지더니 여러 명이 한꺼번에 내려오더군요.”
동장님은 자신의 이야기에 신이 났다.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그래서 나도 손을 마구 흔들었지. 얼마나 반갑든지.”

동장님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반갑죠. 우리가 이곳에 있은 지가 얼마인데.”
또치쌤이 말을 받았다.
“벌써 3년이잖아요. 3년.”

또치쌤은 어둠저편을 응시하며 눈만 끔벅거렸다. 주먹을 다부지게 쥐었다. 이들이 이 마을에 들어온 지 벌써 3년이 지났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지만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돌아서면 한해가 지나는 것이 세월이라고는 하지만 이 마을에서의 세월은 그렇지 않았다. 더욱이 이곳에 있는 주민들에게 세월은 참으로 지루한 나날들이었다.

컴퓨터도 없고 전화기도 없고 그 흔한 휴대폰도 없는 곳이었다. 오로지 검푸른 어둠과 답답함 그리고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천근의 무게만 마을을 사로잡고 있었다.
“모두 우리를 잊었을 거야. 벌써 3년이 지났는데 기억이나 하겠어. 우리 반 아이들도 대학생이 됐겠네. 폼도 잡고..... 그런데 우린 언제 교복을 벗어.”

아이들이 남긴 단원고 교복, 이광희 作
영언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그는 운동을 좋아하던 터라 잠시도 앉아 있으면 좀이 쑤셨다. 그래서 회의를 하는 동안에도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질 못했다. 서서 움직이거나 벽에 기대어 말을 거들었다.
“그럼 친구들은 대학에 갔겠지. 폼잡고 다니면서 여자 친구도 사귀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심기가 편치 않았다. 모두가 다를 것이 없었다. 답답한 일상만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우린 뭐야. 우린 뭐냐고요.”

세월호 골목, 이광희 作

영언이가 손바닥으로 회관 벽을 치며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모두 그렇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가 던진 말에 책임을 지고 대답해줄 의무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영언이도 그것을 원하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답답했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우리는 수학여행을 간다고 해서 기분이 들떠있었잖아. 그런데 왜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거야. 나는 정말 그 이유를 모르겠어.”

영언이가 속을 삭이지 못해 벽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말했다. 옆에 앉아있던 또치쌤이 일어나 영언이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멍하게 각기 다른 곳을 응시하며 앉아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어요. 동장님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언이가 동장님을 보며 물었다. 그의 말투는 다분히 도전적이었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모두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나도 그날 들뜬 기분에 우리 반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먼저 잠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깨어나 보니 아무도 없었어요. 그냥 나 혼자만 빈방에 남아 있었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슬퍼지더라고요. 왜 나만 남겨두고 모두 어디로 갔는지.....”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던 은희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큰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나도 그래. 깜빡 졸았는데 모두 바람처럼 사라져버렸어. 바람처럼…….”
현호가 말을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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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디트뉴스24 사장·소설가
이 단편소설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9명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허구로 재구성했다.

개인적으로 미수습자 9명을 알지 못하지만 그 아픔을 그들의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정말 간절히, 간절히 9명 모두가 서로 손잡고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왔으면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나이에 세월호를 타고 먼저간 조은화양, 허다윤양, 박영인군, 박현철군과 고창석 선생님, 양승진 선생님 그리고 이영숙씨, 권재근씨와 그의 아들 혁규군에게 바친다.

이광희 소설가는 지난 1997년 구인환 선생과 윤병로 선생의 추천으로 천료되었으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붉은새> 상·하, <청동물고기> 1·2·3권, <소산등>, <문화재가 보여요>, <충청혼맥> 등이 있다. 현재는 본보에 연재소설 <진시황과 여>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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