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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송진괄의 신비한 산야초] 이뇨·해열·피부질환 약재 사용

송진괄2017.06.29 14:25:21

오랜만에 남원(南原)을 찾았다. 가끔씩 오다가다 들리긴 했지만 이번 여행은 큰 마음먹고 광한루(廣寒樓)와 춘향의 일대기를 실물로 형상화한 춘향 테마파크를 천천히 돌아볼 작정으로 온 것이다.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400여 년 전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을 새로이 만나는 것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큰 냇가의 다리를 건너 춘향촌(春香村)을 거스른다. 인위적이지만 고샅고샅마다 정성들여 옛날 거리를 재현하여 마치 옛 유적을 보는 듯하다. 동헌(東軒)을 들어서니 망나니가 춘향을 묶어놓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대청마루에서 내려 보는 사또의 추상같은 눈이 너무나 사실적이다.

▲송진괄 대전시 중구청평생학습센터 강사

동헌의 오른쪽 담장에 붉은 능소화(凌宵花)가 매달려 춤을 추고 있다. 바깥쪽에서 담장을 넘어오고 있는 중이다. 진홍색의 꽃이 매달려 흔들거리니 눈에 쉽게 뛴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뜻밖의 꽃이다. 능소화는 동헌이 자기 자리인양 거침없이 마당을 향하고 있다. 그 소담스런 모습이 반갑다.

우리나라에서는 능소화를 양반집 정원에만 심을 수 있었다. 일반 상민집에 이 능소화를 심어 가꾸면 잡아다가 곤장을 때려 다시는 능소화를 심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이 꽃을 양반꽃이라 불렀다고 한다.

능소화(凌霄花)는 꿀풀목 능소화과의 식물이다. 중국이 원산으로 갈잎덩굴나무이다. 담쟁이덩굴처럼 줄기의 마디에 흡반이라 부르는 뿌리를 건물의 벽이나 다른 나무에 붙여 가며 타고 오른다. 7~8월에 가지 끝에서 나팔처럼 벌어진 주황색의 꽃이 핀다. 금등화(金藤花), 자위(紫葳), 대화능소화(大花凌宵花) 등으로도 불렀다.

능소화는 약용으로도 쓰였다. 민간요법으로 잎, 꽃, 줄기, 뿌리를 이용하여 이뇨, 해열, 강정(强精), 심신안정, 피부질환의 약재로 썼고, 한방에서는 능소화의 꽃을 건조하여 혈액순환 촉진, 거담(祛痰) 기능에 사용했다.  

대부분의 꽃들은 활짝 핀 후 시들어서 떨어지는데, 능소화는 꽃이 피고 한껏 아름다움을 뽐낼 때 꽃이 떨어진다. 시들어서 떨어지지 않고 얼마만큼 피어 있다가 꽃잎이 통째로 떨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꽃이 시들어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꽃에는 독(毒)이 있어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심한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매혹적이고 강렬한 주홍빛의 꽃 색깔 이면에 독(毒)을 갖고 있는 야릇한 나무이기도 하다.

능소화와 관련된 애틋한 이야기가 있다. 십 수 년 전 경북 안동(安東)의 도시 계획으로 파 헤쳐진 무덤 속에서 발견된 편지 한 통의 내용이다. ‘420년 만에 배달된 편지’라 하며 매스컴에서도 특필되었던 내용이다. 저승으로 떠나는 사람에게 이승에 남은 사람이 이별의 서러움을 애통해 하며 썼던 편지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바로 전(前)에 요절(夭折)한 한 남자의 아내가 떠나는 남편의 무덤 속에 써넣었던 편지의 내용이 사람들의 심금(心琴)을 울린 것이다.

그 내용은 세상을 먼저 등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엮은 젊은 여인의 사부곡(思夫曲)이었다. 남자는 결혼하기 전에 여인이 어떻게 생겼을까 보고 싶어 몰래 그녀의 집을 찾았다. 담장에 있는 진홍색의 능소화 사이로 살짝 비친 소녀는 남자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결혼 후 다정했던 부부는 두 아이를 낳아 행복했다.

그렇게 행복했던 부부는 역병(疫病)으로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뜬다. 그 남자는 ‘예쁜 여인과 혼인하면 수명이 짧을 것이라는 스님(僧)의 예언이 있었고, 천하의 못생긴 여자와 결혼하되 집 안에 있던 능소화를 모두 없애면 괜찮을 것이다’라는 처방이 있었다. 그런데 두 연인(戀人)의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만남으로 혼인을 했지만 한가운데에 능소화의 저주가 있었던 것이다.

돌담 위에 피어 있는 능소화 사이로 마주쳤던 두 사람의 첫 만남, 설레고 기쁜 마음은 땅바닥에 뒹구는 능소화 운명이었던가. 꽃이 지어도 전혀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지만 독(毒)이 있는 능소화. 애틋하고 아련하고 슬픈, 하지만 지고지순한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편지에 담겨있던 것이다. 수백 년 전에 살다 간 가련한 한 여인의 순애보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왜 사는가’란 인생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능소화(凌霄花)는 꿀풀목 능소화과의 식물이다.

저 아래 큰 강물이 시내를 가로 지른다. 인간은 유한(有限)하여 시공(時空)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몇 글자 필체로만 남은 얼굴 없는 어느 여인의 삶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능소화 한 송이에 만 가지 인생사가 가득하다. 진한 주황색의 능소화가 동헌(東軒)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무언(無言)의 전언(傳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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