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목록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새롭고 진실한 의학의 길

[이승구 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43>기록의 중요성과 고대 의학서들

이승구2017.06.26 10:44:17

▲이승구 선병원재단 국제의료원장 겸 정형외과 과장.

고대 우리나라 기록문화의 전통은 자랑할 만하다. 삼국시대의 역사 중 고구려에는 유기(遺記)가, 백제에는 고흥의 서기(書記)가, 신라에는 거칠부의 국사(國史)와 최치원의 통일신라 기록서가, 고려에는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 때는 왕의 일기인 일성록(日省錄), 승정원일기, 왜구 침략에 대한 국방 기록인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조선왕조실록(實錄) 등이 있었다. 

권수로는 중국의 대명(大明)실록이나 청(靑)실록에 견줄만한 세계 최고 수준의 편년체(編年體) 역사서였다.

다만 이중에서 백성들의 역병, 질병,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 같은 의료 사안 등 우리 백성들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는 기록은 극히 적고 찾을 수가 없어 아쉬움이 크다.

사회의 모든 새로운 발단에는 해당 분야 선각자들의 끊임없는 의구심과 탐구력, 그리고 개인의 천재성과 추진력이 있다. 

그러나 고대 의학은 대부분 종교적 힘에 덧붙여진 민간요법들이다. 그 무모하고 견고한 틀을 깨부수고 새로운 발전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새로운 문물을 일단 부정하거나 배척하고 보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오랜 기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기원전 1550년 경 이집트의 신관(神官) 문자체로 쓰인 에베루스 파피루스(Eberus Papyrus) 교본의 일부. 이 세계 최초의 교본에는 760가지가 넘는 치료법과 혈액 순환계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의학 교육의 발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세 시대의 의학은 무지하면서도 확고한 종교적 신뢰를 바탕으로 오랜 기간 오용되고 무모하게 실행됐다. 

이토록 무지했던 중세의 의학적 사실들은 대부분 한 두 명의 획기적 사고방식과 의심, 뛰어난 관찰력, 선구자적 안목과 지식을 겸비한 추진력으로 인해 새롭고 진실한 의학의 길로 힘들게 들어섰다. 그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이 의학 서적들이다.

세계 최초의 인체 해부학 책은 베살리우스가 저술한 <인체 구조에 관한 7권의 책>(1543) 이다. 

이 책은 중세 몇 백 년 간 절대적 이론처럼 군림해왔던, 동물 해부의 결과가 인체 해부의 결과와 같다는 갈레노스의 의학 지식을 의심했다. 

그리고 남들은 감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많은 사형수의 시체 해부를 통해 얻은 정확한 묘사와 설명으로 당시 모든 의학의 절대적 스승이었던 갈레노스의 오류들을 지적하고 교정했다.

덕분에 오늘날의 해부학 구조가 이루어졌고, 특히 베살리우스는 의술이란 인간 구조의 해부학적 신비를 밝혀내지 않고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의문과 회의를 지녔다.

 그러면서 히포크라테스 학파가 과학에 남긴 가장 중요한 원칙, 즉 직접 보고 듣고 판단한 것을 근거로 적합한 결론을 내리는 것만이 진리로 향하는 확실한 길임을 거듭 주장했다.

그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성과를 맹목적으로 신뢰해서도 아니 되며 스스로 연구하고 입증한 어떠한 모순이나 잘못도 동료들에게 알려 정확히 해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교과서는 이후 인체의 생리, 외과 수술은 물론 내과 영역까지, 정상 조직과 비정상적 암의 발생, 병리 등을 망라한 모든 의학의 발전을 선도적으로 주도함으로써 고대 의학이 현대 의학으로 발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  
  •  
  •  
  •  
  •  
  •    
  • 맨 위로



시민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